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량특집} 과거에서 온 마담 JD

순도 99% 리얼 스토리

by 은는이가

저녁밥을 다 먹고도 코미디 TV프로를 보느라 엉덩이를 떼지 못하다가 창밖이 어둑해져서야 화면을 끄고 서둘러 현관 밖으로 나갔다.

풀밭의 닭들은 닭장 안으로 들여보내고서 남편은 백구 솜치를 데리고 윗길로 나는 염치를 데리고 아랫길로 각자 산책을 나섰다. 아직 헤드랜턴을 켜지 않고 다닐만하여 망설임 없이 발을 내딛는데 본격적으로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길목에서 누군가가 날 부르는 소리가 희미하고도 분명히 들렸다.


목소리의 주인은 마담 JD였다.

회관에서 종일 에어컨 쐬고 계시다가 집에 들어가려니 더워서 나와 계신다고 했다. 어르신들은 자식들이 방에 에어컨 달아 드렸는데도 아깝다고 틀지 않으신다. 이렇게 비싸고 쓸모없는 벽 장식이 또 있을까.

마담은 부채질하며 말을 건넸다.


-날도 어두운디 그 짝 길 안 무섭디요?

-매일 다니는 길인데요. 고속도로 공사 중이라 멧돼지도 안 올 텐데 뭐가 무서워요.

-나는 거그가 여간 무섭당께. 그 아래짝으로는 가덜 몬 하것어. 젊은 사람이라 안 무서븐갑소.

이 마을에 살아오셨으면서 새삼 뭐가 무섭다 하시는지. 무덤이 많아서 그런가?

그렇다 하기에는 이미 앞이고 뒤고 널린 게 무덤이었다.

혼자 생각에 빠져 쪼그려 앉아 염치를 쓰다듬고 있자니

마담이 할까 말까 하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옛날에 저 아래짝으다가 애기를 많이 버렸어.

-네? 옛날이면 언제요?

-내가 시집왔을 때, 자네맹키로 젊을 적에.

-왜 버려요?

-옛날에는 병원이 없고 헌께 애기가 많이 죽었제.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어둠에 가속이 붙어 이제는 형체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마담의 얼굴에 그늘이 내려앉는 건 느껴졌다.

나는 더 묻지 못한 채 인사드리고 염치가 앞장서는 내리막길로 내려갔다.

마담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나와 염치 뒷모습을 보고 계셨겠지.


무덤 앞 벌판에 도착해서 헤드랜턴 스위치를 켜고 염치의 목줄을 풀어줬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염치를 지켜보다가 문득, ‘아! 도서관.’하고 기억이 났다.


아기가 죽으면 거적에 싸서 나무에 매달았다는 이 지역 설화를 읽은 건 도서관에서였다. 그래서 수십 개의 거적이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고 했다. 야생동물을 피해서이기도 하고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했는데 그건 기억나지 않는다.


근데… 이상한 것이.

마담의 막내딸은 내 또래이고 마담도 우리 엄마뻘 이신데 그렇다면 80년대 얘기라는 건데. 병원이 없어 아기가 허다하게 죽고 출생신고도 사망신고도 없이 나무에 매달 시대는 아닐 텐데. 더욱이 네 살 많은 우리 언니는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는 걸.

아무래도 지방이고 시골이라 그랬나?


어느 나무에 아기들을 매달았을까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염치가 저 멀리서부터 나를 향해 전 속력으로 달려와 헤드랜턴이 밝힌 지대 안으로 들어왔다.


'저 녀석, 뒷발이 정수리에 닿겠네. 내가 그리 좋으냐~ 이리 온~~~'하고 염치를 향해 두 팔을 펼치려는 순간 염치는 나를 제치고 혼비백산이 되어 집 방향으로 달아나버렸다.


뭐야 뭐야. 호랑이라도 본 건가? 멧돼지?

등골이 서늘해져서 뭔지도 모르고 염치 뒤를 따라 정신없이 달렸다.


집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을 있는 힘 없는 힘 쥐어짜서 내달리는데도 마치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듯 제 자리였다.



이 길이 이렇게 길었나?

‘헉헉’

힘이 빠지고 호흡도 힘들어 이러다 죽겠다 싶어 차라리 주저앉을까 하던 찰나 남편의 랜턴불빛이 보였다!


-염치 혼자 집에 와서 계속 짖길래 무슨 일 있나 하고 와봤지. 전화도 안 되고.

-주머니에 있는데 전화가 왜 안 돼? 그나저나 충성심도 없는 염치 이놈. 주인 두고 혼자 도망치다니!!


후들거리는 허벅지를 간신히 들어 올리며 남편 손을 붙잡고 집으로 향하면서 좀 전의 일을 전부 얘기해 줬다.

그랬더니 남편 하는 말,


-마담? 마담 여기 안 계셔. 어제 서울 가셨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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