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카’그녀와 ’나‘찾기

미완성을 일단 끄적인다.

by 은는이가

소세지 볶음밥에 들어갈 계란을 깨뜨리다가 ’락카‘로 불렸다는 그녀가 떠올랐다. 체육센터 수영장 입구에서 락카 키 내주는 자리, 그녀가 1년 남짓 해 온 안내 업무는 12월부로 끝났다고 올해는 전공을 살려서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볼 거라 했다.


달궈진 기름 위로 떨어진 투명한 계란흰자가 치이익~ 소리를 내며 하얗게 드러났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오후까지 자리를 지키는 일은 다른 게 아니라 투명인간 같아서 힘들었다며 집에서는 엄마로, 출근해서는 락카로, 또 며느리로. 내 이름을 성실히 지워내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이 ‘나’ 자신은 사라졌기에 진짜 나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막막하다고도 했다.


이제 막 흰자가 흰색으로 채워진 계란후라이 위에 찬밥 덩이를 던져 넣고 밥알 하나하나에 식용유와 계란을 코팅하듯 헤집으며 빠르게 뒤섞었다. 밥알 하나마다 존재감이 있으려면 지속적으로 볶아줘야 한다. 꽤 오래. 나를 찾는 과정처럼.


오후 내내 노트북을 붙들고 수업내용을 다듬었다.

3월부터 10개월간 주 1회 초등 3, 4학년 미술수업을 하게 되었는데 수업의 절반은 ’나‘ 찾기다. 내 마음을 알아채고 나도 몰랐던 나를 찾는 과정이랄까. 화살표가 온전히 나 자신을 향해 있는 시간이다.


수업하는 일 외에 ’나‘를 발견하고 유물 발굴하듯 캐내는 것이 내 주된 직업인데 작가라는 자유직은 데드라인도 보수도 없어서 그런지 생활이 우선이 되어 웬만해서는 자력으로 굴러가지지가 않는다.


”이쯤이면 받아들여~ 당신은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은 거야. 시간낭비 말고 지금이라도 다른 일 찾아봐. “

고맙게도 종종 남편이 비웃어주었다.


간이 딱 맞게 잘 볶아진 밥을 입으로 가져다 넣으며 곁눈으로 노트북 화면을 보았다. 노트북의 커서는 하반기 수업, ’ 세상을 바라보고 함께 성장하는 시기‘에서 깜박이고 있었다.

저거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작업은 바로 저것이다.

내 이야기면서도 지금 우리 모두의 이야기.

컨템포러리.


”별 말 없는 걸 보니 맛이 좀 괜찮나 보네? “

볶음밥에 유독 까다로운 남편인데 웬일로 표정이 좋다.

”응! 간도 딱 맞고 고슬고슬하니 아주 좋아. 이게 볶음밥이지~“


한낱 방구석 일기로 남지 않을 너와 나와 우리를 위한 작업, 이를테면 김애란 작가의 단편소설 모음집 같은.


그러한 업적은 자잘하고도 수두룩한 기록들 위에 세워진다는 걸 안다. 숨을 쉬어야 한다고 마음먹어서 쉬는 것이 아니듯 배가 고파서 먹지 않으면 견딜 수 없듯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기록되는 것이 작가의 업무이건만 어째 아직도 큰 벽 앞에 갖다 둔 이젤만 매만지고 있는지. (큰 벽 앞에 뒀으니 그렇지)


그녀가 ‘락카’로 불리는 마지막 날, 성실함에 대한 존경과 앞날의 축복을 담아 중국홍차와 차 우리는 1인용 개완세트를 건네주었다. 그녀에게 뭘 할 때 가장 신나는지 물었을 때 책에 파묻혀있을 때 그렇다 했기에 차 한잔이 책 친구가 될까 하여서.

별거 아닌 작은 선물에 어린이처럼 뛸 듯이 좋아했다.

그녀 자신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응원하는 내 마음을 보아줬겠지 싶다.


몇 자 적다 보니 벌써 자정이 넘었네.

저녁시간에 들어온 심상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기록하지 않고는 못 견디겠어서 하반기 수업 다듬기는 내일로 미루고 일단 끄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