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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Dec 21. 2022

수많은 탈락 이후, 입사 첫날

나는 하위권.밀려날 곳이 없다.


취업했다.

졸업 후 몇 년이 지난 후에야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무수한 서류 탈락과 면접 탈락을 거치고 나서 간신히 입사하게 되었다. 지난 시간 동안 나는 쓸모에 대해 입증하고자 했고, 수많은 ‘자격 미달’ 선고를 받은 후 좌절을 겪어야 했다. 살아야 하는 이유와 삶에 대한 의무감 사이에서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다.



취업이 아닌 삶에 대한 의문과  자신에 대한 회의감으로 인해 숨통조차 트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고, 스스로를 속이면서까지 나를 무장하곤 했다. 결국 감당하는  나인데,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최종 합격일을 고대했으면서 왜 너는 또 무얼 욕심내었던 거니.


최종합격된 곳은 꽤 괜찮은 연봉과 복리후생을 갖춘 중견기업이었다. 합격발표일, 나는 떨어질까봐 전전긍긍하며, 미리 술을 마셨다. 입가심이랄까. 괜찮아,떨어지면 어때라는 마음으로 불안에 못견뎌워 했다. 합격이 간절했었다. 하지만 합격 후 연수원 생활 중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직무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연수를 중도 포기한 채 다른 회사의 최종 면접을 보기로 결심했다.


인생 참 쓰다.


다른 회사의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다.

합격보다 익숙한 불합격이라는 세 글자와 밀려오는 후회. 취업하고 싶었으면서 막상 취업하자 직무 고민을 하고, 될지도 안 될지도 모르는 면접을 또 보러다니고 나 왜이렇게 멍청하지?선택이란 하나를 갖는 게 아니라 다른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였다.



선택이 결과론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후회라는 기회비용에 기인한다. 후회를 감내할 수 없는 건 자기 선택에 대한 긍정적인 결과만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인생에서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은 거의 없으며, 선택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하는 것이었다. 취업 준비로 인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었으면서 그 와중에 직무에 대한 고민을 왜 했니. 일단 들어가야 하지 않았겠니. 너도 네가 멍청하다는 생각은 하니.

후회는 가속도가 붙는다.


이미 늦어버린, 책임을 회피하고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후회에는 가속도가 붙었다. 밤낮은 바뀌었고 엉망진창으로 시간을 견뎌야 했다. 내 인생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밤을 견디면서 나는 일단 쓸 수 있는 이력서를 제출했고, 그중 한 곳에 최종합격했다.


5인 미만의 법인 회사. 신입 기준 연봉 삼천 중반.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있는 5인 미만. 신입 연수를 포기한 중견 기업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열악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돌아갈 곳은 없었고 더 이상 도망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입사한 회사에서의 첫날


입사 첫날, 대표 이사님과 사수 1명이 있었다. 작은 회사가 그러하듯 명확한 교육에 의한 체계를 기대할 수 없었고, 유일한 직원인 사수는 바빠 보였다. 아주 잠깐 2시간 짧은 교육 아닌 업무를 수행한 뒤, 사수는 자신의 일에 몰두했다. 모니터를 보며 나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고용 불안을 달래야만 했다. 나는 왜와 어디서라는 질문을 하다가, 인터넷을 하다가, 습관적으로 인터넷 기록을 삭제했다.



내가 주로 검색했던 건 ‘중소기업 입사 첫날’ ‘입사 첫날 일이 없다’ ‘신입 입사 교육’ 등이었으며, 다행히 나와 같은 사람들이 꽤 있어 위안을 받았다. 또한 최종 입사를 포기한 회사명을 검색하고, 현직자/전직자의 불만 섞인 리뷰도 읽었다. 그래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나를 못견디는 찌질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취업 준비는 길었고, 성취보다 패배에 익숙한 날들이 반복되었다. 다행인 건 내가 찌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나의 괴리감으로 인해 인생은 괴로워지는 구나


사수는 오후에 또다른 업무를 지시했는데, 끝난 뒤 자신의 업무에 다시 몰두했다. 그분의 업무는 상당했고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작은 법인 회사에 일반적인 기준과 기대심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에 납득했다. 나는 하릴없이 모니터에 이것저것 검색하며 업무 부담 없는 무의미한 시간들을 견뎌야 했다. 애매한 기간을 견디는 것도 능력이라고 했나. 재주라고 했었나. 아 좋은 게 좋은 거지. 합리화인지, 생존본능인지 스스로를 설득하는 시간을 보낼 즈음 퇴근시간이었다.



회사는 어때라는 친구에게 모든 것을 말할 수 없었다. 솔직하다는 것은 모든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있는 것을 말할 때 숨기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모든 것을 말하지도 않았으며, 말할 때 숨기는 것도 있었다. 내가 별로라고 인식하게 되는 것만큼 끔찍한 게 있을까.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점점 늘어날 것 같다. 내일은 내일 걱정하련다. 나의 입사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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