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하며 생각한 것 17
책 제목 굳힐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글 쌓기 시작했을 때 파일 이름을 ‘설거지하는 남자’로 한 터라 뭘 쓸지는 매우 뚜렷했죠. 내가 설거지를 언제 왜 시작했는지와 설거지하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들. 설거지하는 게 무거운 노동이어서 괴롭지만 얼굴 돌리지 말아야 한다는 깨달음까지.
글 쌓여 책으로 매조질 만할 때에 닿고는 파일 이름을 ‘설거지맨’으로 바꿨습니다. 슈퍼맨 같은 설거지맨. 땅 딛고 선, 특히 지구 씻는 설거지맨. 하여 출판사로 보낸 원고엔 가제 ‘설거지맨’이 붙었죠.
“좀 더 책 내용을 한번에 담으면서 독자 시선을 끌 수 있는 제목이 좋을 것 같긴 해요.”
편집자 말씀. 출간 앞두고 제목 굳히는 건 늘 어려웠습니다. 특히 책에 ‘좀 더’ 걸맞아 좋은 제목을 찾는 건··· 아, 녹록지 않아요.
밥 먹다가 ‘한국 남자 설거지뎐’은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그냥 ‘설거지뎐’이라 해도 괜찮을 것 같았고. 꿈 꾸다가 거짓 없이 참되고 마음 다한 설거지를 품은 ‘진심, 설거지’는 어떨까 되뇌기도 했죠.
“‘설거지를 하며 생각한 것들’도 좋은 것 같아요.”
편집자는 책 알맹이를 좀 더 세밀히 비춘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음. 좋은 것 같네요.”
나는 좋은 듯하다고 여겼되 거기서 멈추진 않았습니다.
“그냥 ‘설거지, 설거지’는 어떨까요.”
“설거지, 설거지.’”
김태영 씽크스마트 대표도 종이에 ‘설거지, 설거지’라고 보태어 적었되 거기서 멈추진 않았습니다. 좀 더 좋은 제목을 찾아야 하니까.
나는··· 언제 어디서나 문득 이런저런 제목을 떠올려 봤죠. 때론 골똘히. ‘어디 보자. ‘나는 설거지하는 남자다’는 어떨까. 음. ‘설거지하며 웃는 남자’가 낫나. ‘진심’이라는 낱말 다시 더듬어 보며 그냥 ‘남자, 설거지’라 할까. 음. ‘설거지와 남자’, ‘남자와 설거지’는··· 별로네. ‘설거지뎐’이 좋지 않을까. 설거지 이야기라는 거지. 짧게. 눈길과 머리에 딱 들어오지 않을까. ‘설거지뎐’을 다시 밀어 봐야겠다.’
나는 그러나 ‘설거지뎐’과 ‘한국 남자 설거지뎐’을 다시 밀어 보지 않았습니다.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음. ‘나, 설거지한다’거나 ‘나, 설거지하다’는 어떨까. ‘나는 설거지하는 남자다’나 ‘나는 설거지하는 남자’···. 오, ‘나는 설거지하며 나아간다’가 좋을 듯한데. 아니, 별론데. 별로야.’
‘음. ‘내 슬기로운 설거지 생활’은··· 티브이 드라마 흉내겠고. ‘나는 설거지한다’, ‘나는 설거지를 한다’, ‘나는 지난날 내 설거지를 몰랐다’는 어떨까. 몰랐다? ‘알지 못했다’고 하는 게 나으려나. ‘내가 모르던 당신의 설거지’, ‘당신이 알지 못한 내 설거지’는··· 하하, 좀 우습네. ‘당신이 알지 못한 당신의 설거지’는? 뭐람. ‘당신은 모르실, 아니, 모를 설거지뎐’은 또··· 뭐람. 하하. 영화 <폭풍 속으로>처럼 ‘설거지 속으로’라 해 볼까. 괜찮은 듯한데. 음. 그냥 ‘설거지하다’라 해 볼까. ‘설거지하며 생각하다’나.’ 하여 나는.
“‘설거지를 합니다’는 어떨까요. 다큐 내레이션하는 느낌으로.”
“‘60년대 남자, 설거지를 시작합니다’도 괜찮을 것 같아요.”
“윽. 60년대 남자.”
“아··· 하긴 그렇네요. ^^;;”
“윽. 화살 두 번 맞은 듯함. ㅋㅋㅋ ‘남자, 설거지를 합니다’··· 어떨까요. 느낌 좀 있네요.”
“좋습니다!”
“예. 좋은 것 같아요.”
김태영 대표도 편집자와 나 사이에 오간 여러 제목 끝 <남자, 설거지를 합니다>에 “네, 좋아요”로 뜻을 모았습니다.
나는 그리 다 끝낸 것으로 알았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좀 더’에 다시 붙들렸습니다. 아직 인쇄한 게 아니니 종이에 찍을 때까지 내내 새로 짚는 거예요. 하하, 다시 어려워진 거죠.
“‘남자’를 빼고, 그냥 ‘설거지를 합니다’로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막걸리 나누던 오철우 과학기술학 박사 말씀. ‘남자’라는 낱말에 매일 까닭이 없다는 뜻이었죠. ‘그냥 ‘설거지를 합니다’라··· 괜찮을 것 같은데.’
나는 다시 뱅뱅. ‘설거지’와 ‘남자’와 몇몇 풀이씨(용언)를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고, 머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