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다낭
4월 3일, 다낭으로 돌아가 이틀을 지내기로 결정했다. 아무 곳도 찾아갈 필요 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 아직 북쪽으로 한참을 가야 하지만 시간도 많으니 괜찮을 것이다. 이틀 후가 토요일인지라 후에로 갈 기차와 첫날 숙소를 미리 같이 예약했다.
처음 묵었던 숙소로 다시 돌아왔다. 익숙한 얼굴이 반겨준다. 보고 싶었냐고 물었더니 칭찬하는 후기를 써주기로 해놓고 안 써줬다고 투정 부린다. 귀여워서 써주기로 한다. 뭔가 집에 돌아온 것처럼 좋고 편안한 기분이다.
점심을 먹으러 추천해 준 쌀국수 집으로 가본다. 메뉴를 보니 한글로도 쓰여있고, 한국인에게 꽤 유명한 체인점인가 보다.
가장 무난해 보이는 걸로 골랐는데 가격도 저렴하고 국물이 정말 최고다. 쌀국수를 그렇게 선호하진 않지만 확실히 이건 맛있다고 단정할 수 있다.
지금까지 베트남에서 메뉴를 고르는데 실패한 적이 없다는 게 고무적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을까 기대된다. 과자와 음료수를 잔뜩 사들고 숙소로 돌아간다.
방에서 뭉그적거리며 후에 지도를 보거나 이것저것 뒤져본다. 이때 처음으로 뭔가 이상한 걸 느꼈는데, 분명 어제보다 후에에서 예약 가능한 숙소가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대충 훑어보다 그냥 편히 드러눕고 슬슬 해가 질 때 즈음에야 미케비치로 산책을 나간다. 오늘도 바람이 무진장 불고 미케비치는 사납다. 다낭에서는 정말 하루 종일 햇볕 하나 없다. 원래 지금 즈음이면 이미 더워졌을 날씨라는데 더위도 습기도 없이 쾌적하다. 이것도 기후변화의 일종일까?
미케비치와 해안선을 따라 들어선 거대한 건물들은 그렇게 아름답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풍경이다. 해도 졌으니 이제 또 저녁을 먹으러 간다.
베트남에서 첫 식사를 했던 꼼가를 먹으러 돌아왔다. 이번엔 가장 기본 메뉴로 주문했는데, 역시 두 배 가격이었던 저번 메뉴보다 먹기 훨씬 편하다. 심지어 호이안 노점에서 먹었던 것보다 저렴하고 맛있다. 노점이라고 무조건 더 저렴하거나 맛있거나 그런 건 아닌가 보다.
뭔가 부족해 바로 반미를 하나 더 먹으러 간다. 이번에도 첫날 갔던 곳으로 재방문, 주문할 땐 그냥 돼지고기인 줄 알았는데 이건 분명 족발이다. 족발 반미라니! 의외로 족발의 탱글함과 바게트의 바삭함이 굉장히 잘 어울린다. 이건 새로운 발견, 정말 맛있었다.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반미, 아쉽지만 숙소로 돌아가 다시 늘어진다. 먹기만 한 하루였다.
4월 4일, 세계 어디서든 이렇게 TV로 유튜브를 틀면 내가 있는 방이 한국이 된다. 오늘은 숙소에서 살짝 멀긴 하지만 30분 정도를 천천히 걸어가면 있는 빈컴 플라자를 가보기로 한다.
일단 숙소 바로 앞에 매번 지나치던 세탁소에 세탁을 맡긴다. 어젯밤에 돌아오면서 물어봤더니 오전에 맡기면 저녁에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나온 김에 조금 이른 점심을 먹으러 간다. 이 앞에 매번 사람이 가득 차 있던 식당으로 한번 가본다. 역시 아직 자리가 많이 비어있다. 베트남 음식 중 가장 좋아하는 메뉴인 분짜를 주문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베트남에서 식사를 하면서 처음으로 실망했다. 잘못 생각했으면 베트남에서 두 번 다시 분짜를 주문 안 하는 대참사가 벌어질 뻔했다. 따뜻한 소스에 담가 나온 고기의 맛과 질이 너무도 기대와 다르다. 도대체 여기 사람이 매번 가득 차는 이유가 뭘까? 아니면 단순히 이 가게 최악의 메뉴가 분짜였던 걸까? 알 수가 없다.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데 갑자기 정전이 일어난다. 빨리 밖에 나가라는 걸까? 거의 동시에 방에서 튀어나온 같은 층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슬슬 걸으러 가본다.
출발하기 전에 세탁소에 살짝 시선을 돌려본다. 내 옷들이 바깥 빨랫대에 잔뜩 걸려있다. 뭔가 정겨운 풍경이다.
한산한 길을 따라 걷는다. 조금 걸으니 공사 중인 곳이 많고 인도는 온갖 장애물이 뒤섞여 없다고 봐도 무방해 차도로 걸어야 한다. 가끔 오토바이가 바로 옆을 쌩쌩 지나니 조금 불안하다. 노점에서 과일주스 같은 걸 즉석으로 만들어 파는데 아이들이 잔뜩 몰려있다. 나도 도전해 보고 싶지만 일단 참는다.
커다란 대로를 건너 이제 목적지가 금방인데 그 앞은 대형 공사터다. 매연과 먼지, 쓰레기가 난무하는 곳을 걷자니 짜증이 밀려온다. 슬슬 땀에 젖을 무렵 빈컴플라자에 도착한다. 꽤나 번듯한 쇼핑몰이다.
빈그룹은 베트남에서 이것저것 꽤 자주 볼 수 있는데, 나도 빈펄 호텔을 한 번쯤 이용해 볼까 고민해 봤지만 역시 빈컴플라자랑 빈마트만 잔뜩 애용하게 된다.
안에서 베트남 서점이라든가, 장난감 가게를 구경하는데 뜬금없이 후에 숙소에서 예약을 취소해달라는 메시지가 왔다. 방이 부족하다며 예약 전날 취소해달라는 소리를 하니 이게 무슨 경우인가 싶다. 바로 다른 숙소를 찾아보는데 정말 도미토리 침대 하나 없다. 물론 이틀 치 전체 예산을 털어 넣으면 방이야 하나 잡겠지만, 이런 환장할 경우로 추경을 편성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주말이라도 도미토리 침대 하나 없다는 게 대체 가능한 일인지,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다. 안 그래도 베트남에 백인 여행자가 수도 없이 많더만 결국 이런 일이 벌어지는구나.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오버투어리즘인가!
일단 정신을 가다듬고, 지금 해결할 일인 것 같진 않아 마트나 들어가 본다. 마트가 꽤나 큰데 여행 기념품 코너도 있고 한국인들이 많이 보인다. 아무래도 단체관광코스 중에 하나인가 보다.
온갖 종류의 베트남 커피, 한국 라면, 한국 아이스크림은 물론 이렇게 생 것도 많이 판다. 빈컴플라자의 마트는 전부 이렇게 다양하게 파는 줄 알았는데 여기가 여행하면서 갔던 곳 중 가장 큰 마트였다.
드디어 기대하던 망고를 사 먹어본다. 정말 달고 맛있다. 한국에서는 비싸기도 하고 이렇게 맛 좋은 망고를 찾기 힘들다. 역시 동남아에서 먹는 망고는 다르구나.
소금이 있길래 찍어 먹어본다. 괜히 아까운 망고를 버린 느낌이다.
위층에 졸리비도 있어 한번 먹어본다. 저 밥이랑 치킨을 같이 주는 게 굉장히 특이한 여기만의 메뉴인 것 같아 도전해 봤지만, 밥은 사실 필요가 없고 국은 먹기 힘들 정도로 맛없다. 그래도 치킨은 튀김옷의 질감과 닭다리의 부드러움이 어우러지는 최고의 한입이었다. 주위 사람들은 전부 치킨과 스파게티가 같이 나오는 걸 주문한다. 아무래도 다음에 다시 먹어봐야겠다.
이런 와중에도 한쪽 손과 눈으로 계속 숙소를 찾고 있는데 아무런 성과가 없다. 다시 마트에 들러 이것저것 장바구니에 담는다. 걸을 만큼 걸었고 정신도 어질어질하니 그랩을 불러 숙소로 돌아간다.
일단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후식을 먹어준다. 용과는 아무리 베트남이라고 해도 맛이 없다. 정말 아무 맛이 없다. 그리고 저 정체불명의 크림빵도 매우 정직한 공장 맛이 난다. 실패 중에서도 대실패가 아닐 수 없다.
드디어 찾은 유일한 숙소는 개별 홈페이지만 있고 전부 베트남어로 되어있다. 마지막 희망을 걸고 숙소 직원에게 통화를 부탁해 예약 가능 여부를 묻는다.
방이 없다고 한다. 이제 더 이상 내일 후에에 머물 방법은 없다. 그렇다고 차표를 버리고 다낭에 더 머물 생각도 없다. 지도에서 기차역을 확인한다. 후에 북쪽에 동하라는 작은 도시가 눈에 띈다. 내일 후에로 가는 기차를 탄 후, 다시 후에에서 동하로 가는 기차를 탄다.
어쩔 수 없다. 이 또한 여행의 일부임을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