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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Jun 19. 2021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내가 지겹고 싫은 느낌


넙치의 말투에는, 아니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말투에는 이처럼 까다롭고 어딘지 애매모호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미묘한 복잡함이 있어서, 거의 무익하게 생각되는 이런 엄중한 경계와 무수한 성가신 술책에 저는 언제나 당혹하고 에이 귀찮아, 아무래도 상관없어, 라는 기분이 되어 농담으로 돌리거나 무언으로 수긍하고, 말하자면 패배자의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p.78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민음사


줄거리

요조는 세상을 두려워하고, 인간을 불신한다. 생존하기 위해 요조가 선택한 건 ‘익살’이었다. 그는 천진난만하고 장난꾸러기의 모습으로 가장한다. 타인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무언가 기대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런데 요조는 자신이 싫어하는 나쁜 친구와 어울린다. 또한 여자들에게 의존하며 서식한다. 그는 자신의 끔찍함에 대해 토로하며, 인간으로서의 실격을 선언한다. 그의 삶은 알콜 의존, 마약 중독, 그리고 자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서로를 속이면서, 게다가 이상하게도 전혀 상처를 입지도 않고,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정말이지 산뜻하고 깨끗하고 밝고 명랑한 불신이 인간의 삶에는 충만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p.27



독후감

우울할 때, 몇 마디 말보다 책이나 영화를 통해 위로받을 때가 있다. 마음껏 우울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감정을 적나라하게 느끼고 싶었다. 5년 만에 다시 읽은 인간 실격.



왜 사는지 묻고 싶은 순간이 있다. 나는 왜 살아야 할까. 나는 무가치한 인간이고, 세상과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사회적으로 민폐를 끼치거나 사람들을 해하지 않더라도, 나 스스로 존재의 가치에 대해 납득할 수가 없는데 왜 살아야 하는 것일까. 



사는데 이유가 필요하지 않으니,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라고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어떤 것에 욕심낸 적도 없고, 성취를 통해 되고 싶은 것도 없다. 싫은데 어쩌다 보니 나이가 들었고, 지금 죽지 않았을 뿐이다.




겁쟁이는 행복마저도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솜방망이에도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행복에 상처를 입는 일도 있는 겁니다.

저는 상처 입기 전에 얼른 이대로 헤어지고 싶어 안달하며 예의 익살로 연막을 쳤습니다.

 p.62




살아 숨 쉬는 내가 너무 끔찍한 기분



죽지 못해 사는 사람, 그게 나를 설명하는 전부이다. 그런데 그냥 사는 것에도 비용이 꽤 든다. 음식을 섭취하고, 옷을 입고, 보통의 사람처럼 보이기 위한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이미 지친 마음은 또다시 좌절한다. 매일 눈을 뜬 순간 자신에 대한 끔찍함을 느껴야 한다. 살아 있는 매순간 자기학대는 반복된다. 나는 나로서 살아갈 자신이 없다. 부디 죽고 싶은 마음뿐인데, 그것조차 비난받는다.



한번쯤 사람들은 자신과 세상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회화된 인간으로서 모습을 꽤 그럴듯하게 해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마냥 행복한 사람은 없으니까. 하지만 타인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할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자신을 포장하거나 적절히 감출 수는 있다. 아니면 직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감추는 것과 직면하는 것 모두에 실패한다.



밑바닥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사람은 없다.



요조는 자신의 결핍과 나약함을 인정했다. 내 자신이 너무 싫은 더러운 기분에 시달린 사람이라면 요조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다. 살아있는 순간이 죽어 있고, 오히려 죽음을 통해 고통을 멈출 수 있다면 죽음을 택하고 싶다. 감기에 걸렸을 때 약을 먹는 것처럼, 마음에 질병이 생길 때 멈추고 싶은 마음도 있다.



자기혐오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건 쉽지 않다. 사실 자기혐오는 자기애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밑바닥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인간 실격」을 좋아하고, 재미있게 읽었다. 나를 따라 친구가 「인간 실격」을 읽었다. 그는 요조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너무 재미없었다고 불만 섞인 얘기를 했다. 나약하고 이상한 인물이라서 몰입이 되지 않는다고..



그래, 「인간 실격」 은 우울할 때 읽으면 좋은 책이다. 스스로가 자격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면, 지루한 책일 뿐이다. 음울하고 음산한 분위기에 빠져드는 책이니까.


인간에게 호소한다. 저는 그런 수단에는 조금도 기대를 걸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한테 호소해도, 어머니한테 호소해도, 순경한테 호소해도, 정부에 호소해도 결국은 처세술에 능한 사람들의 논리에 져버리는 게 고작이니까.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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