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호이안
숙소에 돌아와 씻고 침대에 드러눕는다. 고장 난 TV는 쓸모없는 장식이다. 바닥을 기는 먼지같은 개미들을 한 마리씩 손가락으로 짓눌러본다. 두 마리 세 마리, 아무리 없애봐도 어디선가 또 기어 나오니 그냥 포기한다. 다낭 숙소에서도 봤지만 여기가 훨씬 많다.
내일은 생각한 대로 미선 유적을 가보기로 한다. 미선 유적은 이번 여행길에 유일하게 들릴 수 있는 참파 유적이다. 동아시아와 강하게 얽힌 베트남이 이번 여행길의 기반이지만, 여기 중부 베트남이 문화의 경계선이었던 만큼 현존하는 참파의 가장 큰 유적 또한 이 근처에 있다. 거리가 조금 있고 물론 대중교통도 없지만 안 갈 수는 없다. 다만 이번에도 그랩을 잡아 가자니 이러다가 모든 예산을 이동 비용에 날릴 것 같다. 적당히 뒤져보니 투어 비용이 나쁘지 않아 처음으로 이용해 보기로 한다. 여행을 하면 이렇게 앱의 개수가 점점 늘어난다.
결제를 마치니 처음이라 조금 불안해진다. 정말 데리러 오는 건가? 나를 빼먹고 가진 않을까? 그럼 환불은 되는 건가? 그럼 내일 뭐 해야 되나? 걱정이 태산처럼 쌓여가던 차 메시지로 픽업 시간을 보내줘 조금 안심이 된다. 그러나 숙소 앞으로 픽업이 온다 하더라도 이른 시간에 일어날 생각에 다시 불안해진다.
4월 2일, 일찍 자고 싶었지만 애초에 난 일찍 잘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 방음과는 거리가 먼 숙소의 말 같지도 않은 소음 때문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일차적으로 소음을 정리한 후, 귀마개를 하고 잠을 청한다. 다행히 이후에 소음은 없었다. 바로 잠든다고 해도 잘 수 있는 시간은 여섯 시간 정도, 역시 잠을 설친다.
작은 버스는 아침 일찍 호이안을 돌고 돌아 사람들을 가득 채워 떠난다.
투어는 단순히 미선유적만 가는 게 아니라 라이스페이퍼 만들기 같은 부수적인 활동들이 딸려있다.
별거 아니지만 직접 해볼 수도 있다. 만든걸 직접 먹을 수 있다면 좋겠건만 만들자마자 먹는 게 아니라 건조과정이 필요해 먹을 수는 없었다. 정말 짧은 속성과정을 마치고 다시 출발한다.
호주에서 오신 자매 중 한 분이 사진을 찍어주셨다. 사진을 엄마에게 보여주고 요리를 해줘야 한다 하신다. 그래도 나름 라면은 자주 끓인다. 자매는 부부동반으로 넷이 오셨다고 한다. 노년에 가까운 나이에도 서로 같이 자유롭게 여행한다니, 그 관계와 역사가 얼마나 돈독할지 짐작이 가 부러워졌다.
미선유적에 표를 끊고 들어가면 버기가 사람들을 태워 유적 앞까지 달린다. 빠른 속도로 달리진 않지만 가는 길이 숲속이라 신선한 바람을 맛볼 수 있다.
차를 타고 내리면 유적에 들어가기 앞서 작은 공연장이 또 있다. 신기하게도 공연 직전 순식간에 사람들이 가득 찬다. 참족의 전통 공연이라는데 처음 나오는 물 항아리가 아프사라스를 짐작게 하고 의상과 동작이 분명 힌두교 의례임을 느끼게 해준다. 이곳은 이번 여행길에서 지금까지 본 것, 앞으로 볼 것들과는 전혀 다른 것임을 미리 알려준다.
공연장 앞에는 미선유적에서 가장 본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유적군이 있다.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크지도 않고 원형을 유지한 건물 하나 없지만 그래서 오히려 이 시간의 무게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폐허에 가까운 이곳에 집적된 시간, 그 독특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뱉는다.
가이드의 설명 중에 유일하게 기억나는 것이 있는데, 검은 벽돌과 붉은 벽돌 중 붉은 벽돌이 더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오랜 시간 동안 몇 번의 재보수를 거쳐 여러 시대의 벽돌들이 섞였지만 참족이 제일 처음 쌓아 올렸던 붉은 벽돌은 그 오랜 풍파에도 변치 않는 마법을 지니고 있다고.
두 번째로 간 곳은 거의 모든 벽돌을 새로 만들어 재건한 유적인데, 사진으로 볼 때는 나름 유적 같지만 실제로 보면 신축 느낌이 완연하다.
너무 칼같이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어색하다. 살짝 시간의 무게가 필요할지도.
한편 유적 곳곳에 쓰인 참족의 문자도 인도 계열로, 한자문화권인 북베트남과 완연히 다르다.
대부분 이렇게 보수 중에 있다. 어찌 보면 규모도 작고 폐허만 남았다 할 수 있지만, 응축된 시공간에 감응하기에는 충분한 유적지다. 폐허와 나무들이 둘러싼 길을 유유자적 빠져나오면 다시 버기를 타고 입구로 돌아갈 수 있다.
입구 바로 앞에서 투어에 포함된 간단한 점심 식사를 한다. 쌀국수의 맛이 내가 알던 것과는 조금 다른 특이한 맛이지만 그렇게 특별하진 않다. 후식으로 수박을 줬는데 생각해 보니 베트남에서 처음 먹는 과일이다. 일단 동남아에 왔으니 망고도 먹어봐야겠다.
식사를 마치고 출발하기 전 화장실을 갔는데 수도꼭지를 틀었더니 흙탕물이 콸콸콸 쏟아져 매우 당황했다. 강물을 그대로 끌어다 쓰는 건지, 갑자기 문제가 생긴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손에 비누도 이미 묻혔겠다 그냥 적셨다.
다시 차를 타서 돌아가는 길의 절반 정도를 이동, 이제 배를 타고 투본강을 따라 호이안으로 들어간다.
볕 하나 없이 바람만 엄청 불어 정말 추웠다. 어제 반팔 입고 걸어 다니니 해가 지고 나서 추웠던 것을 감안해 오늘 긴팔을 입은 것이 다행이다.
여러모로 굳이 배를 탈 필요는 없다. 혹시 모르지, 더운 날에는 강바람으로 더위를 식혀줄 수도? 호이안에 도착해 배에서 내리면 다시 차를 타고 숙소 앞에 내려다 준다. 이렇게 첫 번째 투어가 끝났다.
숙소에 돌아가니 TV를 고쳐놨단다. 유튜브를 틀어놓고 침대에 몸을 누인다. 사실 이 시점에서는 서둘러 내일 어떻게 할지 결정을 해야 한다. 원래는 다낭으로 이동 후 바로 기차를 타고 후에로 갈 생각이었지만, 갑자기 다낭에서 굳이 어디 갈 생각 없이 쉬고 싶어진다. 뭔가 볼려고 노력하는게 벌써 지친다. 아무래도 첫날의 여파가 계속 하루하루 누적되는 것 같다.
뭉그적대다보니 어느새 해가 져버렸다. 저녁을 먹으러 다시 나간다.
이번엔 올드타운 안에서 진짜 생생한 노점식사를 해본다. 다낭에서 먹었던 꼼가, 이 닭고기 밥도 원래 호이안 음식이다. 꼼가를 시키면 원래 이렇게 닭 가슴살을 찢어 올려준 게 전부라, 고기의 양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저번처럼 뼈를 씹을 걱정은 없다. 순식간에 해치운다.
배도 살짝 채웠으니 또 호이안을 걸어본다. 어제보다 조금 더 바깥쪽을 걸으니 기념품을 파는 노점들이 있는데 에어팟맥스 같은 것들을 잔뜩 팔아 신기하다. 물론 사지는 않았다. 오늘도 사람이 정말 많다.
꺼질 줄 모르는 호이안의 불빛, 하지만 어제 느꼈던 두근거림은 이제 없다. 해가 지기 전, 그 아름다운 순간들이 전부 지나서 그럴까?
다리 건너 야시장을 구경하러 간다. 음식을 파는 노점과 상가 사이로 사람들이 가득하다. 식사는 마쳤지만 뭔가 더 먹고 싶다.
잎에 싼 소고기 꼬치가 노릇노릇 익어간다. 수많은 길거리 음식들이 나를 유혹하지만 이게 뭐랄까, 가장 베트남스럽게 느껴졌다. 하나를 주문한 뒤 재벌하는 동안 가게에 앉으러 들어간다.
여기서 큰 충격을 느끼는데, 아무리 반노점이라 해도 가게 바닥에 먹고 버린 돼지뼈가 가득 널려있다. 아무래도 한국인으로서 식욕이 확 떨어지는 상황이 아닐 수 없지만, 꼬치를 받고 나갈수 있음에도 알 수 없는 오기로 기어이 앉아서 먹고 간다.
이것 또한 베트남, 앞으로 갈 길이 멀었으니 이제 단순한 한국인 관광객과는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아니면 이런 여행을 지속 할 수 없다. 이미 강가를 걸어 다니며 쥐나 바퀴벌레도 수없이 본 차였다. 여행할 때는 청결에 관한 생각을 아예 달리 먹어야 한다. 한국에서 거의 병적으로 손을 씻어대는 나는 여기서 다른 존재로 변모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생물의 적응력이라는 것 아닐까? 오토바이가 쌩쌩 달려오는 길을 건너는 것, 어디서든 언제나 담배를 피워대는 것, 이어폰 없이 큰 소리로 영상을 보는 것, 광적으로 셀피와 틱톡 촬영에 집착하는 것. 앞으로 전부 내가 적응해야 할 이곳의 일부다.
강가에 호이안이라는 글자 끝에 걸터앉아 아무 생각 없이 허공을 응시한다. 많은 사람들이 오며 가며 이 커다란 알파벳들과 사진을 찍는다. 그렇게 사진을 찍으며 지나가던 많은 이들 중 누군가 갑자기 내게 프레임에서 나와달라고 한다. 심술이 생긴 나는 전혀 비켜줄 생각이 없다.
할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어 더욱 오래 버티고 앉아있던 나는, 나를 포함한 이 수없이 많은 관광객이 채운 곳에 질려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