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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짓는 은용이 May 31. 2021

보도와 논평 사이

The EunYongYi Times

 꾸준히 애써 보겠습니다. 치우치지 않고 고르게 알리며 비평하기. 그 사이 실체가 흐리터분해 죄다 밝힐 순 없겠으되 아무 말 없이 그냥 두고 봐서도 안 될 짬짜미 헤집어 보기.

 아래 글은 올 4월 한 달간 블로그와 브런치에 알린 ‘보도와 논평 사이’ 셋을 하나로 합친 것입니다. 애초 이 글 하나였던 걸 셋으로 나누었다고 봐도 좋겠네요. 셋은 4월 2일 <하이퍼튜브··· 과대 포장 안 될 말>과 4월 19일 <한국 자기부상열차의 실패>와 4월 26일 <빗나간 ‘자기부상열차 2020’ 꿈>이고.



과대 포장 하이퍼튜브···한국 자기부상열차 허상


장밋빛 전망 일색 하이퍼튜브, 상용화할지 의문

이상과 동떨어진 과학기술 정책·연구개발 역량

 

탕, 하는 소리만 들렸다. 지름 8.75cm, 길이 15cm인 두랄루민 캡슐을 지름 15cm, 길이 37.5m짜리 튜브 안에 쏘는 공기총(air gun) 소리였다. 캡슐 시속을 1000km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튜브 시험 구간을 1000분의 1기압 아래로 내리고 총을 준비하느라 24분이 걸렸다. 맨눈으로 볼 수 없을 빠르기였다.

지난 2020년 11월 12일 오후 2시 9분 경기 의왕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의 ‘축소형 하이퍼튜브(hyper tube) 공력시험장치’ 안에서 발사된 캡슐은 시속 1039km를 기록했다. 이날 이뤄진 공력(공기힘) 시험은 34회째였고,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건 처음이다. 하이퍼튜브는 진공 튜브 안에서 시속 1200km짜리 자기부상열차가 달리는 교통 체계를 일컫는데 아직 실증되지 않았다.

기자는 한국산업기술시험원으로부터 공인 인증을 얻고자 한 34회 시험의 참관자로서 현장을 지켜봤다.


▴”셋 둘 하나, 발사.” 2020년 11월 12일 오후 2시 9분 하이퍼튜브 연구원들이 관제소에서 캡슐 발사 버튼을 누르고 있다(왼쪽). 사진 11시 방향에 공력시험장치가 보인다. 오른쪽 사진은 캡슐 주행 시험 구간으로 초고속 촬영을 위해 조명을 켜 뒀다. 사진 12시 방향이 관제소다.


34회 시험은 실패였다. 시속이 1039km에 이르긴 했지만 캡슐 뒤쪽 끝 마개가 빠르기를 이기지 못하고 본체에서 나뉘어 떨어졌기 때문이다. 알루미늄에 구리와 마그네슘을 섞어 강도를 높인 두랄루민이지만 시속 1000km를 넘어선 충격을 견디지 못해 깨진 사례가 잦았다. 철도기술연 하이퍼튜브연구팀은 34회 시험 결과를 ‘후미부 분리’로 기록했다.

인증 책임자인 곽동근 산업기술시험원 연구원은 “실험이 안 됐다”고 말했다. “속도가 나오는 건 알겠는데” 캡슐이 나뉜 채 달려 시험 자체가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 캡슐이 튜브 안 어느 구간에서 분리됐는지를 정확히 알아 내기도 어려웠다.


▴김동현 철도기술연 수석연구원이 하이퍼튜브 시험용 15cm 캡슐(오른쪽 위)을 내보였다. 2020년 11월 12일 34회 시험에서는 왼쪽 사진처럼 캡슐 뒤쪽 끝 마개가 떨어져 나갔다. 마개가 나뉜 채 주행하는 모습이 초고속 카메라에 잡혔지만, 연구원 측이 공개를 꺼려 제공하지 않았다. 오른쪽 아래 사진처럼 시속 1000km를 넘어선 충격으로 뒤쪽 끝 마개가 깨지고 본체가 찢어지거나 우그러진 캡슐도 나왔다. 김 수석연구원은 “권총 탄알 빠르기인 시속 900km가 마의 구간”이라며 “(2020년) 9월부터 서서히 속도를 끌어올렸는데 900을 넘어서면 캡슐 깨짐이 잦아 지금은 (시험 체계를) 안정화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철도기술연 측은 2020년 9월부터 11월 12일까지 치른 34회 하이퍼튜브 공력 시험에서 캡슐 이상 없이 시속 1000km를 넘긴 게 “서너 차례”였다고 밝혔다. 취재 결과로는 10월 29일 33회 시험 때 시속 1019.3km, 10월 22일 24회에서 1049.02km를 기록한 것으로 확인됐다. 10월 28일에도 캡슐을 여덟 차례 발사한 가운데 31회 시험에서 1005.49km를 기록했지만 ‘캡슐 차량 분리’로 실패하고 말았다. 철도기술연은 이 가운데 캡슐에 큰 이상 없이 시속 1000km를 넘긴 33회 시험 결과를 보도자료에 담아 2020년 11월 11일 “세계 최초 성공”이라며 공개했고, 국내 여러 언론이 ‘비행기보다 빠른 기차?’라거나 ‘서울 부산 20분 주파 꿈의 열차’와 같은 장밋빛 기사를 쏟아냈다. 


열차 아닌 16m짜리 주행 캡슐


현실은 달랐다. 37.5m짜리 하이퍼튜브 공력시험장치 가운데 1000분의 1기압 주행 시험 구간(Test part)은 16m에 지나지 않았다. 발사부 뒤쪽에서 캡슐 주행 안내 와이어(Guidance wire)를 팽팽히 당겨 주는 곳 1.9m,  발사부(Lunching system) 14.7m, 제동장치(Braking devices) 4.9m를 빼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시험 구간을 비롯한 모든 장치 크기를 17분의 1로 줄였다.

실험 캡슐을 17배인 지름 148.25cm, 길이 255cm로 키워도 높이 150cm, 너비 160cm, 길이 360cm 안팎인 4인용 경차보다 작다. 같은 지름에 길이가 30cm인 실험 캡슐을 17배로 늘려도 6인승 이상 차량을 그려 내기 어렵다. 그나마 30cm 캡슐은 시험 초기에 시속 800km까지만 몇 차례 발사해 본 뒤 실험을 멈췄다. 뒤쪽 마개만 있는 15cm 캡슐과 달리 머리쪽까지 따로 조립해야 하는 “구조상 아직 큰 이점이 없어서” 실험을 중단했다는 게 연구팀 설명이다.

결국 한국 하이퍼튜브 현주소는 ‘소형 자동차 크기 차량을 겨냥한 16m짜리 공력 시험 장치’다. 연구팀은 2020년 11월 19일 비공개로 한 35회 시험에서 캡슐 깨짐 없이 시속 1022km, 이튿날인 20일 산업기술시험원 공인 인증을 위한 36회 시험에서 1019km, 같은 날 37회 실험에서 1016km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2020년 9월부터 11월 20일까지 빠르기 시험 37회 가운데 캡슐 깨짐 없는 시속 1000km 이상 주행에 네댓 차례 성공한 것이다. 실험을 이제 막 시작한 셈이어서 ‘서울 부산 20분 주파’는 언제쯤 이뤄질지 알 수 없다.

공력 시험 책임자 김동현 철도기술연 수석연구원은 “지금은 내구성 테스트를 계속하는 기간이거든요. (2021년) 2월까지 (시험 체계) 안정화 작업을 하고, 안정화되면 2월이나 3월부터 본격적인 시험에 (다시) 들어간다”며 “안정화 기간 동안 (시험 현장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의 지난 2020년 11월 19일, 20일 시험 참관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수석연구원은 “시험 장치 유지 보수에 들어간다”며 “발사해 보니 차량 모델에 흠집이 났다. (앞으로는) 흠집이 안 나고 (캡슐 가이드 와이어의) 출렁거림도 없어지도록 (시험 장치의) 4분의 1을 해체했다가 재조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시험 장치가 정밀해야 하는데 (연구원) 2층 복도에 설치하다 보니 바닥이 고르지 않고 울퉁불퉁했다”며 “완전히 정렬해 (차량 모델에) 흠집이 안 나도록 (장치를) 안정화하기 위해 (오는 2021년 3월까지) 더 이상 (언론 등에) 시연 안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철도기술연 하이퍼튜브 공력시험장치 개략도. 초고속 주행 ‘시험 구간(Test part)’이 16m로 설계됐다.


하이퍼튜브 개발 총괄자인 이관섭 철도기술연 신교통혁신연구소장은 “10년 내에 (상용화) 연구에 착수하고, (이어) 본격적인 실증 연구를 시작한 뒤 10년 내에 사람이 탑승할 수 있는 시속 1000km 이상 수준의 시스템을 만들어 보여 주겠다”고 말했다.

짧게 잡아도 10년여 뒤에나 ‘사람을 태운 채 비행기처럼 빨리 달리는 차량’을 실증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소형 차량이 아닌 ‘열차’로 실증하려면 연구개발 규모와 실현 가능성을 두고 또 다른 이야기를 덧붙여야 할 것으로 보였다.

이관섭 소장은 “(실제 차량 시험 운행용 튜브를 포함한) 테스트베드를 구축하려면, 저희가 국토교통부에 요청한 게, 7km 정도 건설하는 데 8000억 원”라고 밝혔다. 이 소장은 “서울 부산 간을 직선으로 꽂으면 정확히 320km가 나온다”며 “현 시점 토지보상비를 빼고 동일한 노선과 수송량을 감안해 뽑아 보니 KTX 건설비는 km당 269억 원인데 하이퍼튜브는 (그 값의) 53%이고, 운영비도 절반”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을 따라 추산하면, 토지보상비를 뺀 서울 부산 간 하이퍼튜브 건설비는 4조5622억 원쯤이다. 앞서 짚은 주행 시험 튜브 건설비 8000억 원을 더하면 5조3600억 원이다. 서울과 부산 사이를 이미 KTX가 달리고 있는데 5조 원을 들여 320km짜리 하이퍼튜브를 따로 까는 게 경제적일지 의문시됐다.

특히 부산행과 서울행 튜브 두 줄이 놓일 곳의 토지보상비는 쉬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큰 금액일 것으로 보였다.


‘반발식’ 자기부상열차 경험도 없다


건설기술연 하이퍼튜브연구팀을 비롯한 세계 주요 초고속 이동 체계 연구진은 진공 튜브 안에서 시속 1000km를 넘어 음속(1220km/h)에 다가서는 게 목표다. 웬만한 비행기보다 빠른 속도. 목표를 이루려면 시속 600km를 넘겨 달려갈 수 있는 ‘초전도 반발식 자기부상열차’를 함께 갖춰야 한다. 힘이 좋은 초전도 전자석으로 열차를 8cm에서 10cm쯤 공중에 띄워 달리며 이른바 ‘초고속’을 실현하는 체계다.

한국 과학계에는 그러나 초전도 반발식 자기부상열차 연구개발과 실용화 경험이 없다. 연구를 시작할 때 초전도 반발식을 덮고 상전도 흡인식을 선택했다.

건설기술연 하이퍼튜브 공력시험장치에도 초전도 반발식 자기부상 체계가 아직 없다. 실험 캡슐 한가운데에 구멍을 뚫은 뒤 주행 안내기 구실을 하는 ‘가이드 와이어’에 끼워 달리게 했다. 빠르기 시험만 한 것이다.


▴철도기술연이 보도자료로 제공한 하이퍼튜브 실험용 캡슐(왼쪽)과 하이퍼튜브 개념도. 캡슐이 실제 차량 크기를 17분의 1로 축소한 모델이라지만, 17배로 늘려도 오른쪽 개념도 속 ‘열차’가 아닌 경차 수준일 것으로 추정됐다. 초전도 반발식 자기부상차량 연구를 함께할 수도 없어 캡슐 한가운데에 구멍을 뚫은 뒤 ‘가이드 와이어’에 끼워 달리게 했다. 왼쪽 사진에서 캡슐 구멍과 와이어를 확인할 수 있다. 


현실이 이런데 2016년 2월부터 인천국제공항과 용유도 사이 6.1km를 오가는 자기부상열차는 무엇일까.

시범 노선일 뿐이다. 초전도체를 쓰지도 않았다. 궤도 아래쪽에 걸어 둔 열차를 상전도 보통 전자석으로 0.8cm쯤 끌어당겨 공중에 띄운 뒤 움직이게 했다. 이런 체계를 ‘흡인식’이라 일컫는다. 주로 중저속 도시형 자기부상열차에 쓰이고 이론상 시속 550km까지 달릴 수 있다지만 한국엔 이를 구현할 만한 체계마저 없다.

지난 2006년 도시형자기부상열차실용화사업단장을 맡아 인천국제공항 시범 노선 구축사업을 했던 신병천 박사는 “(인천공항 자기부상열차) 실제 운영 최고 속도는 시속 80km지만 시험으로 (설계 시속인) 110km까지 달려 보기는 했다”며 “기술은 (노선만 있으면) 시속 200km까지 낼 수 있는데 그 이상은 추진하는 방법이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엔 자기부상열차로 시속 110km보다 빠르게 달려 볼 노선조차 없다는 것. 신 박사는 시속 200km로 달려 보려면 “직선 노선으로 최소 1.5km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하지만 인천국제공항과 용유도 사이 노선엔 1.5km를 직선으로 달릴 만한 곳이 없고, 이는 곧 한국 자기부상열차가 시속 200km로 달려 본 적이 없다는 얘기다.


▴2020년 3월 19일 오후 6시 22분 자기부상열차 시범 노선 파라다이스시티역과 합동청사역 사이에서 인천공항 행 1002B와 교차하는 용유역 행 1004A. 굽은 선로 때문에 빠르기가 시속 30km로 떨어지는 구간이다.


시속 200km를 넘기려면 추진 방법을 바꿔야 한다는 신병천 박사의 말은 초전도 전자석을 이용한 ‘반발식’ 자기부상열차를 뜻한다. 상전도 보통 전자석보다 자기장 힘이 좋은 초전도 전자석으로 열차를 10cm쯤 공중에 띄워 달려야 한다. 열차를 흡인식보다 10배쯤 더 높이 선로 위에 띄워야 한다는 얘기다.

김창현 한국기계연구원 인공지능기계연구실장은 “2008년쯤 자기부상 방식을 검토한 끝에 저희는 ‘흡인식으로 하자’는 결론을 냈다”며 “시속 500에서 600km까지는 흡인식으로 하는 게 괜찮다고 봤다”고 말했다. 이창영 철도기술연 하이퍼튜브연구팀장도 “(초창기) 기술 평가를 할 때 궁극적으로 속도가 (시속) 550을 넘어가면 초전도가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었고, 500까지는 굳이 초전도를 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고 밝혔다. 그는 “2011년 수마(SUMA, 철도기술연의 자기부상열차)를 개발할 때에는 초전도가 없으면 아예 시작하지도 못하는 상황이어서 (일단 상전도 흡인식으로 시작해 다른 기술을 다 개발하고 난 뒤) 초전도는 나중에 기술이 개발되면, 그것으로 대체하면 우리가 시속 500 이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한국 자기부상열차는 연구를 시작한 1989년부터 32년 동안 ‘초전도’ 전자석 없이 달려왔다. 초전도 반발식이어야 실현할 수 있을 영화 <백 투 더 퓨처> 속 바퀴 없는 스케이트보드나 시속 1200km짜리 초고속 자기부상열차를 향한 길에 서지 않은 것. 한국 시민이 오래전부터 상상하고 기대한 자기부상열차와 동떨어졌다.

1911년 네덜란드 물리학자 카멜링 오네스가 발견한 수은의 초전도 현상은 2021년까지 110년 동안 세계 과학계 눈길을 사로잡았을 뿐만 아니라 인류의 꿈도 함께 품었다. 쇠붙이를 공중에 띄워 움직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바퀴 없는 스케이트보드와 초고속 자기부상열차 따위로 이어졌다. 하지만 사람이 탈 열차와 스케이트보드는커녕 아주 작은 ‘상온’ 초전도체 한 조각조차 110년째 개발되지 않았다. 임계온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고온 초전도체’ 연구가 궤도에 오른 1986년부터 헤아려도 35년 동안 애썼지만 아직 ‘상온’에 이르지 못했다.


빗나간 ‘자기부상열차 2020’의 꿈


‘2020년 국내에서 상온 초전도체를 이용한 자기부상열차가 실용화할 것’이라는 한국 과학계의 예측이 크게 빗나갔다.

17년 전인 2004년 과학기술 전문가 5414명이 참여한 ‘제3차 과학기술예측조사’에서 757명(1차 응답 354명, 2차 203명)이 짚은 상온 초전도체 이용 자기부상열차 실현의 해인 2020년이 지났지만 실제로 쓰이기는커녕 초전도 기초기술조차 개발이 요원하다. 2차 응답자 203명 가운데 64명은 관련 분야 전공자로서 “연구 경험이 있거나 기술 개발 동향을 잘 파악하고 있다”고 밝혀 당시 예측 신뢰도를 높였지만, 상온 초전도 자기부상열차는 백일몽이 됐다.

지난 17년 동안 이어진 한국 과학계의 초전도체 이용 자기부상열차 정책 기획·지원 체계와 연구개발 역량이 ‘2020년 실용화’에 닿지 못했다. 특히 제3차 과기예측조사는 정부가 직접 한 데다 2030년까지 펼칠 미래 국가유망기술개발종합계획과 국가과학기술기본계획의 바탕으로 ‘처음 활용’한 터라 이상에 동떨어진 한국 과학계의 17년 발자취를 방증했다.

정부는 2004년 12월 21일 제16회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2005년 1월 27일 오명 당시 부총리 주재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를 열어 대형국가연구개발실용화사업 예비타당성 조사 1번 과제로 자기부상열차를 꼽았다. 관련 시장 크기가 2020년까지 국내에서 45조 원, 해외에서 250조 원에 이를 테니 2008년까지 4500억 원을 들여 자기부상열차를 실용화하자는 게 과제의 핵심. 2020년까지 해외 시장의 20%쯤을 점유하면 59조 원대 매출이 예상되고, 관련 부품과 시스템 산업에서 1000명이 새로 고용될 것이라는 청사진과 함께였다.

올해가 2021년, 청사진이 제대로 인화됐을까.


▴2004년 12월 21일 열린 제16회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서 자기부상열차 실용화 사업이 집중 지원 과제로 논의됐다.


“상온 초전도체요? 개발되면 노벨상감이겠죠.”

이창영 철도기술연 하이퍼튜브연구팀장이 상온 초전도체를 이용한 자기부상열차 실현 여부를 두고 한 말이다. 노벨 과학상 정도는 따 놓은 당상이 될 만큼 상온 초전도체는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고, 그걸 이용하는 건 그야말로 꿈의 기술이라는 뜻이다. 한국 과학계가 고온 초전도체에 눈길을 뒀던 2004년에는 16년쯤 뒤 상온 초전도체를 찾거나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 듯하나 실제로는 달랐다.

초전도체는 섭씨 영하 240도 근처인 임계온도 아래에서 전기 저항이 0이 되는 물질. 세계 과학계가 이보다 높은 온도에서 전기 저항이 0이 되는 이른바 ‘고온 초전도체’를 찾고는 있지만 2016년까지 섭씨 영하 143도에 접근했을 뿐이다. 고온 초전도체는 저온 초전도체와 달리 원자 구조가 복잡해 과학계가 아직 원리를 다 밝히지 못했다. 보통 영상 15도쯤인 자연 그대로의 온도(상온)에서 초전도 현상을 구현하는 게 가능할지를 장담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창영 팀장이 상온 초전도체 이용 자기부상열차 실현 시기를 두고 “(옛 과학자들이) 되게 긍정적으로 예측하신 것 같다”고 짚고 “개발되면 노벨상감”이라고 본 까닭이다.

이는 곧 노벨상과 한국 과학계 현실 사이 격차이기도 했다. 2019년까지 한국 과학계가 상온에서 초전도성을 나타내는 재료를 개발할 것이라는 17년 전 예측 또한 크게 빗나갔다.

                             

▴2004년 제3차 과학기술예측조사의 소재와 생산 분야 94개 과제 가운데 초전도 관련 예측 실현 시기와 전문가 응답 수. 10번과 9번 과제는 예측이 크게 빗나갔고, 언제 이뤄질지도 알 수 없다.


한국 자기부상열차 수익 ‘0원’


지난 2006년 12월부터 2013년 8월까지 도시형 자기부상열차를 개발하고 인천국제공항과 용유도 사이 6.1km짜리 시범 노선을 만드는 데 4149억 원이 들어갔다. 국토교통부가 3500억 원을 댔고 나머지를 인천공항공사와 인천시가 나눠 냈다. 시범 노선 운영 안정화를 위해 열차 성능을 높이느라 2016년까지 3년 동안 263억 원(정부 199억 원)을 더 들였다.

인천공항 시범 노선 만들기에 앞선 1989년부터 1999년까지 과학기술부가 자기부상열차 시제품을 만드는 데 149억 원을 지원했다. 과기부는 이 돈을 포함해 이른바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데 18년 동안 283억 원을 썼다. 산업자원부도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실용화를 목표로 한 자기부상열차 개발에 152억 원을 보탰다. 철도기술연도 2011년 11월부터 2015년 5월까지 ‘수마(SUMA)’를 개발하고 시험하며 160억 원을 썼다.

모두 더하면 5007억 원. 한국 과학계가 1989년부터 2020년까지 32년 동안 자기부상열차에 5000억 원을 쓰고 얻은 건 무엇일까.

인천공항과 용유도 사이를 오가는 상전도 흡인식 자기부상열차부터 눈에 띈다. 2016년 2월부터 5년째 운행하지만 수익은 ‘0원’이다. 무료 시범 노선이기 때문. 2005년 1월 27일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에서 실용화 사업 제1 과제로 자기부상열차를 내세울 때 예상했던 ‘국내 시장 45조 원’이 물거품이 돼 사라졌다. 해외 시장 250조 원이 생긴 적도 없다. 2020년 자기부상열차 해외 시장의 20%를 점유해 59조 원을 벌겠다는 기대와 고용 창출 1000명도 헛꿈이었다. 32년 동안 5007억 원을 들여 가며 품었던 기대치가 모두 ‘0원’이 되고 말았다.

지난 32년 동안 다진 상전도 흡인식 자기부상열차 개발 경험과 시험 설비들로 한국 과학계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이제라도 초전도 반발식 자기부상열차 개발에 나서야 할 것인가.


▴인천공항 자기부상열차 시범노선 사업 개요. (자료 국토교통부)


“자기부상열차에 초전도를 쓰려면 먼저 달려야만 합니다. 기술 자체가 적어도 시속 100km를 넘어야만 (열차가) 부상하거든요.”

이창영 하이퍼튜브팀장의 말이다. 초전도 반발식 자기부상열차 개발에 필요한 설비 바탕을 짚었다. 열차를 궤도 위에 띄운 뒤 달리는 게 아니라 시속 100km를 넘겨 달리면서 부상해 초고속으로 나아간다는 것. 한데 철도기술연이 2011년 11월부터 2015년 5월까지 160억 원을 들여 자기부상열차를 개발할 때 만든 충북 오송 시험 노선은 120m에 지나지 않았다.

이 팀장은 “(그때 예산으로는 초전도 반발식으로) 달리는 트랙을 만들 수 없었고,  기껏해야 시속 30 ~ 40km쯤을 낼 만한 설비여서 거기서 쓸 수 있는, 달리지 않아도 (제자리에서) 부상시킬 수 있는 상전도 자석 흡인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는 곧 한국 과학계 자기부상열차가 상전도 흡인식에 발이 묶인 까닭이다. 지금 연구개발 동력을 초전도 반발식으로 바꾸기도 어렵다.

신병천 박사는 “한다면 초고속 자기부상열차를 개발해야 하는데, 기술을 개발해 (시속 550km 이상으로) 성능을 테스트하려면 시험선 구간이 최소 20km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비용이 조 단위로 들어간다”며 “이미 KTX가 있는 상태에서 다른 초고속 자기부상열차를 (위한 노선을) 깔 데도 없고, 그게 결국 매몰비용이 될 것 같으니까 (정부가) 투자를 못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따라서 “지금 상태는 (반발식 연구를 새로 시작할 가능성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신 박사는 덧붙였다. 그는 다만 철도기술연이 연구하는 “하이퍼루프에는 (초전도) 반발식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철도기술연은 2009년 1월부터 ‘초고속 튜브 철도 핵심 기술 연구’로 이른바 ‘에이치티엑스(HTX)’를 연구해 왔고, 2018년 5월 내경 2.64m에 길이가 각각 6m와 4m인 원통형 진공 챔버 두 개를 이어 붙인 하이퍼루프(hyperloop) 실험실을 만들기도 했다. 10m짜리 진공 튜브다. 한데 튜브 안에 자기부상 차량이 없다. 차량이 들어 있더라도 10m로는 달려 볼 엄두를 낼 수 없다.

이창영 팀장은 “챔버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은데 여러 개로 쪼개어 만들 수밖에 없는 튜브를 연결하는 방법을 찾고 진공을 유지하는 게 중요해 이음매 재질 연구를 목적으로 시제품을 만들어 본 것”이라고 밝혔다. 이 팀장은 특히 “(지금은 튜브가) 짧아서 안에 차량이 없습니다. 차량 안에도 많은 장치가 들어가는데 이게 튜브 안 진공 환경에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지의 연구도 앞으로 필요”하고 “차량은 초전도 반발식으로 추진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앞으로 연구가 얼마큼 가능할지 가늠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추정 연구비만 수조 원에 이를 것으로 보여 국책 지원 예비타당성 조사가 이뤄져야 하는데 시작조차 못했다. 철도기술연이 2018년 8월부터 1년 6개월 동안 3억8000만 원을 들여 예비타당성 ‘사전’ 기획 연구를 했을 뿐이다. 최근까지 큰 변화 없이 기초 연구만 해 왔다.

하이퍼튜브를 대형 국책 과제로 삼아 개발을 시작하더라도 한국에 걸맞은 교통 체계일지는 의문이다. 이관섭 소장은 KTX 건설비의 절반쯤으로 봤지만, 산과 강과 도시가 많은 한국에서 튜브를 땅 위에 연결하는 것만으로 큰돈이 들 테고 땅속에 묻더라도 예산이 얼마나 들지 정확히 짚기 어렵다.

특히 진공 튜브에서 시속 1200km로 달리는 열차 안 승객이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굽은 길에선 전투기에 버금갈 가속도 때문에 큰 압박을 느낄 수 있어 문제다. 서울에서 부산이나 목포 사이를 되도록 직선 튜브로 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과학계는 아직 직선으로 달리던 물체가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편안히’ 방향을 바꾸는 방법을 얻지 못했다.

이관섭 소장은 이를 두고 “(서울과 부산 사이) 하이퍼튜브 (설계) 곡선 반경이 40km로 거의 직선”이고 “서울 부산 간 (튜브) 320km 중에서 터널이 40%로 (직선 주로를 확보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굽은 길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지만 하이퍼튜브가 넘어야 할 큰 장애물은 여전히 많다.   

한국 과학계는 그동안 흡인식과 반발식으로 나뉜 자기부상열차 연구 갈림길에 선 채 나침반을 잃어 나아갈 바를 짚지 못했다. 정부도 마찬가지. ‘최근’ 진행하는 자기부상열차 연구개발·실용화 사업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기자의 관련 정보 공개 신청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토교통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 사이를 오간 끝에 “정보부존재”라는 답변만 나왔다. “진행 중인 자기부상열차 연구개발 실용화 사업이 없다”는 설명과 함께였다. 2021년까지 변화 없이 같은 흐름이 이어졌다.


▴국토교통부 자기부상열차 사업 관련 공개 정보. 정보 공개 신청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토교통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 순으로 넘겨졌다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에서 국토교통부로 되돌려진 끝에 나온 “정보부존재” 답변이다.


한국 시민 12만여 명은 1993년 8월 대전엑스포 때 560m짜리 편도 궤도에서 상전도 흡인식 자기부상열차를 처음 보거나 타 봤다. 그때 대전엑스포조직위원장이 오명 전 과학기술부 장관이었다. 신병천 박사는 자기부상열차 연구개발 사업에서 “오명 장관 역할이 컸다”며 “엑스포 때 자기부상열차를 데모하는 데 큰 영향이 있었고, (그가) 과학기술 부총리가 되면서 대형 국책 과제들을 좀 더 실용화 사업을 해서 국외에 나가자는 취지에서 (지원)했는데 그게 자기부상열차에 실질적인 도움이 됐던 것”이라고 짚었다.

오명 전 장관은 그러나 과기부에 재임한 2004년 제3차 과기예측조사에서 자기부상열차를 비롯한 주요 과제의 실현 시기가 많이 빗나갔다는 지적에 “하도 오래된 얘기여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과기예측조사 같은) 장기적인 플랜을 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어요. 플랜 하고 시정해 가며 방향을 잡아 나가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면 좋지 않을까” 하되 “요즘엔 (내가) 실무를 떠났기 때문에 이전 일을 두고 코멘트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2020년 5월 인천공항공사가 4억5000만 원짜리 용유도 자기부상철도 운영 진단과 대안 마련 용역을 발주했다. 무료 이용 체계여서 수익이 나지 않는 가운데 유지보수에만 해마다 80억 원까지 들어가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고민으로 읽혔다. 인천공항 자기부상철도 관제실에선 “(자기부상열차를 이용해) 무의도나 을왕리 같은 곳 관광하거나 낚시하는 분들이 많고, 조개 잡는 분들도 일부 있다”고 안내했다. 한국 자기부상열차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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