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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댕챱 Jan 01. 2024

문제정의, 발가벗겨주마.

그건 문제정의가 아닙니다.

디자이너로서 업무적 숙명 중 하나는, 바로 문제를 정의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어야, 비로소 그 이후의 프로세스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건 사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디자이너가 기획자 또는 PM에게 책임전가를 해온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비핸스와 노트폴리오 등에 올라온 여러 포트폴리오들을 보면 '정말로 이것이 UX/UI디자인에 대한 포트폴리오가 맞는가?'라는 의문을 품게 할 정도로 엉성한 내용들이 만연해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엉성한 출발은 그 업계에 종사하는 나조차도 무한한 미로에 빠지게 하고, 결과적으로 오직 제작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에 하품을 불러오곤 한다.


그래서 오늘은 '문제정의'에 대한 글을 써보고자 한다.

사실, 삶의 관점에서 문제를 정의한다는 것을 정의하자면, 나는 이것이 단 50자 이내의 한 줄의 명제로 모든 '문제정의'를 다 포함할 수는 없을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에 대해 철학적이고 근본적인 지점까지 심도있게 파고들어가기 보다는, 일단 UX라는 업계에서 UX/UI디자이너라면 마땅히 가지고 있어야 하는 '진짜 문제'를 밝히는 눈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 '문제정의'에 대해 이전 다른 글들에서도 몇번 언급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 글은 오직 문제정의라는 단계에만 집중하여 다루고자 한다.


목차:

1. 문제란 무엇인가

2. 가짜문제와 진짜문제

3. 마치면서




문제란 무엇인가

문제정의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우리가 할 일, 또는 목표를 정하는 것'과 같다.

다만, 방금전 언급한 '목표설정'과 관련해 우리가 해야할 것, 또는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는 아주 거시적 단계의 To-do 설정은 대체로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타이틀에서 하기보다는, 만일 PO가 있는 상황이거나 PO의 역할을 겸하는 CEO, 혹은 그 어떤 임원이 있다면 그 사람이 정해주는 경우가 흔하다. 프로덕트 디자이너 단에서 결정하는 것은 주로 한단계 미시적인 To-do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쨌든 위계를 떠나 프로덕트 디자이너 또한 스스로 주어진 것을 바탕으로 '나는 회사의 목표를 이뤄주기 위해 제품의 경험을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앞으로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파악하고, 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는 꼭 단독 검토와 결정만으로 이뤄지지는 않을 수 있다. 다른 글에서 묘사한 적이 있는데, 가령 당신이 어떤 큰 이커머스 회사에 들어갔다고 가정해보면, 당신이 다뤄줘야 할 이슈들은 회사의 이곳저곳에서 들어오게 되어있다. 그것이 CS팀일 수도 있고, 혹은 개발팀일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프로덕트의 경험을 개선하고 만들어가는 디자이너의 역할을 감안했을 때,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과 의사결정은 디자이너에게 있다. (단, 그것이 회사의 목표와 부합하는 것이 맞을 때 한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정의되는 문제는 회사의 목표나 상황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 어떤 경우는 사용성을 고려하기 보다도 시장성 등에 더 방점이 찍힌 문제가 정의될 수도 있고, 또는 사용성 부분이 가장 중요한 이슈로 자리잡을 수도 있다. '실무'에서의 올바른 문제는, 언제나 기업의 비즈니스 방향성과 일맥상통한다.


결과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가 정해지면, 이는 다양한 방식으로 묘사될 수 있는데, 문제를 잘 드러내주는 가장 대표적인 템플릿으로는 HMW question(어떻게 해야 우리가 ~~를 ~~할 수 있을까?)과 User story가 있다. 이 2가지 템플릿을 통해 우리는, 문제정의 과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자, 이게 우리가 앞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을 미션이야'라고 쉽게 소개해줄 수 있다.




진짜문제와 가짜문제

자, 이제 문제정의란 어떤 것인지 대략 이해했다면, 이제 가장 고질적인 문제상황을 살펴볼 차례다.


데이비드 트래비스와 필립호지슨의 유명한 UX리서치에 관련 서적인 'Think like a UX researcher'에 보면, 문제정의 단원에서 알버트 아인슈타인에 대한 일화가 언급된다. 아인슈타인은 리서치에 대한 접근법에 관해 말하면서 "문제해결에 20일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19일의 시간을 문제를 정의하는 것에 쓰겠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UX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도널드 노먼조차도, 인간중심 디자인 원칙 중 하나로 "Solve the core roote issues behind the problem as given"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어 "(의역)우리에게 문제라고 주어지는 것의 대부분은 '증상'에 불과하다"라고 말한다. 즉, 내가 위에서 언급한 대로 그 또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진짜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타 부서에서 넘어오는 이슈들은 이런 '증상'인 경우가 많다. 문제상황은 맞지만, '문제'가 아닌 것이다. 사용자들에게서 들려오는 불만사항도 마찬가지다. 극소수의 아닌 케이스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문제상황을 언급한 것들이다. 여기서 디자이너의 역할의 시작은 그 문제상황들, 페인포인트 뒤에 숨겨진 '진짜 문제'를 찾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점은, 수많은 UX/UI디자인 포트폴리오를 보면 가짜문제로 씨름하는 포트폴리오가 너무 만연하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그것이 가짜문제라 할지라도, 그 문제가 대체 정확하게 뭔지 설명해주고 있지 못한 포트폴리오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


그렇다면 가짜문제와 진짜문제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간단하다. 위에서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언급했던 것처럼, 진짜 문제는(문제에 따라) 그 뒤에 이어지는 모든 것들을 명쾌하게 만들어, 단시간 안에 진도를 뺄 수 있도록 해준다. 그것이 비록 단 하루라 할지라도 말이다.

내 경험 상 조금 더 자세하게 '진짜문제'가 갖는 특성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자동적으로 머릿속에 로드맵과 HMW가 짜여진다.

2. 솔루션까지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모든 세세한 작업에 대한 당위성과 필요성이 한번에 머릿속에 정리된다.

3. (문제에 따라)어떤 것들이 그 문제에 대한 솔루션이 될 수 있을지 제법 쉽게 떠오른다.


그 이유는, 진짜문제를 정의했다면 이는 처리되어야 할, 또는 해결해줘야 하는 문제의 대상이 아주 명쾌하게 드러났다는 말이기에 당장 그걸 위해 실행해볼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지 내가 알고 있는 범주 내에서도 곧장 떠오르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떠오른 생각이 최선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정확한 문제정의는 내가 이다음에 무엇을 해야하는지,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 등 모든 문제해결과정을 명쾌하게 설명하도록 해준다. 2 2 = 4에서 2 사이에 들어갈 기호가 '+'라는게 밝혀졌다면, 그냥 2와 2를 더하는 일만 남게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앞선 문제정의가 명확하지 않으면, 내가 이 작업 이후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 근거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이 불안하고, 눈앞이 흐리게 느껴진다. 마치 영어지문 독해에서 많은 학생들이 문장 하나하나를 번역할 줄은 알지만 그 문장들을 차곡차곡 결합해 하나의 메시지로 도출하는걸 어려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전반적인 문제해결과정을 선명한 로드맵 위에서 잘 이끌어가려면, 명확하고 정확한 문제정의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면서

'문제정의 그거, 하면 되는 것 아냐?'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이에 반대도, 찬성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문제가 얼마나 깊이 숨겨져있느냐에 따라, 이를 밝혀내는데 드는 노력과 시간은 비례하기 때문이다.경우에 따라 우리는 사용자 조사를 통해 생각보다 쉽게 진짜 문제에 이르기도 하고, 그러지 못하기도 한다. (사실 아닌 경우가 더 많다.)


비록 이 글을 통해 자신이 만든 포트폴리오의 내용이 얼마나 탄탄한지, 혹은 허술했는지 알게되었더라도 나는 그것이 너무 진한 주홍글씨로 개개인에게 남지 않았으면 한다. 왜냐하면 나도, 그런 불명확한 상황들을 통해 경험적으로 깨달은 내용이기 때문이다. 굳이 누군갈 탓해본다면 날 이렇게 사육시킨 한국사회와 한국의 교육시스템에게 비난의 화살을 던지고 싶지만, 이제와서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거니와, 앞으로의 내 인생은 내가 고치고, 다듬고, 설계해가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나는 독립된 성인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글을 보고, 과거의 잘못된 것에서 벗어나 지금, 그리고 앞으로는 많은 디자이너들, 그리고 디자이너 지망생들이 이 글을 보고 그 '오류'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가길 바랄 뿐이다.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알고, 하려는 사람이 많아져야, 비로소 이 직업에 대한 사회적 평판도 개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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