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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댕챱 Aug 18. 2023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자기 능력을 뽐내는 방법: 사전과제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즐겨라.

이번 글에서는 몇년 전부터 채용전형의 신성으로 떠오르며 많은 신입구직자와 주니어를 패닉의 늪에 빠뜨리고 있는 '디자인 사전과제'에 대한 내 생각을 적어보고자 한다. 굳이 권장한다면 위에서 말한 딱 그 레벨, 또는 이 쪽에 대해 막 고개를 돌리기 시작한 그런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첫 취업이든, 재취업이든, 아무튼 이 직무로 취업하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왜냐하면, 직업 선택이란 건 관점에 따라 쉽게 선택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정말 조심스러운 인생의 한 발자국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충분한 고민의 시간이 없다면, 그건 본인을 포함해 자신과 맞물려있는 다른 여러 사람들에게도 미안한 일이 될 수 있다.






사실 나도 그렇게 사전과제를 좋아하진 않았다.


왜 그랬나 돌이켜보면, 아마도 구직중 수많은 이력서 업데이트와 취업공고 및 회사 분석, 그에 따른 회사별 맞춤 자소서 작성, 그리고 이 머나먼 영국 땅에서 하루하루를 수입도 없이 버텨나가는 것으로도 이미 하루가 벅차는데, 거기에 사전과제까지 하라고 하니 너무 귀.찮.았.던 게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아무튼 나도 맨 처음 사전과제란 걸 받았을 때는 많이 떨렸고, 실제로 몇번의 실시간 사전과제는 죄다 탈락이었다.(ㅎ)


하지만 지금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또 그 전에도 프로덕트 디자이너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를 늘 고민해온 것들을 토대로 보았을 때, 다음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사전과제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이게 뭔 주위 사람들 하나 둘, 멀어져 가는 소린가 싶다.

혹여 싫더라도,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되고싶다면 인정해야 할 사실이다.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정말 당신과 맞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면 사전과제를 대하는 관점부터 달라져야 한다. 사실 사전과제는 적이 아니라, 더할 나위 없이 가까운 동료다.



왜냐하면, 프로덕트 디자인이란 애초에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니까.


그렇다.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problem-solver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프로덕트 디자이너라는 일에 정말 마음이 있고, 너무나도 원한다면, 그 과정들 또한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당신이 지금 사전과제 같은 일을, 취업하면 매일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과정이 두렵거나 혹은 할 수 없다면, 피하고 싶다면, 과연 어떻게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일을 할 수 있을까? 말이 안된다. 그건 마치 소방관이 되고 싶은데 몸이 고된 건 싫고, 의사가 되고 싶은데 의학지식이 1도 없는 것과 진배 다를 바 없다.



사전과제는 그 사람의 찐모습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모먼트다.


비록 실무는 아니나, 사전과제는 당신이 어떤식으로 문제를 헤쳐가는지 보고자 하는 것이며 개개인의 개성을 드러내주는 중요한 필터 역할을 한다. 실무로 들어가면 (아마 회사를 다녀본 사람은 알겠지만)내가 마음대로 컨트롤 할 수 있는 상황의 비율이나, 폭이 시니어급이 아니면 많거나 넓지는 않다. 그래서 실질적인 아웃풋은 그 사람의 본래 역량보다 한참 모자란게 나올 수도 있는데, 사전과제는 몇몇 조건을 제외하면 말 그대로 내가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가 된다. 난 어떤 측면에 강점이 있는 프로덕트 디자이너인지, 또 내가 진정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자질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자질을 아주 정직하게 보여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인데, 무서워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만일 이 과정 자체가 너무 버겁고 어렵다면, 어쩌면 긴장감 탓에 괜히 쫄아버린 탓일 수도 있지만, 매번 그렇다면 다시 이 직업에 대해 잘 생각해보자. 어쩌면 나와 맞지 않는 일이라 그런 걸 수도 있다.


다시한번 강조하면,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되면 당신은 이런 난감하고 피곤한 상황을 매번 스스로 헤쳐가는 짓을 매일 해야 한다.


다만, 이런식으로 코앞의 문제를 대충 수습 해기진 말자.

가끔은 절박함이 잘못된 곳으로 이르는 경우도 많이 목도했다. 수년동안 국내/외 여러 디자인 커뮤니티에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들을 봐오면서, 어떤 때는 자기 과제를 스스로 풀어내는게 아니라 집단지성의 힘을 빌어 같이 과제를 하려고 하는 황당한 경우도 봐왔다. 제발 그것만은 하지 말자.


그 사람의 역량은 무엇이며, 그사람이라면 어떤 식으로 일을 하게 될지 궁금해서 내는게 사전 과제인데 그걸 남의 힘을 빌려 해결하려 하다니.. 단순히 공정성을 떠나, 그게 중장기적 관점에서 봤을 때 과연 본인에게도 이득일까?



게다가 이건, 신이 주신 절호의 기회다.


신 같은게 있다고 믿지는 않는데, 사실 그건 정말 꿀같은 기회이기도 하다. 당신의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는 공짜 기회.

많은 주니어, 심지어는 사이드프로젝트를 하고 싶어하는 경력무관 타 디자이너들로부터 듣는 고민중에는


"무슨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채우는게 좋을지 고민이에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고 싶은데, 주제를 뭘로 정하는게 좋을지 잘 모르겠어요"


이런 고민들이 많은데, 1번은 그렇다 쳐도 채용 전형에서의 이런 과제들은 2번째 고민을 1타2피로 해결하는데 아주 효과적이다. 큰 테마가 주어졌으니, 이제 남은 건 그 안에서 당신을 보여주며 신나게 놀기만 하면 되는게 아닌가? (2번 얘기를 꺼낸 이유는, 보통 낮은 레벨이나 이미 잘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도 굳이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려하는 사람들 중에 적지 않은 비율로 '포트폴리오 확보'라는 동기를 가지기 때문이다.)




헷갈리지 말자.


그렇다고 해서, 남의 도움은 1도 없이 모든걸 나 혼자 해내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적재적시에 적합한 이에게 적합한 도움을 요청할줄 아는 것, 그래서 협력도 할줄 아는 것 또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아주 중요한 역량중 하나다.



"혹시 잘 못 해서 떨어지면 어떡해요?ㅠㅜ"


안다. 애초에 이 직업을 찾는다는 건 관심이 있다는 것이고, 그렇기에 다른 이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더 절실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누구나 심적인 부담이 주어지면 원래 본인의 능력만큼도 발휘하기 어렵기에 이런 기회들을 온전히 즐기기가 쉽지는 않은데, 핵심은 (실제 취업 유무를 떠나 당신이 진정한 프로덕트 디자이너 재질이라면) '그걸 꺼려하거나 회피하면 안된다'는 말로 정리하고 싶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 아닌가?

지금까지 이미 많이 떨어져왔는데, 지금 그곳 1군데도 또 떨어진다고 해서 세상이 끝날 이유는 없다. 당신은 지금 그 회사던, 이전에 떨어진 다른 회사던 다 지원하고 싶어서 지원했다. 사실상 그것들은 유사한 무게를 가진 셈이다. 그런데 이전에는 떨어져왔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지금 그 1군데는 떨어지면 세상이 끝날 이유는 당최 뭐란 말인가?

매번 느끼는 거지만, 죽기 직전까진 가더라도,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었다. 그저 계속 뭔가 하고 있다보면, 언젠가 무엇인가가 나도 모르는 새 내 곁에 다가와 있다. (물론, 걔가 내 맘에 얼마나 들고 안들고는 논외다ㅋ)


내 과제가 형편없어서 떨어진 것일 거라는 건 당신만의 착각이다.

최종적으로 합격유무를 결정짓는 요소는 너무나 많고 다양한데, 어떻게 과제의 결과 하나만으로 모든걸 결정지을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사이드 프로젝트 팀을 1년 넘게 유지해보며 구인도 많이 하면서 느낀 건, 그냥 능력만 있다고 사람이 뽑아지진 않는다는 것이었다. 자유가 보장된 사이드 프로젝트도 그러한데, 하물며 피같은 회삿돈을 걸고 뽑아야 하는 자리면 더욱 재고 따져봐야 할게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점 중에는 컬처핏 같은 것도 있다.


게다가, 어차피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못할게 뻔한 부분이 있다고 해도, 지금 내가 그런 사람이라 그런 걸 뭘 어쩌겠는가? 물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개선이 필요할 것이다. 그럼 도전을 통해서, 또는 도전과 별개로 보완이 필요한 부분을 개발해 나가면 된다.

인정하자. 당신은 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완벽한 캐릭터가 아니다. 사실 지구상의 어떤 사람도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은 없다. 



에필로그


나 또한 영국에서의 취업을 준비하며 접해봤던 '디자인 사전과제' 경험들을 통해 깨달은 바가 있어 이를 공유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의 전직/취업에 대해 한번 더 신중하게 고민하고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줘보고 싶었다.


막연한 불안함과 성급한 추진력을 가진 이들에게 나름 실질적 조언이라면 조언일만한 이야기를 쓰다보니, 너무 길어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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