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하며 생각한 것 14
남자만 모인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나는 다녔습니다. 1981년부터 1986년까지 육 년 동안. 교실 안 싸움박질. 서로 더 센 척 머리 터져 가며 파닥거리는 걸 봤죠.
특히 삼월엔 기선 잡으려고 거의 날마다 푸닥거리하듯 주먹다짐하기 일쑤. 중학교 이 학년 때 한 친구가 키 백육십삼사 센티미터쯤 될 뼈대와 주먹으로 백사오십 센티미터쯤이던 보통 벗들을 두루 눌렀습니다. 교실에 담임 선생 없을 땐 그 친구가 큰소리치는 꼴이 됐고. (그 친구가 아마 학교에서 가장 센 싸움꾼이었을 겁니다.)
어느 날 아침 학교에 가는데 누군가 팔을 내 어깨에 턱 걸치더군요. 그 녀석이었는데 나는 제대로 느꼈습니다. ‘하, 나보다 크긴 한참 크구나.’ 걔 팔이 내 어깨에 매우 편안히 내려놓였으니까. 나는 누군지 보려고 고개 틀어 올려다봐야 했고.
나는 중학교 삼 학년 때로부터 고등학교 이 학년 사이에 키가 그나마 좀 자랐습니다. 백칠십삼 센티미터를 넘어 보통 키에 닿았죠. 그 무렵 어느 날 옛 중학교 가던 길을 다시 걷게 됐는데 저만치 앞에서 마주 오던 한 사람이 나를 보더니 얼굴을 찡그리고는 욕 내뱉으며 갑자기 옆 골목으로 사라지더군요. 눈길 마주치는 거 피한 채.
낯익어 곰곰 짚어 보니 그 친구였습니다. 중학교 이 학년 때 키와 뼈대 그대로 멈춘 성싶더군요. 몸집 뒤집힌 모습으로는 나를 다시 만나기 싫었던 듯합니다. 같은 반 친구 사이였는데 그게 뭐 어떻다고.
그 친구는 중학생 때 이른바 ‘남자다운 남자’로 어깨에 힘 줬어요. 뼈대 크고 싸움 잘하는 남자. 유치했던 건데 지금은 달리 살겠죠. 주먹질로 살아갈 순 없을 테니까.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 궁금하네요.
지금 21세기인데 여태 ‘남자답다’는 것에 매여 함부로 말하고 허투루 주먹질하는 남자를 종종 봅니다. 특히 자신보다 작고 여린 사람에게.
참으로 비겁한 짓이죠. 그가 ‘남자다움’ 놓고 ‘사람답게’ 살아가길 바라 마지않습니다. 어깨 힘 빼고 함께 웃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