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길과 길 사이에서

베트남 동하

by Atsu

4월 5일, 걱정되는 하루의 시작.

기차역으로 출발하기 전에 가볍게 미싸오, 볶음국수를 먹어준다. 베트남은 뭐를 주문하든 야채를 정말 많이 준다. 한국은 이제 싱싱한 야채가 고깃값만큼 비싸니, 이 귀한걸 주는 대로 다 먹었지만 갈수록 남기게 된다. 볶음국수도 그렇게 맛있진 않았다.


뭐랄까, 베트남은 맛없는 게 없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귀신같이 메뉴 선택이 전부 틀리고 있다. 체크아웃을 하고 다낭역으로 출발한다.

첫날 공항에서 넘어온 이후 처음으로 강을 건넌다. 강 건너편이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시장이나 성당 같은 시내 중심지였지만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역 내에서 기다리면 10분 정도 전부터 안으로 들어가게 해준다. 하지만 기차가 꼭 제시간에 오지는 않는다.


다낭에서 후에로 가는 길은 그 유명한 하이반 고개를 지난다. 기찻길로도 그 절경을 느낄 수 있다길래 반드시 보고 싶었다. 다만 역방향으로 달리는 기차였던지라 장고 끝에 예약한 창가 자리가 바다가 보이는 자리가 아니게 되었다! 짜증이 밀려왔다.

베트남은 남북으로 놓인 철도를 따라 오래된 기차들이 하루 종일 달린다. 기찻길을 따라 여행하면 편할 수 있지만, 고속열차가 아니니 속도가 정말 느리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전역에 도로가 빠르게 깔리고 있으니 이 오래된 기차의 쓰임새는 점점 더 밀려나겠지.


기차가 시내를 빠져나오니 풍경이 달라진다. 지도를 보면 베트남의 중부는 안남산맥을 등에 업고있어 모든 도시들이 해안근처 저지대에 밀집되어 있다. 이 산세가 중국의 영향이 닿는 곳과 닿지 못하는 곳을 가르는 자연적인 경계선이 되었다.


반대쪽 창가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절경이 눈앞에 펼쳐지자 마음이 점점 급해진다. 왜 오늘의 열차는 역방향으로 달리는 것인가! 결국 좌석을 박차고 일어나 창이 열린 연결칸으로 간다.


열차에서 계속 담배 냄새가 나던 이유가 여기 있었다. 사람들이 연결칸에서 담배를 피우기 때문이다. 충격적이지만 당장 눈에 담아야 할 풍경이 있어 바다 쪽 창에 바짝 달라붙는다.

열차가 절벽 위를 달리고 있다! 바다와 안개가 산을 껴안아 하나가 된다. 사람들이 담배를 털어대던 살짝 열린 창밖으로 카메라를 꺼내 기록하려 애써본다.

어떻게든 프레임 안에 남기고 싶어 애를 쓰던 사이, 어느새 고개를 넘어가버렸다. 자리로 돌아간다.


열차가 해안과 맞닿은 절벽을 달리는걸 직접 두 눈으로 봤으니, 이 아름다운 하이반 고개가 얼마나 충실한 자연경계선의 역할을 해왔을지 실감할 수 있었다.


하이반이 아니더라도 후에로 가는 기찻길은 바다와 땅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여정이다. 특히 들판과 강이 어우러지는 곳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성당이 인상 깊었다. 아마 고개에서부터 해안선을 따라 베트남의 휴양지로 이름이 난 것 같다. 지도를 찾아보니 리조트와 뷰포인트가 엄청나게 많다.


시간이 더 많고 교통수단이 자유로웠다면 나도 머물고 싶은 그런 곳이다. 많은 이들이 베트남을 오토바이로 여행하는데, (나도 그러고 싶었지만 평생 한 번도 타본 적 없고 소형면허를 따기도 귀찮으며 다칠 위험이 크니 포기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이런 곳마다 들려 머물 수 있다면 여행이 얼마큼 길어져도 모자랄 거 같다.


어쨌든 풍경이 너무 좋아 기차도 시선을 뺏겼는지 연착을 해 생각보다 많이 늦게 후에에 도착했다. 원래는 다음 열차까지 기다리는 동안 후에를 돌아볼 짬을 낼 생각이었는데, 시간이 너무나 애매해져 버렸다.

역에서 조금 떨어진 다리를 건너 근처를 크게 한 바퀴 돌고 돌아온다. 다리에서 본 풍경이 지금까지와는 또 다르다. 이 새로운 공기로 넘실대는 기대를 내일로 미뤄둬야 하는 게 아쉬울 뿐이다.

돌아와 역 바로 앞에서 쌀국수를 먹는다. 역시 나는 쌀국수를 별로 안 좋아한다는 걸 다시 느낀다.

다시 올라탄 기차는 앞의 기차보다 더욱 혼잡하고 지저분하다. 청각과 후각을 자극하는 것들로 정말 순수하게 현재의 베트남 그 자체를 느낄 수 있다. 그 많은 관광객들이 들어찬 베트남에서 처음으로 외국인이 나밖에 없는 공간에 놓였다. 머리가 어지러워지는게 내가 나를 내려놓지 못했음을 알 수 있었다.

동하 역에 도착해 내리니 밤이라 어둡기도 하지만 주위가 눈에 들어오지를 않는다. 오늘의 숙소는 조금 외진 곳에 있는 홈스테이가 되겠다. 마지막으로 그랩을 타고 하루 종일 걸린 오랜 이동의 끝을 본다.


가족이 실제로 거주하는 집에는 서툴지만 영어를 할 수 있는 대학생 아들이 있었다. 이 친구와 집 여기저기를 둘러보는데 2층은 물론 지하까지 있는 큰집이다. 1층의 부엌 뒤, 커다란 복도로 이어지는 공간에 가족들이 지낸다는 방들이 여러 개 있다. 2층에 있는 방들을 빌려주고 가족들은 1층에서 머문다고 한다.


이 친구는 하노이에서 대학을 다니는데 지금은 연휴라 집에 내려왔다고 한다. 연휴? 월요일까지 연휴라 사람들이 전부 휴가를 왔으니 후에에 숙소를 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이야기를 하던 중 새로 예약한 내일 자 도미토리도 취소해 달라고 메시지가 왔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이 친구가 말하길 후에는 베트남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도시라고 한다. 그래도 그렇지, 두 번 연속으로 확정된 예약을 취소당하는 건 상상도 못한 일이다. 베트남 사람들이 전부 후에에 몰려왔나 보다.


친구가 베트남 사람들은 식당이나 숙소를 찾을 때 틱톡을 이용한다고 팁을 준다. 다들 뭐든지 일단 틱톡으로 검색한다는, 한국인이 유튜브로 검색한다는 거랑 비슷한 느낌 아닐까?


친구는 하노이에서 화학 공부를 하는데 형을 따라 독일로 유학을 가고 싶다 한다. 여자친구는 한국어를 꽤 잘한다고 하는데 베트남의 젊은 세대들이 얼마나 진취적으로 기회를 찾는지 느낄 수 있었다.

베트남의 대학생들을 살짝 엿볼 수 있던 대화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다. 방의 천장이 무진장 높고 욕실이 세면대랑 변기, 샤워기만 있는데 터무니없이 크다. 안타깝게도 이불과 베개에서 꽤 오래된 냄새가 난다. 얼굴만 씻고 나와 이불과 베개를 한편에 몰아놓고 반대편에 눕는다.


늦은 밤이지만 TV로 유튜브를 틀어놓고 역에서 사 온 과자를 먹으며 전력으로 내일 숙소를 찾는다. 후에 중심가에서 멀리 떨어진 외진 곳에 도미토리가 하나 있다. 내겐 별다른 선택지도 없지만 알 수 없게 끌렸다. 수영장에도 들어가고 싶어 도미토리치고 비싼 가격이지만 예약한다. 이렇게 하루하루 여행을 이어붙여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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