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글쓰기 재능의 저주 (2)

저주가 축복이 되려면

by 이은율

다시 출발선 뒤에서 대기하는 마음


교보스토리대상에서 장편 우수상을 탄 이후, 나는 내가 글 쓰는 자로서 출발선은 넘어가게 될 줄 알았다. 수상한 글이 책으로 출판되고, 다음 글을 쓰게 되면 다시 공모전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출판사에 내보는 일이 출발선을 넘은 작가의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 글에서 밝혔듯 내 소설은 종이책 출판사와 매칭되지 못했고, 전자책으로 출판됐다. 내 다음 글을 궁금해하거나 기다려주는 출판사도 없다는 소리다. 상을 받았어도 결국은 출발선을 넘지 못하고 제자리로 돌아온 기분, 아니 현실이다.


출판 시장이 작은 편인 우리나라에서,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것만으로 먹고사는 작가는 드물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나 역시 이번 계기로 전업작가가 되길 꿈꾼 것은 아니다. 다만, 나 스스로에게 책을 한 권 낸 작가라고 부끄러움 없이 말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말하기가 왠지 조금 민망하다. 그래서 그렇게 말한 적도 없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이지만, 덤덤히 받아들인다. 재작년의 수상과 그 글의 전자책 출간은 내가 글 쓰는 것에 대한 작은 격려였고, 나는 여전히 출발선 뒤에서 대기 중인 습작생이라는 것을.



쓰고 있는 다음 작품과 쓰고 싶은 여러 글들


나는 지금 장편소설을 하나 쓰고 있다. 재작년에 교보스토리대상에 글을 투고한 직후 새로 시작한 글이다. 마감의 동력을 얻기 위해서 작년에는 브런치 출판 프로젝트에도 응모를 했었다. 대차게 떨어졌지만 나름의 수확은 있었다. 가장 큰 수확이라면, 셀프 마감이긴 하지만 매주 연재일을 정해놓음으로써 어떻게서든 글을 쓰게 됐다는 것. 그리고 연재 형식으로 글을 쓰는 게, 그냥 문서를 열고 글을 쓰는 것과 꽤나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십수 명 정도의 많지 않은 분들이지만, 글을 꾸준히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는 것도 힘이 됐다. 목표는 이 소설을 연말연시 중에 마무리하고, 장편소설 응모를 하는 몇몇 공모전에 투고하는 것이다. 사실 요즘 글 쓰는 일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기 어려운 현실을 살고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진도도 더디고 갑자기 훅 자신이 없어지기도 한다. 그래도 완성은 꼭 해낼 거다.


소설 말고도 쓰고 싶은 글들이 더 있다. 브런치북으로 제작하고 싶은 주제를 구체적으로 3개 정도 머릿속에 그려놨다. 이중에 하나는 내가 나름 내 전공을 살려서 깊이 있고도 흥미롭게 사회 현상을 다뤄볼 수 있는 탐구류의 글이고, 다른 하나는 가볍고 포근한 분위기의 감상류의 글이고, 마지막 하나는 사진 에세이다. 사실 이중에 뭐라도 당장 써보고 싶은 마음이 보글보글 끓는데, 참고 있다. 연말까지는 쓰던 장편을 마무리하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과연 계속 쓸 수 있을까


나는 현실적이고 계획적인 사람이다. 어떤 일에 대해서 베스트 시나리오와 워스트 시나리오, 그리고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 등을 잘 분석해서 도전을 하는 편이다.


글 쓰는 일에 있어서 내 베스트 시나리오는 간단하다. 쓰고 있는 장편 소설이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고, 책으로 나오고, 평단과 독자의 좋은 반응을 얻고, 다음 글을 계속 써가는 것. 그렇게 써가는 글이 점점 더 깊이 있고 의미 있는 글이 되어 가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여러 상도 타고, 상금이나 인세로 수익도 나고, 좋은 인연들도 만나면 더할 나위 없다.


워스트 시나리오는 더 간단하다. 내가 결국은 글 쓰는 일을 포기하는 것. 이건 더 덧붙일 말이 없다.


자, 중요한 건 세컨 워스트 시나리오다. 시간을 쪼개가 마음을 내어서 지금 쓰고 있는 장편소설을 열심히 썼고, 투고를 했는데, 아무런 결실이 없다고 치자. 어찌어찌 마음을 추스르고 단편소설이나 브런치북에 글을 쓰게 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쓴 글들도 별다른 인정도 주목도 받지 못하고 인터넷상의 한 페이지만을 차지하고 있다고 치자. 이때 나는 어떤 마음일까. 이쯤 됐는데도, 취미를 넘어서는 시간 할애와 마음 할애를 해가며 계속 쓰려고 하는 건 욕심, 낭비, 고집 아닐까.


내가 글을 쓰는 길의 시나리오 중에서 가장 가능성 높은 것은 세컨 워스트 시나리오일지도 모른다. 거기서 계속 써간다면 또 다른 시나리오의 가능성을 가져가는 것이고, 거기서 쓰는 것을 멈춘다면 워스트 시나리오로 이 길이 종료되겠지.



나는 왜 쓰는가


글을 읽고 쓰는 일에 애정을 가지고, 적지 않은 시간과 마음을 투자해 온 건 내 선택이었다. 지금까지는 임팩트가 크거나 유효한 결과를 거두진 못했지만, 따스하고 소소한 격려(작은 수상, 내 글에 대한 감사한 평들)는 종종 있었다. 이런 따스하고 소소한 격려는 내가 글을 쓰는 데에 분명 힘이 됐다. 그리고 임팩트 있고 유효한 결과는 내가 글을 쓰는 데에 있어 어떤 지향점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나는 누군가의 인정을 받고, 그것이 더 권위 있고 스케일 큰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목표로 글을 쓰는가. 솔직히 말해서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대답하는 것도 꺼려진다. 수상, 출판, 인세, 좋은 평은 내가 글을 계속해서 쓰고, 잘 쓸 때 지나게 되는 과정임은 분명하지만, 내가 지금 글을 쓰는 최종 목적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왜 쓰는가.


대세를 따라 재테크에 관심을 쏟든, 박사 학위까지 받은 내 커리어에 더 올인을 하든, 운동으로 내 몸을 더 관리하든, 조금 더 실속 있고 확실한 일들이 많은데, 왜 나는 쓰려고 하는가.


더 멋진 대답을 하고 싶지만, 솔직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을 거 같다. 나는 글을 읽을 때, 가장 충만했다. 본디 성격은 세상과 사람에 대해 냉소적인 편이지만, 책 속에서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일상에서는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마음들과 세상의 어떤 면모들을 깊숙이 들여다볼 때, 비로소 타인을 향한 이해와 사랑의 씨앗을 마음에 품을 수 있었다. 좋은 글들은 그렇게 내게 인생의 스승이 되어줬다. 그리고 그렇게 글이 내게 큰 가르침을 주었으니,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은 건 당연한 것 같다.


만약 내가 계속 글을 쓰면서, 지금은 부족한 내 필력과 인생이 더 갈고 닦여진다면, 언젠가는 내 글도 누군가에게 그런 경험을 선사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내 필력이 더 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육상선수는 다 엄청난 노력을 하겠지만, 모두가 다 10초 대로 뛸 수 있는 건 아니고, 모든 피겨 스케이트 선수들이 다 또 엄청난 노력을 하겠지만 모두가 다 쿼드러플 점프를 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 글이 날 감동시켰던 글처럼 대단한 글이 안 될 수도 있다는 리스크(굉장히 슬픈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일단 도전해 보는 것이, 지금까지의 내 선택이었다. 결실이 없더라도 후회는 없을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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