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들지 않고 제주에 살맨!

1. 제주에서 미니멀라이프는 가능한 것인가

by inne

제주에 온 지 벌써 아홉 번째 달에 접어들고 있다. 집은 오픈형 원룸으로 나와 내 강아지가 지내기에 적당한 곳이다. 이곳은 한 달 살기나 일 년 살기를 많이 해서들 그런지 이런 식의 원룸 매물이 수시로 올라온다. 아, 하려던 이야기는 집이 좁은 원룸인데 살림이 늘었다는 것이다. 물론 나와 다르게 미니멀하게 지내시는 분도 있으실 거다. 그러나 나의 경우, 나의 의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제일 먼저 들인 가전기구는 제습기다. 내가 거주한 원룸은 풀옵션이었기에 나는 내가 가전을 살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이곳, 제주는 섬이다. 상시 육지보다 습하다. 처음에 몇 달 동안 제습기 없이 지냈었다. 그때 나는 전부터 피부가 안 좋았지만 습진이 몹시 심해져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바닥은 습기로 끈적했다. 뽀송한 느낌이 간절했다. 덮는 이불마저도 눅눅한 느낌이 들어 이불을 덮지 않고 자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였다.


예전에 제주에 거주하던 어떤 분이 잠시동안 육지에 볼일이 있어 집을 비웠는데 돌아와 보니 옷이며 살림에 곰팡이가 펴서 모두 내다 버릴 수밖에 없었다는 슬픈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나의 이전 세입자가 이곳저곳에 두고 간 물이 꽉 찬 제습제통들은 제주 신참인 나에게 이곳에서의 삶이 습기와의 치열한 전투가 될 것임을 예고한 것이었다.


잠 못 들던 습한 밤에 나는 얼른 최대한 빨리 배송되어 오는 제습기를 주문했고 며칠을 기다려 받았다. 벅찬 마음으로 제습기를 틀었지만 웬일인지 물통에 물은 안 차고 집은 여전히 습한 것이었다. 소리만 요란한 제습기를 보면서 작동은 되는 것인데 내가 둔하여 실감을 못하는 것인지 분별하려 애쓰다 지쳐 창고에 넣어 버리고 결국 돈을 더 주고 모든 사람들이 모두가 좋다고 별점을 후하게 주는 제습기를 구입했다. 이 새로운 제습기는 작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급속도로 물통을 채웠고 그제야 나는 그전 제습기가 불량이었음을 확신했다.


두 번째 구입한 가전은 건조기다. 처음엔 햇살이 날 때 빨래를 건조대에 널어 말려보려 노력했다. 그러나 펼쳐진 건조대와 빨래들은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했고 그렇지 않아도 습한 공간을 더욱 열대우림에 있는 것처럼 만들었다. 따라서 나는 당근을 통해 육지로 가는 분의 건조기를 중고로 구입했는데 아무리 돌려도 건조가 안 되는 것이었다. 또다시 나는 눅눅한 옷을 만져보며 내가 느끼는 뽀송함의 기준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스스로 분별하기 위해 애써야 했다. 그리고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건조기 안의 회전벨트가 끊어지는 참사까지 겹쳤다. 알고 보니 이 건조기 판매회사가 중국에 회사를 넘겼고 서비스센터는 아예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왜 이리 하나도 쉬운 게 없는 것인가. 삶이 너무 고달프게 느껴져 살맛이 나지 않았다. 육지에서 이곳으로 오며 짐을 섬으로 옮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깨달은 나는 짐을 정말 하나도 늘리고 싶지 않았는데 가전제품만 벌써 두 개를 샀다( 잘못 산 것들까지 하면 네 개인가!)


음, 근데 그래도 지금까지 나는 거의 1년이 되어가는 시간 동안 제주에 살고 있고 어찌어찌 견딘 것이다. 어떻게 버텼지? 생각해 보면 이런 불편함을 상쇄시켜 주는 것들이 분명 있었다. 내 강아지와 눈만 뜨면 나가 감탄하며 걷던 산책길(그 길이 심지어 올레길!) 그리고 지척에 바다가 있었다. 제주에 와서야 나는 바다가 단순히 파란색이라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한 색조를 가졌음을 알게 되었다. 해가 질 때는 어떠한가. 바다 위로 지는 해는 그저 붉은 색조를 띄는 것이 아닌 몽환적이기까지 한 핑크빛을 내기도 한다.


올레길에서 매일 산책하는 호사의 대가라면!!

아무튼 지금 내 작은 면적의 집에는 넓은 공간에서 사용할만한 성능의 제습기와 건조기가 당당히 입주해 있다. 그리고 그들이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뽀송함을 만들어내주고 있다. 나중에 육지로 떠나게 될 때 이 녀석들을 함께 데리고 가고 싶을 텐데 벌써부터 고민이다.


아무튼 맥시멀라이프가 된 이유는 또 있다. 그건 점차 나누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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