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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댕챱 Apr 30. 2023

나는 디자이너로서 정말 내 할 일을 다하고 있을까?

직업적 정의를 명확히 알고, 이를 행하는 디자이너가 더 많아지길 바라면서

온라인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다 보면, 많은 UX/UI디자이너들이 거시적인 부분에서부터 아주 세밀한 의사결정까지 다양한 것들에 대해 의견을 묻고, 따르는 모습을 많이 보곤 한다.

가장 대표적인 질문 형식으로는 "어떻게 해야 돼요?" 또는 "~중 뭐가 더 맞을까요?"가 있다.

글의 주제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연관성이 높은 또 다른 현상으로는 많은 주니어/신입들, 적합한 사수가 존재하는 곳을 찾는 경향이 많고, 사수가 없는 곳일 경우 이직을 고민하거나 혹은 아예 지원 자체를 꺼려하곤 하는데, 그 이유를 들어보면 '내가 맞게 디자인하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어서'인 경우가 있다.


이번 글에서는, 말로는 주체성과 독립성 보장을 외치지만 정작 결과는 그렇지 못한, 일련의 현상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사실 이건 좀 문제가 있다.

다른 사람의 조언이나 의견을 구하는 건 어떤 면에서 보면 권장함직한 일이고, 좋은 일이다. 하지만 과연 이런 식으로 내 디자인을 결정해가는 패턴을 계속해서 가져가는 것이 과연 올바르다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특히나 UX/UI디자이너로 일하며 이런 방법을 자주 택하는 디자이너일수록, 스스로 나는 디자이너로서 과연 내 역할과 의무를 다하고 있는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돌아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 일이란 게 원래 누군가의 물음표에 답을 던져줘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프로덕트 디자이너(UX/UI 디자이너)란, 누군가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는 혹은 해결할 수 있게 도움을 줘야 한다는 점에서, 그 주체성, 독립성이 특히나 두드러지는 포지션이다.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성격이라고 해서 '독단적'인 것에 갖다 붙이진 말자. 그 2개는 다른 말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해결해야 하는 UX/UI 문제에 대해 무슨 디자인 솔루션이 더 적합한지, 어떻게 해야 할지 스스로가 고민해서 목표에 맞는 디자인 대안을 제시할 줄 알아야하고, 논리적 근거에 기반해 설명하고 생각과정을 맵핑해가며, 또한 결정 이후에도 드러난 결과를 토대로 끊임없이 학습해 나가며 이러한 학습들을 적극적으로 회사와 공유함으로써, 우리 팀이 디자인을 포함한 의사결정에 같은 우를 범하지 않고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디자인 커뮤니티들을 보면, '이럴 땐 어떻게 디자인하는 게 좋을까요?'라는 질문으로 자신의 역할을 남에게 맡겨버리는 현상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며 이는 정말 오랫동안 이어져왔다. 그리고 이건 어느 정도는 '문제'다.


어디까지나 나는 기초적 정의에 근거하여 그로부터 파생된, 혹은 발전된 내용에 근거한 주장을 하는 것임을 밝힌다. 이건 실제로 많은 부트캠프에서도 입문자들을 위해 일정 부분 '체험'하게 해주는 내용이며 'UX디자이너'라는 직종이 세상에 뿅! 하고 나타났던 어느 시점부터 지금의 '프로덕트 디자이너'와 '프로덕트 매니저'라는 직종이 생겨나기까지 최소 십수 년, 아니 수십 년의 역사동안 이론상으론 아주 굳건히 자리해왔던 직업의 정의 중 일부를 근간으로 한다.


그냥 물어보는 것도 문젠가?

이것은 질문을 던지는 행위자체가 아니라, 질문을 하는 사람의 의도와 계획, 또 그것을 활용하는 방식에 있다.


실제 예시상황을 살펴보자.

1. 어떤 디자이너가 UI디자인이나 UX디자인 업무를 보다가 몇몇 옵션들 중에 고민이 되는 상황을 맞이한다.

2. 그러면 그 디자이너는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상황(그것이 양자택일이 필요한 것이든 아니면 디자인 프로세스 전체를 설계해야 하는 좀 더 초기에 해당되는 문제든)에 대해,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다른 디자이너들에게 묻는다.

3. 이에 대해, 여러 포지션, 여러 업계에 있는 디자이너들이 그 질문에 대해 다양한 의견과 답변을 남겨준다.

4. 그리고 이러한 답변들을 확인한 디자이너는, 대체로 많이 우세한 의견을 선택하거나 우세하지 않더라도, 어쨌든 누군가가 '이게 더 맞다'라고 주장하는 내용을 수용하거나, 결과적으로 그중 한 의견을 따르기로 결정한다.


여기서 문제는, 정작 그 업무의 당사자인 질문자 본인의 뚜렷한 의견이나 기준은 사라진 채, 스스로 선택하기 고민되니 이에 대해 다른 누군가 나서서 '자, 이건 이렇게 하면 돼. 쉽지?'라고 대신 문제상황을 해결해 주길 바라는 심리가 짙게 깔려있다는 데 있다.


안다. 하지만 딱히 득 될 게 없다.

이를 단순히 '표현'의 문제로 볼 수만은 없다. 하지만 그런 의도가 없는 질문이었다 해도, 본인만큼이나 충분한 맥락이나 배경정보도 없는 제삼자에게 자꾸만 본인 스스로 내려야 하는 업무 판단의 일부를 이렇게 떠넘기는 건 결국 성장을 위해서든, 직업적 가치 유지/회복을 위해서든 좋지 못하다.


물론 지금까지 해오지 않은 것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을 내려간다는 건 어떤 면에서는 조금 겁도 나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정한 역할과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 쉬운 길만 골라가고,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그 역할에서 한발 물러나 피동적인 입장을 취하려 하는 것은, 불확실성을 확실성으로 끊임없이 바꿔가는 이 직업의 특성상, 어찌 보면 내 일을 남에게 떠넘기는 프로답지 못한 행동이기도 하다.

당신은 쉬운 일만 하려고 UX/UI디자이너를 하는 게 아니라, 기업의 UX/UI적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이 되려고 그 직업을 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는 직종을 떠나 어디에서나 다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당신이 어떤 직무로 지원해서 취업하고, 그 자리에 있다는 건 그 업무내용에 명시된 일들을 통해 회사에 기여하고자 가 있는 것이지, 헤쳐가기 어려운 문제를 맞닥뜨리면 남에게 부탁해서 대신 해결하라고 뽑힌 것이 아닐 것이다. 


또한 개인의 성장 측면에서 보더라도, 조금씩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 감으로써 체득하고, 성장해 가기보다, 오히려 해본 일밖에는 평생 할 줄 모르는 뻔한 역할이 되기 쉽다. 그리고 남들도 다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하거나 쉬운 문제는, 최소한 이 업계에서는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고 상대적으로 부와 명예를 갖기에는 그다지 가치가 없다.


나는 회사에서 결정권이 없고, 시니어나 디렉터, 또는 대표가 결정하는데요.

이건 Problem-solver라는 디자이너로서 본질적으로 가져야 하는 자세, 역량과는 약간 또 다른 이야기다. 그냥 내가 의존적인 경향성을 띠는 것, 그리고 설령 내 생각과 근거가 분명하더라도 그 회사의 문화나 체계 상 최종 결정권이 나에게 없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내 생각만 무조건 고집하라는 것이 아니다.

질문을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일단 질문을 해야만 하는 것, 하지 않아도 되는 것,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면, 자기 디자인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지금 본인이 올바른 디자인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 필요한 부분을 배울 수 있는, 보다 적합한 형식으로, 적합한 부분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 필요하다.


당신은 회사의 디자인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란 것을 잊지 말자.




UX에는 족보도 없고, 커리(커리큘럼)도 없다.

 그렇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애초에 이 일은 정답이 없고, 왕도가 없다. 왜냐하면 세상이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계속 변화하기 마련이고, 그런 변화는 사람의 행동과 심리, 생각의 변화에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즉, 어떤 상황이나 문제에 있어 '정답'이라고 외칠 수 있는 것이,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고 변할 수 있다. 심지어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회에 있어서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그래서 다양한 목적이나 니즈에 따라 뾰족한 전략과 계획, 사례 분석이 필요하다. (나는 이걸 영국에 와서 일하며 많이 느꼈다. 실제로 다른 나라들 현지에서만 주로 이용되는 앱들이나 웹사이트의 사례를 보면, 정말이지 내가 알던 이론이나 한국의 상황과는 너무나도 달라 입이 떡 하고 벌어지는 그런 경우도 마주할 때가 있으니 적어도 나만의 상상은 아님이 분명하다.)


그래서 더더욱, 누군가에게 '이건 어떻게 하는 게 맞아요?'라고 내 디자인 솔루션에 대한 가치를 묻는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말이 좀 안 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정답/해설'이 존재하지 않는 분야이기에, 기존에 수많은 자료가 있어왔음에도 계속해서 수많은 디자이너, 또 기업들이 데이터 추적 그리고 사용자조사를 통해 반복적으로 학습해가고,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이기도 하겠다.


이 업은 종교도 아니고, 수능공부도 아니다. '이상향'이라는 건 존재하지만, 그 이상향이 '어떻게 생겼느냐'는 정말 천차만별이고, 계속해서 변화한다. 모든 디자이너가 동일한 이상향을 목표로 두고 누가 얼마나 그 답에 가깝게 도달했나 줄 세우기를 할 수 있는 그런 직업이 아님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끝.




자매품

https://brunch.co.kr/@euny27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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