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여기, 제주에 온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제주에 오게 된 것은 무슨 이유였지. 산책을 하며 까마득한 옛날일을 회상하듯 겨우 9개월 전 일을 떠올린다.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간사하다. 나는 평소 이 말을 자주 하는데 처음에 감탄하며 보았던 제주의 풍경을 이제는 조금 익숙함을 걷어내려 노력하며 봐야 하고 제주 생활의 어려움에 일 년을 채우고 다시 육지로 가는 것에 대해 고민하기도 한다.
아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서 나는 이곳에 왜 오게 되었을까. 육지에서 육지로 편하게 슝하고 이동하는 것이 아닌, 짐을 줄이고 줄여서 상자에 싣고 강아지를 비행기에 태우고 온 길. 나는 여기에 왜 왔을까.
여러 내 의지와는 다르게 이뤄졌기도 하고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멀리 떠나고 싶던 바람이 이뤄진 것이기도 하고 정확하게 말하기 어렵다.
오랜 시간 함께해 준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과정은 점진적으로 이뤄졌고 마지막 해는 함께할 시간을 연장하기 위해 약을 먹이며 고투하는 기간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마지막은 예정대로, 정말 예정된 시간에 딱 맞춰 온 버스처럼 왔다. 수의사 선생님은 심장약을 처방하며 약의 효과가 점차 줄기에 약의 용량을 조금씩 늘리게 되고, 더 이상 늘릴 수 없을 때를 우리의 이별의 시기로 선고했었다. 그게 빠르면 육 개월 길면 약 일 년 정도. 생각해 보니 약을 먹고 정말 딱 일 년 정도를 버텨주었다.
이 친구가 정말 긴 여행을 떠나고 나니 하루아침에 내가 하던 일들, 대부분의 일들이 사라졌다. 나는 이 친구의 간호를 위해 재택업무를 하며 거의 붙어있었다. 내 하루 일과는 수시로 약을 먹이고 걷지 못하는 친구를 데리고 최대한 많이 바람을 쐬어주고, 몸에 부담이 되지 않을 것들을 만들어 먹이는 것이었는데 이런 일상이 하루아침에 바뀐 것이다.
이 변화는 나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지금 나와 있는 강아지는 떠난 친구를 마치 자신의 친오빠처럼 살갑게 잘 따랐다. 아픈 녀석의 눈과 귀를 늘 핥아주고 몸을 붙이고 곁에 머물며 산책을 나가면 아픈 친구에게 맞춰 걸어주곤 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친구의 슬개골이 요즘 좋지 않다.)
그래도 셋이 함께 햇살을 받으며 앉아있으면 세상 부러울 일 없이 좋았다. 심장이 안 좋은 녀석을 위해 우리는 조금은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조용한 곳에 머물곤 했는데 그 시간들이 너무 그립다. 제주에서 산책을 하며 나는 이 좋은 곳에 우리 셋이 함께라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곤 아프지 않은 게 더 좋지 하고 하늘을 올려본다.
아 제주에 온 이유는 꼭 우리가 셋이 함께 산책했던 곳에 둘이 걷는 것이 괴로워서 피하듯 온 것은 아니다. 살던 집에 누수 문제가 발생했었고 일을 계속할 마음의 힘이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 여기 제주에 와서 나는 긴긴 잠을 자기 시작했다. 아픈 녀석을 늘 무의식 중에도 살피고 있었던 것인지 나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소진되어 있었다.
조용하기 그지없는 이곳에서 산책을 다녀오고 밥을 해 먹고 나서는 거의 잠을 잤다. 그 생각을 한다. 제주는 육지와 떨어진 곳이라는 점이다. 육지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하루 안에 어디든 갈 수 있다. 물론 제주도 비행기를 타면 금방이다. 그러나 막상 비행기를 타고 떠나야 한다는 것은 조금 더 품이 들어가고 결심이 필요하다. 그렇게 나를 조금은 멀리 떨어 뜨려 놓고 싶었다. 그리고 그곳은 조용하고 긴 잠을 잘 수 있어야 했다. 이 부분은 내 오랜, 상실로 인한 우울증세와 연결되는데 차차 이야기 더 나누고 싶다.
산책을 한다는 것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나와 내 강아지에게 마치 심박수가 점차 낮아지는 환자의 심장을 박동하도록 마구 심폐소생술을 시도하는 응급실의 의사 선생님 같았다. 과거형으로 썼지만 지금도 그렇다. 매일 '나를 살려놔 주시오' 하고 신발을 신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우리는 하루에 몇 번이고 나간다.
조금은 조용하여 우리가 우리 둘만이 아는 그 큰 상실을, 그 빈자리를, 아프지만 조금은 천천히 응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제주에 온 이유는 어쩌면 그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