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방향을 바꾼 우연한 만남
회사 내부가 채 잠잠해지기도 전에, 오피스가 서울 중심 한복판에서 저 멀리 용인 에버랜드 옆으로 이사를 갔다. 집에서 도어 투 도어 30분이면 가던 것이 이젠 2시간이 걸리는 거리가 되었다. 하루에 왕복 네시간이 넘게 길바닥에 버리게 된 셈이었다. 교대에서 회사까지 셔틀이 있었고, 그 시간을 맞추려면 아침 6시에는 집에서 출발해야했다. 5시에 퇴근해서 5시 반에 필라테스 수업을 가던 삶은 이제 끝나버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퇴사할걸, 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서초에 집을 얻었다. 셔틀 타러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 독립이라는 걸 하기에도 너무나 완벽한 핑계였다.
차라리 잘됐지 뭐야. 용인으로 가면서 이렇게 독립도 해보고. 이렇게 스스로 위로하면서 이번엔 강남을 주 활동지역으로 옮겨 신나는 삶을 살고 있을 때였다. 어느새 회사의 불확실성에 대한 경계심은 무뎌졌고, 다짐했던 '다음 스텝'에 대한 고민은 다시 일상의 즐거움 뒤편으로 밀려나 있었다. 희망퇴직 사건 때 배웠던 레슨들은 그렇게 희미해져 갔다.
활동하던 봉사활동 모임에서 새롭게 만난 친구가 있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다같이 회의를 하고 집에 돌아가던 길에, 그가 이렇게 집에 가기 너무 아쉽다면서 자기가 지금 친구 생일파티에 가는데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나는 늘 새로운 일에는 Why not 의 마인드로 살아간다. 그래서 이 날 역시 다른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라 같이 파티장소로 향하게 되었다. 이태원의 레스토랑을 빌려서 하는 파티였는데, 생일의 주인공이신 분이 뉴욕에서 유명하신 패션 쪽에 계신 분이라고 했다. 이런 식의 파티는 나에게는 너무 색다른 경험이었고, 파티에서 만난 사람들도 다들 너무나 새로운 분야의 사람들이었다.
그 곳에서 우연히 얘기를 나눈 한 사람이 있었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닌 분이었고, 한국에서 크게 사업을 성장시켜 가고 있는 사람이었다. 비슷한 분야를 공유하고 있어서 친해졌고, 자연스레 그 당시 가장 큰 사건이던 희망퇴직 얘기와 미래에 대한 고민, 유학도 생각해봤는데 잘 모르겠다 등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이 충격적이었다. “그건 너가 물어본 그 사람들이 실패해서 그래. 내 주변에 다 물어봐, 다 유학가라고 하지. 나는 너가 너무 잘 할 것 같아. 적극 찬성이야. 너 무조건 가.”
아, 이렇게 명쾌하게 얘기해준 사람이 또 있던가. 감동적일 지경이었다. 마치 안갯속에서 등대를 만난 듯 눈앞이 환해지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나는 오랫동안 이토록 확신에 찬 응원을 기다려왔는지도 모르겠다.
몇개월 전 희망퇴직을 놓치고 나서 나는 '기회가 오면 잡을 수 있도록 늘 준비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그의 확신에 찬 말을 듣는 순간, 어쩌면 그 생각마저도 수동적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단순히 준비하며 기다리는 것을 넘어, 내가 직접 기회를 만들 수도 있는 거구나. 기회란 잡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 뒤로 연락할 때마다 “준비 시작했어? 영어학원 등록 했어?” 라며 몰아붙이는 그 사람 덕분에 나는 강한 확신에 힘입어 홀린듯 유학을 결심했고, 2016년 5월, 토플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1억이 넘는 희망퇴직금은 이미 날아간 뒤였다.
유학준비를 하면서 나는 여러 명의 귀인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한명 한명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절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유학을 권유했던 이 친구가 그 귀인들 중 첫번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