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나무

오늘 아침, 빼앗긴 눈길이 머문 곳

by 정은유


휴가였던 월요일, 민원 고객 두 시간 응대하느라 육신이 제대로 털렸던 어제, 그리고 오늘은 수요일.

아침에 출근하는데, 느낌 상으로 목요일쯤 된 거 같은 거다. 왜 이러나 했더니 내일만 일하면 휴일이라 몸 시계가 이미 주말권에 접어든 거지. 의식이 몸을 지배한다는 말을 이렇게 실감했다.


배가 살짝 고픈듯한 게 라떼 생각이 나서 1층 카페에 들렀다. 따뜻한 걸로 주문해 놓고 픽업대 앞에서 기다리는데, 그동안 아무 관심 없던 것에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갔다.




작년 말에 카페에서 이벤트를 했었다. 제법 큰 나무와 끈, 메모지, 색상 펜을 준비해 놓고 새해 소원을 적어서 원하는 위치에 걸라고 했다. 일명 소원나무를 준비한 거다. 메모지 한 귀퉁이를 찢어서 응모함에 넣고 가면 나중에 경품 추첨도 한다고 했다. 살면서 뭔가에 당첨되거나 이벤트에 뽑혀본 적 없는 일인이라 해봐야 뭐 해, 소원 적는다고 다 이루어지나 하고 말았다.


말하자면 그러니까 이 나무가 들어선 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 왜 이제야 관심이 갔을까. 많으면 하루에 두 번씩 다녀갈 때도 있으면서 눈길 한 번을 안 주더니, 오늘은 무슨 영문이냐면 이러려고 그랬던 거 같다. 오늘의 글감 때문!




무심결에 눈길 닿은 곳에 이 문구가 있었다. 아니, 어쩜 얘가 나를 부르고 내 시선을 끌어당긴 건 아니었을지. 두 눈에 박히자마자 지구상의 시간이 멈춰버린 느낌이었다. 주문한 커피가 나왔는데 찾으러 가지 못하고 핸드폰을 꺼냈다. 가슴에 박히고 폰으로 박제해 둔 바람에 오늘 자꾸 생각났다.


연말이 되면 ‘송구영신’이라 하면서 묵은 해 보내고 활기찬 새해를 맞이하자고들 한다. 어차피 한 해 다 갔는데 마음 힘든 일 털어내고 좋은 것만 생각하자고 서로를 북돋아 주기 바쁘다. 새해 소원은 그래서 희망적일 수밖에 없는데, 이 분은 어째서 퇴사가 소원이었을까,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소원은 이루었나 등등으로 생각회로가 풀가동 되곤 했다.


직장인 중에서 관두고 싶단 생각 한 번도 안 해본 사람, 설마 없겠지. 끝을 각오했다는 건 그만큼 지쳤다는 뜻이고, 한편으로는 이런 날 좀 봐달라는 외침이기도 할 거다. 전에 누군가가 그랬다. 입사는 내 맘대로 안되는데, 퇴사는 내 마음이라고. 회사 다니는 동안 내 뜻대로 결정할 수 있는 건 퇴사뿐이라고. 맞는 말이네 하면서도 단물 빠져 딱딱해져 버린 껌을 씹는 듯 불편하고 씁쓸했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다. 내가 속한 곳에서 더 이상 도망칠 데가 없을 때 내릴 수 있는 결정은 단 두 개. 버티거나 혹은 관두거나라는 것을.


설령 그렇더라도, 저 메모의 주인이 할 수 있는 게 퇴사만은 아니었길 바라고 또 바랐다. 메모지 위에 펜을 들었는데, 막상 소원 적으려니 어색한 기분에 농담 반 진담 반의 투정이자 푸념 끄적인 거였기를.


아니, 혹시 모를 일이다. 지긋지긋한 회사 관두고 새로 시작한 곳에서 이전보다 수백수천 배 행복할 수 있는 거니까 어떤 모습이든 간에 잘 지내고 있기를... 이러면 된 걸로 해야겠다.






‘헤맨 만큼 내 땅이다’


오늘 글감으로 받은 문구이고 나는 처음 접했는데, 검색해 보니 유명한 말이었다. 볼수록 멋진 말 같다. 방황의 시간, 절망의 무게만큼 내가 자라고 나아가고 단단해지는 거라니, 이보다 더 멋지게 긍정의 힘을 넣어주는 표현이 있을까 싶다. 사는 게 버거운 순간이 올 때 떠올리며, 발끝에 힘주어 걸어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