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에 대하여

게으른 귀차니스트지만 할 건 합니다.

by 정은유


나는 어떤 것이든 수집가 체질이 아니다. 천성이 부지런하지 못하여 귀찮은 건 질색이고, 그러다 보니 후에 치울 일 걱정이라 쓸데없는 물건 쌓이는 것도 못 본다. 자신만의 취향을 즐기기 위해 이런저런 거 수집하는 사람을 보면 그 열정이 부럽고 대단하다 싶지만, 그들 영역에 합류하고 싶지는 않다. 굳이 공수래공수거를 들먹이지 않아도 사는 동안에 손때 묻은 짐들을 최소한으로 둘 생각이다.


이런 내가 집착하는 게 있다. 그런데, 실체는 없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언젠가를 위해 미리미리 마음 한편에 쟁여두는 것, ‘긍정력’이다.


출근길에 사들고 온 모닝커피에 잠시 취해 “그래, 오늘 파도도 버틸 만하겠다” 싶은 순간.

오랜만에 만난 동료와 티키타카가 잘되어 온기 가득한 에너지가 느껴진 순간.

하루 일과 마치고 들어온 아들 얼굴이 마냥 어둡지만은 않아서 가슴 한쪽이 놓였던 순간.

나는 그때그때 긍정의 힘을 한 줌씩 모아 온 것 같다. 마음의 저장고가 가득해질 때까지.






어제는 이 긍정력이 만렙을 찍은 날이었다.


퇴근길에 집과 반대 방향에 있는 김밥집에 들렀다. 컵라면이랑 같이 저녁 먹을 생각에 아들에게 전화했는데 받지 않더니, 김밥 사들고 횡단보도에 있는데 용케 콜백이 왔다. 근처 미장원에서 헤어 커트하고 나오는 길이라길래 운명처럼 만났다.


이것만으로도 왜 이리 반갑고 좋던지. 초등학생 때 지하철역으로 마중 나와서는 내 손 잡고 주스집 가자고 꼬시던 추억이 떠올라 그랬지 싶다. 그 주스집 옆에 수제 만둣집이 생겨서 만두까지 살뜰히 사 갖고 들어와 모처럼 즐거운 저녁을 함께 했다.


기쁜 일이 하나가 더 있다. 사춘기 아니랄까 봐 앞머리고 뒷머리고 덥수룩이 스타일만 고수하더니, 5년여 만에 아주 다른 아들이 되어 나타난 거다. 만성 체증이 풀린 듯 시원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내 새끼 뒤통수가 이렇게나 동그랗고 예뻤나! 일부러 뒤따라 가면서 혼자 흐흐흐 했다가 배시시 했다가 난리를 친 것 같다. (... 네, 저는 지독히도 구제불능인 고슴도치 엄마입니다~. ^^;)






긍정력 수집의 좋은 점은 굳이 드러내거나 반대로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눈에 보이는 공간을 차지하지도 않고, 시간의 먼지도 쌓이지 않는다. 혼자 모아 두면 내 마음에 단단한 빛의 섬이 생기고, 누군가에게 작은 빛을 나눠주어도 줄지 않는다. 되레 퍼뜨릴수록 빛의 크기가 더 커지는 기묘한 자산이다.


나는 오늘도 최선을 다해 긍정의 힘을 모으는 중이다. 이왕이면 초울트라 파워 버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