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그라드: 최후의 전투> : (Stalingrad, 1993)
러시아의 에는듯한 시린 겨울은 모든 것을 얼린다. 목숨마저 불사지르는 애국심도 죽고 얼어붙었다. 얼어깨져버리는 곳, 바로 스탈린그라드이다. 각자의 인생은 각기 다른 세계관을 가진 폭넓은 합주이다. 하지만 한 가지의 죽음만을 연주하는 곳, 스탈린그라드이다. 그야말로 추위로 얼어붙은, 하나로 뭉쳐지는, 같은 결말로 맺어지는, <스탈린그라드: 최후의 전투> (Stalingrad, 1993)는 동결(凍結, 同結)이다.
<스탈린그라드: 최후의 전투> (Stalingrad, 1993)는 제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히틀러의 독일은 유럽과 아프리카를 점령해나아갔고 불가침을 약속했던 러시아에 큰 야욕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러시아 점령을 위하여 아프리카에서 공을 세운 제 6군은 파울루스 장군의 지휘 아래 스탈린그라드로 진격한다. 한스 중위, 롤로 병장, 에미콜즈, 뮬러, 오토, 프리츠 등의 수많은 전우들은 러시아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끝없이 광활한 러시아의 땅, 이 땅에 독일의 고속도로가 깔리고 독일 트럭이 지나갈 날을 기다리며 같은 풍경을 끝없이 함께 바라본다. 그러면서 전쟁 이후의 미래를 이야기하며 시덥지 않은 내기를 한다. "저랑 내기하실래요? 전 살아남고 중위님은 아니에요." "좋아, 뭘 걸거지?" "중위님한테는 물 두 통만 받죠." 열차는 내기의 결말을 향하여 달린다. 어두운 터널 속 보이는 초록빛 끝, 묘하게 안개가 자욱하다. 그것은 히틀러의 길, 스탈린그라드가 그들에게 같은 결말을 맞이하는 운명을 쥐어주었다는 의미였다. 그 길에는 군인의 시체 덩어리만 남아있었지만 그럼에도 군인들은 걸어나갔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실패한 미래를 본능적으로 직감했음이 보였다. 다만 눈빛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겨울이 다가올 수록 스탈린그라드는 죽음이라는 잿빛이 생기를 띄게 되었다. 그러나 이곳은 인간이라는 선혈을 뿌려도 붉은 것 조차도 잃어버리는 생기 없는 공간이었다. 그런 공간 속에서 한스 중위와 전우들의 애국심도 생명력도 무기력해진다. 그렇다, 스탈린그라드는 인간을 흡수해 더욱 활기넘치게 추위를 내뿜어내는 것이다. 인간을 꺾고 진정히 서는 겨울은 너무 추웠다. 첫 스탈린그라드행 열차 안은 그리 따뜻하지 않았던가, 무엇이 그들을 얼렸을까? 그래서 프리츠는 종종 말했다. "병장님은 이미 죽었어요."
전쟁에는 화기와 군인만 존재한다. 그것도 신체 부상 정도에 따라 분류된 살아있는 군인, 경상 입은 군인, 중상 당한 군인, 죽을 군인, 죽은 군인은 내던지고 죽지 않은 군인은 죽기 위해 나선다. 무엇을 위하여? 인간 생명 이상으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허상 가득한 국가를 위하여 수 천만의 군인들이 첫 발돋음부터 죽어갔다. 국가를 위한 전쟁에서의 전사는 군인으로서 자랑스러운 일! 애국심을 가장한 국가의 폭력에 휘둘린 개인은 진실로 자랑스럽든지 두렵든지 달려야 한다. 죽어가는 자신을 느끼는 곳에서 인간은 과연 자랑스러울까? 전투 속 보여지는 묘한 눈빛들이 느껴진다. 인간은 인간을 죽이지 않는다는 초월적인 본능들이 서려있다. 그걸 깨뜨리고 타인을 죽이고 자리선다. 그들의 발걸음에는 일말의 죄책감이 따라간다. 죽이면 죽일 수록 죽임당할수록 살아남은 전우들은 무거운 죄를 달고 살아죽는다. 그것은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을때 살아남은 자에 죄를 묻는다. 그리고 언제 죽을지 묻는다. 이미 그땐 많은 인간이 죽고 몸뚱아리만 움직일 뿐이겠지만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프리츠의 "병장님은 이미 죽었어요."라는 말이 일맥상통하게 된다.
한스 중위와 그 전우들은 스탈린그라드행 열차에서 누구보다도 군인이었다. 수많은 전투에서도 살아남았다는 자신감, 경험은 인간을 군인으로 둔갑시켰다. 하지만 전투를 계속할수록 열차에서의 의기양양한 군인들은 사라졌다. 참담한 건물에 몸을 기대고 말 없이 죽은 자의 말을 듣는다. 그러곤 땀과 피로 가득한 더러운 몸을 맞대고 기대어 자신들의 존재를 확인하는 듯하다. 전쟁 밖의 삶을 살고싶어 괜히 라디오 주파를 잡아본다. 히틀러가 말했다. "스탈린그라드는 굉장히 중요한 요지입니다. 이름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우리는 적은 군인으로 물자 3천만톤을 차단했습니다•••" 이에 어떤 군인이 따지듯이 되물었다. "450명에서 62명 남았어요." 히틀러의 연설에 군인들은 느꼈을 것이다. 한 인간이 나라를 위해 전쟁에 나섰지만 스스로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군인은 전쟁에서 체스말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스스로 조국의 도구가 된 것이 자랑스러울까? 적어도 스탈린그라드의 군인들은 아니었다. 모두가 군인과 인간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있었다. 군인으로서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이 곧 명예, 하지만 인간으로서 살고 싶다는 갈망이 죽는 순간까지도 고민될 것이다. 그런 딜레마 속에서 군인의 눈빛도 죽고 인간의 눈빛도 죽고 결국 극한에야 짐승의 눈빛이 살아난다.
한스 중위는 자랑스러운 장교 집안의 장교 출신이었다. 스탈린그라드에 발령 받자마자 고위 장교들의 환심을 사는 그런 엘리트였다. 오직 국가의 장교라는 명예를 지키기 위하여 전선에 뛰어든 눈가린 사람, 이 사람의 눈빛에서 인간과 군인이 교차된다. 전쟁이 말살하는 것은 군인 뿐만 아니라 인간도 있다는 것을 지켜보고 구하지 못함에 이를 갈며 혹독한 환경에서 생존 본능을 드러낸다. 반면 프리츠는 전쟁의 참혹함을 알고 생존해온 경력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완벽한 군인은 아니었다. 국가가 아니라 동료를 위해 규율을 어기고 적군의 아이 마저 감싸안는다. 자신의 만행을 알지만 어쩔 수 없이 행해야하는 악행에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인간이었다. 롤로 병장은 뼛속까지 군인, 전쟁의 참상 속에서 눈빛을 잃으면서도 상관의 지휘를 인정하며 전투에 임한다. 개인적인 슬픔 조차도 전쟁에 비하면 어떤 것도 아니기에 그런 것일까. 죽는다는 것을 느꼈기에 인간적인 분노를 삼키는 인물인 것 같다. 죽음 앞에 더한 감정은 무력할 뿐이니 말이다. 롤로 병장과 함께하는 인물로 오토가 있다. 평생을 함께 하기로 한 아내와 아이들을 떠나 전장으로 온 오토에게는 전우가 가족이 되어버렸다. 함께 피보고 찌르는 곳이 자신의 집이라고 말한다. 전쟁의 광기 없이는 어색해진 인물, 전장이 그에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공간이다. 그래서 집을 떠나 전장에 남기를 원한 듯하고 마무리 지은 것이겠지. 군인이기에 임하기보다 가족 이상의 전우와 함께하고 싶어하는 오토에게 동료의 죽음은 전쟁보다 더한 아픔일 것이다. 그는 결국 인간으로 가족과 집과 함께 죽길 원했다. 그리고 뮬러는 한스 중위의 소대에서 가장 어린 인물로, 대학교를 졸업한 인재이지만 세상 모를 나이에 전쟁에서 사회를 시작했다. 어설픈 인간이 어설픈 군인이 되어 총을 쥔다는 것은 어떤 결말을 만들어낼까? 어쩔줄 몰라하는 이런 뮬러를 프리츠는 제제라고 부르며 감싸안아준다. 그리고 뮬러와 프리츠는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이가 되어 부모-자식처럼 서로를 챙기고 따른다. 프리츠의 어떠한 결정에도 어린 자식마냥 졸졸 쫓아다니는 뮬러는 그만큼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인간처럼 보인다. 아마 이런 모습에 프리츠는 뮬러를 행운이라고 부르고 데리고 다닌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무스크 대위는 생을 계산할 줄 아는 철저한 지휘관이다. 오토는 후퇴하지 않고 진을 지켜내자는 무스크 대위에게 나치보다 더한 군인이라고 평했을 정도이다. 의수였던 오른손 가지고 농담을 하는 등 자신의 문제가 전투에 지장가지 않고 사기가 저하되지 않도록 참아내는 모습을 보인다. 자기 자신도 군인으로서만 치부하고 부하 군인을 군인으로서만 대우하기에 잔인해보이지만 최대한 많이 살아남기고 진격해야하는 환경 속에서는 그의 차가운 카리스마가 부하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엄격했던 것은 아니었다. 농담으로 냉랭한 분위기를 넘기거나 마지막 남은 담배를 나눠피는 등 마음은 나눌 줄 아는 상관이었다. 그렇기에 무스크 대위는 상관으로서 끝까지 한스 중위의 소대와 함께 보내게 된다.
이렇듯 한스 중위와 그의 소대원, 유대 깊은 상관은 전쟁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인간상을 보여준다.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 인간적인 면모가 있는 사람, 주어진 임무에 끝까지 임하는 사람, 회의적인 사람, 여리고 미숙한 사람 등이 하나 하나의 인물에 부여되어있지만, 참상 앞에 동일한 감정만 지닐 인간은 없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반대로 이 등장인물 모두 한 인격체가 겪을 수 있는 복합적인 감정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스탈린그라드: 최후의 전투> (Stalingrad, 1993)의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는 결말은 전쟁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인간 모든 감정의 결집일 것이다. 시베리아의 얼어붙은 겨울에서 각 인물들 혹은 나누어진 감정도 같은 결말을 맞이하는 동결(凍結, 同結), 추위와 전쟁이라는 시련 앞에서 짐승처럼 살아남고 싶다는 욕망이 서려있다. 인간적인 면모도 명예도 부질없이 얼어붙는 곳, <스탈린그라드: 최후의 전투> (Stalingrad, 1993)는 여러 인물이 전쟁을 통해 인간성이 말살되어 죽어가는 모습을 그린다. 90년대의 필름이 더욱 스탈린그라드의 회색빛을 돋보이게 하고 서글프게 하며 그 시대의 연기는 극적으로 보인다. 연출이 덜 발달했을 때라 현재에 비하면 어설프지만 배우들의 눈빛이 죽어가고 고뇌하는 모습은 시선을 돌릴 수가 없게 한다. 눈동자 속까지도 스며드는 그 핏빛 회색을 바라보자. 투지가 사라지고 애국심이 사라질수록 죽음에 노출될 수록 인간의 생명력은 힘을 잃는다. 전쟁이 인간의 생명력을 흡수하는 꼴이다. 그런 공간에서 인간들은 군인으로 죽을 것인지 인간으로 죽을 것인지, 살아남을 것인지 죽음을 받아들일 것인지 투쟁한다. 그런 인물들의 결말까지 바라보고 전쟁의 참상을 지켜보자. 단순히 제 2차 세계대전의 독일군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만행을 지켜본다기보다 히틀러와 독일이라는 국가의 목표를 위해 희생되는 군인의 모습을 관찰해야할 것이다. 어떤 전쟁이든 인간이 인간을 죽이고 희생하고 희생된다. <스탈린그라드: 최후의 전투> (Stalingrad, 1993)는 히틀러의 독일이 인간을 어떻게 사용했는가, 독일군은 과연 독일을 위하여 기꺼이 죽을 수 있었을지에 질문을 던지며 히틀러의 독일을 비판한다. 누구도 기쁘게 죽고 싶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어떤 인간도 절망을 겸허히 자연스레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렇기에 더욱 극단적이고 격렬히 저항하며 살고싶고 지키고 싶다고 울부짖게 된다. 공포스러운 환경이 마음을 폭발시킨다. 필히 인간은 좌절할 수 밖에 없다. 다른 전쟁영화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진정한 인간의 모습, 군인도 이전에 인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