폭풍의 서막, 그리고 구조조정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편, 거대한 파도 속 작은 조각배처럼

by 숭늉

예상치 못한 변화의 시작


현장에서의 2년이 까마득한 옛일처럼 느껴질 만큼, 나는 본사에서 꿈에 그리던 안정적인 서울 직장인의 삶을 만끽하고 있었다. 점심시간마다 커피 한 잔 사 들고 덕수궁 돌담길을 거닐며 이 평화로운 일상이 계속되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평소처럼 출근했던 어느 날, 다른 계열사의 인원이 대거 우리 팀으로 유입된다는 소식이 돌았다. 같은 건설 부문이긴 하지만 전문분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폭풍의 서막이었다. 단순히 사람이 늘어난 것 이상으로 사무실의 공기가 달라졌다. 낯선 이름과 얼굴들이 오가고, 이전에는 당연했던 우리 팀의 업무 방식에 대해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일들이 늘어났다. 익숙지 않은 프로세스에 적응하려 고군분투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보이지 않는 텃세와 견제가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그저 작은 변화일 뿐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우리 회사는 큰 대기업의 지주회사였고, 이러한 변화는 승계를 위한 지배구조 재편의 시작이었다.


앞선 혼란이 채 가시기도 전에, 회사는 더 이해하기 힘든 결정을 내렸다. 이번엔 다른 계열사와의 합병, 심지어 사명까지 그들을 따라간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엔 패션사업을 하는 회사였다. 당황스러움을 넘어 황당했다. 건설 회사가 패션 회사와 합병이라니. '그룹 전체의 시너지'라는 발표와 달리, 현업에서는 '우리가 왜?'라는 의문만 가득했다. 패션과의 합병에서 어떤 득을 기대하는 건지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하루아침에 바뀐 회사 이름이 새겨진 새로운 명함이 낯설었다. 직원들은 다들 혼란스러워했지만, 일개 직원이 할 수 있는 일은 당연히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혼란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바뀐 이름에 맞춰 행정 서류를 처리하는 것뿐이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직원들이 패션부문의 합류로 인해 조금은 더 다양해진 복지 등으로 위안을 삼으며 새로운 폭풍에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또 한 번 몰아쳤다. 이번엔 그룹의 다른 건설사와 합병소식이었다. 위에서 숫자 굴리는 똑똑하신 분들이 내린 결론이 회사를 이리저리 잘라 붙이는 것이었나 보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두 회사에 겹치는 분야가 많았고, 회사로서는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패션 때 처럼 하는 일이 전혀 달라서, 이름만 바꾸고 두 집 살림 하던 때와는 경우가 조금 달랐다.


그렇게 대규모 구조조정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희망퇴직을 받기 시작했다. 한 달 정도의 기한이 주어졌던 것 같다. 희망퇴직금은 연봉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이었고, 퇴직금까지 더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에는 충분한 금액이었다. 주변에서 그만두는 직원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회사는 어수선함의 극을 달렸다. 다른 직원들과 동전 던지기를 하며 앞이 나오면 퇴직, 뒤가 나오면 그냥 다니기, 이런 놀이를 하곤 했다. 온갖 가십이 끊이지 않았다.


이 거대한 혼란과 불안 속에서 나 역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나도 사직서를 썼다. 들고 다니며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그리고 결국 내지 못했다.




타지 못한 배, 희망퇴직


사직서를 제출하지 못한 이유는 쉬웠다. 새로운 도전이 무서웠던 것은 아니다. 다만 뭘 해야할 지 몰랐다. 2015년 당시의 나는 아주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고 있었다. 5시에 땡 퇴근해서 회사 밖의 삶에서 온갖 다양한 취미를 즐겼다. 재즈댄스, 발레, 뮤지컬, 수영, 필라테스, 승마, 보컬 트레이닝, 경제 스터디, 글쓰기, 북클럽 등 그 당시의 나에게 관심이 생긴 취미다 하면 다 해봐야 직성이 풀렸다.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계획은 아직은 별로 관심이 없었고, 새롭고 신기한 것은 다 해보고 사는 그저 평범한 이십대 청춘이었다. 희망퇴직을 받는 한 달의 기간이 있었지만, 인생을 새롭게 설계하기에는 역부족인 시간이라 느껴졌고, 그 동기도 충분하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있으면 나는 여전히 이 만족스러운 삶을 이어갈 수 있는 대기업 직장인이고, 그만두면 당장 돈은 좀 생길지언정 머리아픈 상황이 벌어질 터였다. 호기심은 많았다. 다양한 세상을 보고 싶긴 했다. 그런데 그 호기심은 취미생활로 채우고 있었고, 당시에 누리고 있는 것들을 버릴 만큼 삶의 새 방향설정이 간절하지는 않았다.


고민은 많이 했다. 나도 나갈까? 그럼 뭘 하지? 대학원을 갈까? 유학을 가볼까? 로스쿨을 가볼까? 아니면 치대나 약대? 그건 너무 지금 하는일을 못살리나? 그럼 감정평가사 이런 걸 해볼까? 못할 것 같지는 않았다. 뭘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등 떠밀려서 무언가를 결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회사에 유학 다녀오신 분들이 몇 분 계셨는데, 그들에게 물어봐도 ‘굳이..? 지금 너무 잘 하고 있고 위치도 좋은데 뭐하러 고민하냐’ 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게 희망퇴직은 끝나버렸고 나는 그 배에 탑승하지 못했다. 다만, 이 경험으로 내가 얻은 것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첫째, 회사가 절대 날 지켜주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 그 언제라도 - 예를 들면 회사에서 더 이상 조경사업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면 - 팀 전체가 없어져버릴 수도 있겠구나. 회사만 바라보는 것만큼 바보같은게 없었다.


둘째, 회사 이름에만 의존하면 절대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이 회사를 다닌다고 내가 삼성인 것은 아니구나. 그깟 명함에 로고 하나 박혀있다고 그걸로 내 가치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구나. 나의 가치는 회사를 나오고 비로소 결정되는구나. 회사 나가면 무얼 하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나이 어린 직원들에 반해, 상위 직급에서는 짤리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을 보았다. 그러니 내 능력을 키워놓지 않으면 저런 두려움이 미래엔 나의 것이 되겠구나.


셋째, 항상 고민하고 준비해야한다. 한 곳에 안주해서 머물 생각 하지 말고 항상 다음 스텝을 고민해야겠구나.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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