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열매가 딸기와 동시에 익는다고 상상하는 자는......
상추를 뜯다가 보광골 열무가 생각났다.
임금님도 반했다는 그 유명한 골짜기 열무.
몇 해 전 나주의 여덟 가지 특산물로 만든 밥상, '소팔진미' 주제로 달력 제작한 적이 있었는데
그 특산물 중의 하나가 열무였다. 열무가 맛있어봐야 열무지 얼마나 맛있길래 맛자랑하기로 유명한 나주에서, 그것도 여덟 가지 중 하나로 꼽힌다는 걸까? 그림을 그리고 문구를 지어내기 위해 일단 인터넷 써치를 시작했다.
'그늘에서 자라 맛이 좋다고? 그.늘.에.서?'
물음표를 걸고 시작한 자료조사에서 또 다른 물음표가 그려졌다.
인터넷의 오래된 문서에서 말하길,
금성산의 가장 긴 골짜기 보광골은 일조량이 짧아 그늘이 빨리 지기 때문에 그곳에서 재배한 열무는 부드러워 맛이 좋다 했다. 텃밭작물이라면 으레 해가 먼저 뜨고 맨 나중에 지는 곳에 심어야 옳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 혹시 문서에 오타가 있는 건 아닐까? 내 텃밭의 고추, 토마토, 가지, 호박, 루꼴라, 청경채, 상추, 부추등 모든 작물들은 볕을 듬뿍 받아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걸?
당시 5년 차 텃밭농부였던, 그러나 열무를 심어본 적 없던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부드럽다'는 대목을 곱씹어보다가 '아하! 부드럽다는 억세지 않다는 뜻이지.' 그제야 그늘에서 자라 맛이 좋은 열무가 머리로 납득되었다.
"우리 집 루꼴라는 왜 이리 써? 종자를 바꿔봐야 할까 봐."
피자에 잔뜩 얹은 루꼴라를 슬며시 덜어내며 투덜거리던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다.
맞다. 노지에서 있는 대로 광합성을 하게 되면 거칠게 자란 만큼 발달한 섬유질로 인해 억새지기 마련이지.
작물 재배에서도 정답은 없었다.
물론 상추가 태양 아래에서 잘 자라는 건 맞지만 먹기 위해 재배하는 것이니 취향에 맞게 기르면 그게 옳은 것이다. 얼마나 거칠고 강하게 자랐는지 보여주마! 인생 쓴맛 알려주는 강렬한 상추 말고, 보드랍고 연한 상추를 원한다면 반그늘이 좋다. 맛을 보고 입맛이 납득해 버렸으니 그 후로는 상추, 루꼴라 같은 잎채소는 반그늘에서 키우고 있다. 올해도 우리 집 상추는 멀구슬나무그늘 아래에 자리했다.
** 보광골 열무는 톡 쏘는 알싸한 맛이 특징이고 김치를 담그면 다 먹을 때까지 맛이 변하지 않는다는데 그건 배수가 잘 되는 토질덕이라 한다. 얼마나 맛이 좋으면 한양까지 소문이 나 '보광골 열무진'이라는 이름으로 여름철에 임금님에게 진상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