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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짱 Jul 08. 2016

난중일기[낳-은중일기] 2016.7.8

행복한 엄마 되기 프로젝트

난중일기[낳-은중일기]는 지금 막 6개월이 된 딸 단풍이를 키우고 있는 저의 육아일기입니다. 이순신 장군님의 난중일기를 업신여기는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으며, 매일 작은 일들까지도 일기로 적어가며 치열하게 살았던 장군님처럼 전쟁 같지만 행복하고 소중한 지금의 시간들을 매일 적어보자는 생각에서 지은 제목입니다. 육아일기에 관심이 없으시다면 조용히 지나가셔도 좋습니다. :-)




160708. 행복한 엄마 되기 프로젝트.

믿기지 않지만,
나는 요즘 말도 안 되게 우울하다.


첫째.
출산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배와 허벅지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5kg의 살과,

덕분에 좀처럼 입을 수 없는 옷들 때문이다.

둘째.

성취감과 생산성이 마치 모래 위에 쌓은 집처럼 와르르 무너지며 사라져버리는, 마치 시지프스처럼 끝없이 굴리고 있는 나의 돌, 집안일 때문이다.

마지막.

더 이상 내 꿈이었던 멋진 커리어 같은 건 미래에 없을 것 같아서다.


단풍이가 무슨 죄가 있겠나.

하지만 마지막 20대, 29살의 여름을 보내며 위의 3가지 이유만으로 서글프고 우울해진 나는 육아가 어느새 의무와 책임감이 되었다. 예전에는 단풍이가 웃는 걸 보면서, "이래서 아기 낳고 키우는 거지!"했지만 지금은 단풍이가 원하는 방법으로 놀아주고 좋아하는 걸로 웃게 만드는 일이 버거워졌다.


천국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친정에서조차 이러한 현상, 아니 증상은 계속되었다. 아주 중증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그래도 평균 이상 정도는 되는 육아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임이 틀림없다고 나는 스스로에게 진단을 내렸다.

단풍이가 중환자실을 거쳐 한달 동안 병원 입원 신세를 졌을 때조차 육아 스트레스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던 나였다. 그런데 신생아 때보다 키우기 편해진 6개월에 우울증과 스트레스의 습격을 받게 될 줄 몰랐다.

당연히 더 편해질 줄만 알았던 육아는 점점 더 카오스로 접어들고 있었다. 잠깐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나기만 해도 대성통곡, 분유 타러 일어나도 대성통곡, 하는수없이 코앞에 의자를 가져다가 앉혀놓고 화장실 볼일을 보거나 마법의 육아템이라는 포대기로 업고 집안일을 해도 대성통곡...
6개월 즈음이면 엄마와 자기 사이에 거리가 생긴다는 걸 인식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거라고는 하지만, 중환자실과 병실 입원 경험 탓에 단풍이는 그게 유독 더 강하다.


... 그니까 머리로는 그걸 다 아는데, 끝없이 그리고 쉴새없이 이루어지는 나만 바라봐 모드를 상대하다보면 기운이 쪽 빠지면서 마음이 피폐해지고, 그렇게 단풍이에게 꽁꽁 묶인 나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은 스마트폰으로 이루어지는 아이쇼핑 그리고 먹고 먹는 것이었다. 역시 건강한 해소법이 아니다보니 부작용이 컸다. 아이쇼핑은 해도해도 마음이 어딘가 허전했고, 특히 옷을 볼 때면 다시금 초라해지는 나를 발견해야 했다. 먹는 건, 이미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5kg의 살들에게 이웃들을 만들어주었다.


점점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스트레스가 심해질수록 나는 단풍이에게 장난감을 던져주고 스마트폰으로 아이쇼핑을 즐겼고, 끊임없이 허기져 하며 먹을 걸 찾고 있었다. 이 와중에 광고에 속아넘어가 다이어트 약도 샀다. 이젠 악순환의 꼬리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 읽었던 한 육아책에선 할 수만 있다면 몇 년 정도 외모와 커리어를 쿨하게 포기하라고 했다. 그 포기가 어려운 건 맞지만, 그걸로 아이의 삶에 정말 그 어떤 것보다 귀한 선물을 줄 수 있다고 말이다. 고개를 끄덕였던 나는 이게 이리도 힘들지 몰랐다. 외모도, 커리어도 포기하지 않으면서 육아할 순 없을까? 대체 누가 언제부터 왜, 엄마를 포기의 대명사로 만든 걸까? 쿨하고 깨끗하게 포기해버리기엔, 나는 내 마지막 20대가 너무도 아까웠다. 아직 철이 덜 들은 모양이다.


철이 덜 들었으니 좋은 엄마는 되기 글렀고, 뭘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한번 말도 안 되는 두 마리 토끼 잡기를 해보기로 했다. 아쉽지 않을 만큼 외모와 커리어를 위해 움직이며 행복한 엄마가 되어서 단풍이를 행복한 아이로 키워보기로. 그 두 과목의 성적표가 비록 A+이나 100점 만점이 되진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해보기로.


그래서 나름의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사실, 이 "난중일기[낳-은중일기]"는 그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글을 꾸준히 쓰는 게 목표다. 이것 외에도 글씨 연습과 운동을 할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의 스페셜 땡스투는 책 <지금의 조건에서 시작하는 힘>에게 보낸다. 나는 완벽한 나 자신도, 완벽한 엄마도 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불완전하더라도 행복한 나 자신, 행복한 엄마는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 돌이켜보니, 단풍이가 그간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엄마가 행복하면 아이는 절로 행복하기 마련일텐데, 내가 행복하지 않은 얼굴로 단풍이에게 "너는 많이 웃고 행복한 아이가 되야 해!"라고 강요했으니 말이다. 아직 6개월 아기지만,  중환자실과 병원 생활을 거치며 아기들이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있다는 사실을 뼈져리게 경험한 나는, 단풍이가 분명 내가 행복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으리라고 생각한다.


대학생 시절, 추억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가장 많이 적었던 내용이 있다. "비틀거리더라도, 이 길을 가야겠다."
지금 내가 딱 그 심정이다. 처음 경험한 임신, 처음 경험한 출산, 처음 경험한 육아. 초행길이기에 "엄마"라는 길을 벌써 수백 번은 헤매고, 가끔 물에 빠져 흠뻑 젖기도 하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면서 걸어왔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행복해지기로 결심하고 행복한 엄마 되기 프로젝트의 첫 번째 계획인 난중일기[낳-은중일기]를 썼다는 것만으로도 이 밤, 마음이 몰캉몰캉거린다.


이제야 옆에서 곤히 잠든 단풍이의 뒷모습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이뻐보인다. 육아우울증의 안경이 이렇게 무섭다, 글쎄. 거짓말 같지만 정말 내가 낳은 자식도 안 이뻐보일 수 있다. 아이고.

단풍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으로 말해본다.

"단풍아, 내일은 억지로 웃지 않을께. 엄마도, 단풍이도 즐겁게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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