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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짱 Jul 30. 2016

난중일기[낳-은중일기] 2016.7.30

남의 떡이 뭣이 중헌디?!

난중일기[낳-은중일기]는 이제 막 7개월이 된 딸 단풍이를 키우고 있는 저의 육아일기입니다. 이순신 장군님의 난중일기를 업신여기는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으며, 매일 작은 일들까지도 일기로 적어가며 치열하게 살았던 장군님처럼 전쟁 같지만 행복하고 소중한 지금의 시간들을 매일 적어보자는 생각에서 지은 제목입니다. 육아일기에 관심이 없으시다면 조용히 지나가셔도 좋습니다. :-)



160729. 남의 떡이 뭣이 중헌디?!(글씨는 29일에, 글은 30일에 썼다)

육아뿐 아니라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만, 그놈의 잣대가 문제다. 진짜 큰 문제는 잣대를 들이대면 꼭 내 떡보다 남의 떡이 커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니 들이대면 들이댈수록 어째 나는 불행하고 가진 것이 변변치 않으며 왠지 뒤처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특히 육아를 하면서 그렇게 남의 떡이 커보일 수가 없다. 진짜 무서운 건, 이런 잣대가 단풍이가 태어난지 시간이 꽤 흐른 다음에 생긴 게 아니라 단풍이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였다는 것이다.


진통을 하고 단풍이가 태어났을 때, 텔레비전에서 늘 봐왔던 감격스런 장면은 없었다.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단풍이가 딸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안 예쁘다고 느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단풍이에게 들이댄 가장 최초의 잣대였다. 하지만 이건 남편도 마찬가지. 처치를 모두 마치고 누워있는 나에게 "단풍이는 공부를 열심히 시켜야겠어."라고 말했으니 말이다. 아, 물론 처음 겪는 일이다보니 우리 둘다 엄마 뱃속에서 막 나온 아기는 아주 예쁘지 않다는 걸 몰랐던 탓이다.


정해진 면회 시간에 맞춰 내려간 병원 신생아실. 새근새근 잘 자고 있는 아기들 사이에서 오만상을 찌푸리며 울고있는 단풍이를 만났다. 처음엔 "아기가 우는 게 당연하지" 하고 넘어갔는데, 여러 번의 면회 동안 단 1번을 제외하고 단풍이는 쭉 대성통곡 상태였다. 울지 않았던 한 번은 자고 있었다.

"다른 아기들은 얌전한데 단풍이는 왜 이렇게 울기만 하는거지?"

내가 단풍이에게 들이댄 두 번째 잣대였다.


잣대는 조리원에서도 이어졌다. 단풍이는 좀처럼 젖을 물려고 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엄마인 내가 안기만 해도 울어대는 통에 신생아실 선생님들과 원장님이 전담 마크하는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  잠을 안 자는 건 물론, 유난히 큰 목청으로 울어대서 밤에 신생아실 친구들을 모두 깨우는 바람에 내가 자다 나와 단풍이를 안고 신생아실 밖에서 어르고 달랜 적도 있다. 신생아실 선생님은 잠깐만 엄마가 데리고 있어달라고 친절하게 부탁하셨지만, 거의 쫓겨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른 애들은 안 그러는데 얘는 왜 그럴까?" 그렇게 들이댄 세 번째 잣대. 그리고 나는 천국이라는 조리원에서 펑펑 울었다.


조리원을 나와도 잣대는 이어졌다. 단풍이는 너무 많이 울었고 잠도 안 잤다. 분유 타는 건 어찌나 못 기다리는지,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분유를 타다보면 진이 다 빠졌다. 너무 우니까 어디 아픈가 싶어 검색을 했는데... 하지 말았어야 했다. 단풍이와 달리 잠을 너무 잘 자고 좀처럼 울지 않으며 젖도 잘 무는 아기들의 이야기를 볼 때마다 잣대는 더욱 견고해졌다.


잠이나 수유뿐이랴. 발달이 조금만 느려보여도 조바심이 나던 때가 있었다. "누구는 벌써 이걸 한다는데 단풍이는 왜 못하지?" 그리고 '육아는 템빨'이라는 말을 실감하며 좋은 육아 아이템에 눈이 휙휙 돌아갔다. 왠지 내가 중고로 너무 저렴이를 골라서 별로인가, 하는 이상한 잣대를 들이댔던 적이 솔직히 많았다. 

급기야는 남편에게도 잣대를 들이댔다. 왠지 나만 고생하는 것 같고, 나만 못 쉬는 것 같았던 것이다. 하지만 남편도 만만치 않았다. 육아는 물론 힘든 것이지만, 자신의 회사 생활도 그에 못지않게 매우 힘들다고 했다. 서울과 경기도를 넘나드느라 길어지는 출퇴근 시간, 주말 출근에 야근을 감내하는 남편이니 그럴만도 했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는데 왜 그렇게 남편이 더 편해보이고 쉬워보이는지 모르겠다. 육아에 찌든 나는 회사에서 일하는 것도,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아보이고 부러웠다. 회사에 찌든 남편은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육아하는 나를 부러워했다. 그렇게 자신이 더 힘들고 고생한다는 잣대를 서로에게 들이댈 때마다 우리는 대판 싸웠다.


나는 내 자신에게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출산이라는 나름 큰 사건을 겪은 몸인데 왜 그렇게 거리에서 마주치는 20대 초반 동생들의 몸에 비교해가며 절망했는지 모르겠다. 수유텀과 수면텀이 무너진 날이면 실패한 것 같은 느낌과 함께 나쁜 엄마라는 생각이 들어 괴로웠다.


그런데 행복한 엄마가 되기로 작정한 이후, 마음이 한결 편해지고 정리가 되면서 잣대의 정체(?)가 눈에 들어왔다.


자신감이 부족해서 생긴
잣대는 아니었다.
사랑이 부족해서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있는 그대로의 것을 사랑하는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돌아보니 정말 그랬다. 단풍이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예뻐해주지 못했고, 가장으로 고군분투 중인 남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예뻐해주지 못했으며 생애 첫 육아에 온몸으로 부딪히며 도전하는 나를 예뻐해주지 못했다. 비록 단풍이가 순둥이가 아니고 남편이 늘 칼퇴하지 못하며 실수연발인 나 자신이더라도, 그저 존재만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고 소중하다는 걸 까마득히 잊어먹은 것이다.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내 성에 안 찬다고 해서 사랑하지 못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진짜 사랑'은 모든 사람이 사랑할 법한, 완벽하고 흠 없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좀처럼 눈길이 가지 않고 골치가 아프며 외면하고 싶은 것을 힘껏 끌어안는 능력이다. 그래서 어떠한 기준이나 잣대를 들이대며 비교하고 재단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따뜻하게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지지해주는 것이다.


바로 그 능력을 발휘하면,
유독 다른 아이들보다 예민하고 까다로운 기질의 단풍이지만 나에게 얼마나 예쁘게 웃어주는지가 보인다.

평일 야근에 주말 출근도 하지만 칼퇴한 날에는 저녁을 차리며 어떻게든 나를 도와주려고 애쓰는 남편의 뒷모습이 보인다.

오늘도 육아에 하염없이 치이지만 행복한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 뒤 프로젝트를 실행해가며 최선을 다하는 내가 보인다.


어쩌면 완벽하고 좋은 것만이 최고인 것처럼, 심지어는 그게 정답인 것처럼 말하는 세상에서 '더 나은 것'만을 끊임없이 추구하며 살아온 탓에 그 능력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내 떡보다 커보이는 남의 떡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나한테 떡이 있음에 감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도 쉽지 않을지 모른다. 나도 모르게 또 잣대를 들이대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마음에 힘주어 말해본다. 내 떡이 남의 떡보다 크든 작든 그냥 그 자체로 소중하다고. 단풍이와 남편 그리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 진짜로 퍼펙트, 아니 200퍼센트 행복하고 완전한 인생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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