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하며 생각한 것 15
“설거지를 하십니까?”
“설거지를 어떻게 해요.”
“나는 집에서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집사람한테. 남자가 하는 일이 있고, 여자가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하늘이 정해 놨는데, 여자가 하는 일을 남자한테 시키면 안 된다. 그러나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의)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집안을 책임지는데 설거지나 빨래 같은 건 안 한다는 뜻···?”
“절대 안 해. 그, 하면 안 되지!”
한국에서 정치하는 한 남자가 티브이 프로그램 진행자와 주고받은 말입니다. 2017년 사월 17일이었죠. 설거지와 빨래 같은 걸 하지 않는 자기 삶이 자랑삼을 만하다 여겼을까. 그는 “전기밥솥도 열 줄 모르고, 라면도 못 끓인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의 말과 몸 가누는 모양새를 보고 ‘매우 놀랍다’고 느꼈죠. 21세기인 지금 대체 누가 어디에 남자 할 일과 여성 할 일을 따로 정해 뒀다는 건지 몹시 궁금하기도 했고. 사오륙백 년 전 조선 시대 때에나 들렸을 ‘하늘 남자 땅 여성’이 여태 흘러 다니며 귓전을 울리니 거참 고약합니다.
“나도, 아무 생각 없이 답변했어요.”
정치하는 그 남자가 2020년 오월 18일 삼 년 전 설거지 발언을 두고 새롭게 한 말입니다. 같은 진행자에게. “저는, 설거지는, 그 이후로는 하죠”라고 덧붙였죠. 다들 웃으며. “절대 안 해”에서 “하죠”로 백팔십도 바뀐 거예요.
그의 움직임과 생각 바탕이 고스란히 다 바뀐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랬어요. 저희들 세대에는 하우스 와이프 있었고, 밖에 나가서 일하는 남자 있었”다고 말해 옛 세태 뒤에 숨으려는 마음이 엿보였거든요.
아쉽습니다. 그가 ‘그릇된 생각이고, 잘못한 일이었다’고 깔끔하게 말했다면 더욱 좋았을 텐데.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일하겠다는 이가 ‘하늘 같은 남편의 대장 노릇’ 따위에 사로잡히면 곤란합니다. 그가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위아래 없이 고르고 한결같기를 바라고, “그 후로는” 설거지를 한다니 박수 쳐 주며 오늘은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