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왜 그래야 해?
그이가 어디라도 도망 나가자고 했을 때 나는 그럴 필요 없다고 집에서 각자 계획한 하루 보내자 했다.
이장님이 저번주에 그이에게 전화해서 읍민의 날 체육대회에 안사람이 나가서 훌라후프를 돌리면 어떠냐 제안했었다. 그날은 1년에 한 번 있는 서울대학병원 검진하는 날이라 아내는 여기 없다고, 출전 못한다고 말씀드렸건만 오늘 나오기로 해놓고 왜 안 오냐고 이장님으로부터 또 전화를 받았다.
거 이장님도 참, 이상한 사람 만드네~
그이가 나더러 서울에 하루 더 있다가 내려오라 권했을 때 나도 속 편하게 그럴까 했지만 고작 그런 이유로 일정을 바꾸는 게 내키지 않아 어제 내려왔다. 더욱이 몸살기운에 컨디션이 안 좋기도 했고 행여 좋다한들 거긴 가지 않았을 터. 일단 귀가 찢어지게 들리는 트로트가 싫고 그 속에서 음식 나르고 무대에 올라 훌라후프 돌리고 음식 뒷정리하느라 내 고요한 하루를 흔들고 싶지 않다.
‘읍민의 날’이란 1년에 한 번 읍에서 읍민을 위한 큰 잔치를 열어주는 건데 젊은이가 워낙 없다 보니 사실상 경로잔치와 다름없다. 읍에 젊은이가 있다면 보통은 직장으로 출근하지 직업이 농부가 아닌 이상 평일 낮에 참가하기 어렵기도 하다.
오후즈음 그이 말하길
-이쯤 되면 밖에 나가도 되겠지?
-되지. 뭐 어때, 누구라도 마주쳐서 왜 안 왔냐 하면 ‘가기 싫어요.’하면 되지.
“우리가 왜 그래야 해!”
지난 월요일에 J와 산에 오르며 우린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외쳤다. 마을에서 모임이 있을 시기가 가까워지면 몸이 먼저 알아채고 무슨 핑계를 대고 어디로 도망 나갈까 궁리한다,라고 내가 우스개로 말하니 J, 본인은 시댁일에 그렇다 했다.(눈에서 분노의 레이저를 발사하며)
뭐 얻을 것이 있는가? 법이라도 어겼나?
당당하게 싫으면 싫다고 안 간다고 안 한다고 말하자며 그래도 된다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실었다.
이 얘길 그이에게 전하니
-미움받을 용기 냈네
라고 했다. 처음에는 화실 수업을 옮겨서라도 하루를 비워 참여했는데 좋은 사람 행색, 말 잘 듣는다고 이쁨 받는 건 또 아니다.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는 거라고 내가 먼저 허용치를 만들고 가스라이팅 시켜드리자.
우리가 왜 그래야 해? 의 답은 미움받을까 두려웠기 때문인데. 이제는 내가 남들에게 어찌 보이든 미움 좀 받든 큰 상관없는 것 같다.
마흔 중반 아줌마가 되니 삶이 편해진다.
무서울 게 없어지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