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_ 글로벌 인재에게 떨어진 날벼락
그건, 실로 날벼락이었다.
중국 출장 담당자로 정해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비록 영어나 중국어가 유창한 찐 글로벌 인재는 아니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세계화, 글로벌 인재, 두드림(Do dream), 비전과 같은 단어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자라왔기에, 드디어 나도 해외 출장이라는 걸 가는 소박한(?) 글로벌 인재가 되었다는 생각에 두근거렸다.
나는 열정적으로 출장에 필요한 제출 서류와 자료들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몸이 평소와 다르게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몸살이겠거니 하고 넘기려던 찰나, 뭔가 너무 쎄했다. 설마, 했지만 그날따라 촉이 너무도 좋았는지 가슴이 지나치게 쿵쾅거렸다. 손까지 약간 떨며 했던 키트에서는 티비에서나 봤던 두 줄이 나를 반겼다. 두둥. 순간 드라마로 순간이동해 곤경에 처한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다. 임신을 축하하는 산부인과 원장님에게 질문부터 냅다 던졌다.
“비행기 타면 안 되나요? 1시간 거리인데....”
그 병원에서 친절하기로 소문난, 누가 봐도 선한 인상의 원장님은 나긋한 목소리로 선을 세게 그으셨다.
“안 됩니다. 지금 초기라 너무 위험해요.“
결국 나는 이십 년 넘게 공부하며 투자해온 글로벌 인재의 꿈을 이루는 데 실패했다. 대신 그동안 한번도 장래희망으로 꿈꿔본 적 없던 임산부가 되었다.
그렇게 실패한 글로벌 인재는 쏟아지는 졸음과 시도때도 없이 울렁거리는 입덧으로 해외는 커녕 집 문을 넘는 것조차 힘들었다. 나중엔 조산 위험이 있다고 해서 한 달을 꼼짝없이 누워서만 지냈다. 누워만 있어야 하니 티비를 보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공중파를 넘어 케이블 방송의 편성표까지 달달 외우는 수준이 되었고 더 이상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없었다. 1월에 아이를 출산해서 백일 때까지는 추운 날씨 때문에 예방접종과 영유아검진을 제외하고는 집 밖에 거의 나가지 않았다.
그쯤 되니 여태 열심히 공부한 게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애만 보는 게 나의 미래라고 누가 힌트라도 줬다면 후회나 미련이 조금도 남지 않도록 온 힘 다해 열심히 놀고, 누릴 거 다 누렸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요리와 살림도 어려워서 버벅대고 있었는데 육아는 그야말로 어나더레벨이었다. 내가 열심히 습득해온 모든 지식은 요리, 살림, 육아 그 어느 분야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학문도 아닌데 요리와 살림과 육아는 너무도 넓은 세계여서 배우고 익혀도 매번 헤맸다. (개인차가 좀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나는 세 분야 모두 재수강은 커녕 성적 확인부터 일찌감치 포기했다.) 이렇게 스트레스 받을 줄 알았으면 차라리 엄마 세대처럼 어렸을 때부터 이런 걸 학교에서 좀 가르쳐줬어야 했다고 툴툴거리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요리와 살림, 육아의 쳇바퀴는 내가 불평할 틈도 주지 않고 끊임없이 돌아갔다.
큰 꿈을 품고 세계로 나아가라는 뜨거운 캐치프레이즈를 들으며 집에서는 요리와 살림보다는 문제집을 푸는 데 힘쓰며 살아온 나는 엄마가 되어 육아를 시작한 게 억울했다. 내가 이럴려고 공부한 게 아닌데. 이럴려고 열심히 했던 거 아닌데.
당시 너무 우울했던 것이 한몫했던 사건이지만, 스스로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뭣도 모르는 아기이면서 이런 엄마인 나를 뭐가 그리 좋은지, 눈을 마주치며 생글생글 웃고 있는 첫째를 멍하니 바라보며 ‘안 태어났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순간 그런 나쁜 생각을 한 내 자신에게 너무나 놀랐다. 그땐 내가 심한 육아우울증이어서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아이가 내 인생의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는 생각이 아마도 깊은 뿌리였던 것 같다.
지금이야 엄마가 되어 육아를 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멋진 인생 과정인지를 깨달아 아이들을 낳은 것을 1도 후회하지 않지만, 그 전까지 엄마라는 자리는 내 꿈과 인생을 가로막는 걸림돌처럼 느껴졌다. 엄마 세대나 그 윗 세대와 비교하자면, 나는 ‘엄마’라는 프로그램이 전혀 설치되지 않은 세대였다.
가끔은 어르신들이 우리 세대를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는 이기적인 세대라고 한마디씩 하시기 전에, 우리에게 어떤 교육이 되었는지 한번쯤 생각해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집에서 얌전하게 집안일하고 남편을 내조하며 아이들을 훌륭한 자녀로 키워내는 현모양처로 셋업(set-up)된 적이 없다. 세계를 향해 꿈을 펼쳐야 하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내 마음속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행복을 추구하라는 것이 인생의 운영체제로 셋업된 세대다.
그런데 이 ‘엄마’라는 건 세계는 커녕 집에 틀어박히고, 아이가 어릴 때는 내 기본적인 생리현상마저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기도 하고, 내 마음속 소리 같은 건 깡그리 무시하고 도대체 얘가 왜 우는지 탐구하고, 오로지 이 아이의 행복(배부름, 잠듬, 재밌음 등등)을 위해서만 움직이게 된다. 그러니 ‘엄마’는 굉장히 낯선 프로그램이자, 심지어 나의 인생 운영체제를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는 바이러스나 악성코드처럼 보여지는 것이다.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의 길에 접어든 이상, 나는 이 경고창의 '예'를 클릭해야만 했다. 이미 아이가 태어났음에도 ‘엄마’ 설치가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았던 나는 내 의식 속 경고창을 마주한 채로 한참 망설였다. 하지만 '엄마'의 정체가 뭔지, 내 인생에서 무슨 기능을 하는지, 내 인생에 해로울지 이로울지 검색이라도 해보면서 천천히 설치하자고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다. 불면증인가 의심될 정도로 30분마다 기상하는 작은 생명이 집이 떠나가라 우는 소리에 놀라 허둥지둥하다가 그만 ‘예’를 선택한 모양이었다. 바뀌는 화면을 보며 헉 했지만 취소나 종료를 클릭할 수가 없었다. 분유를 타느라 설치 과정을 쳐다볼 여유도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