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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선생님들의 양조장, 용인 술샘 그리고 석쇠불고기

푸드디렉터 안젤라가 바라보는 세상

와인에 대해서 공부하다보면 떼루아 (Terroir) 라는 단어를 접하게 된다. 떼루아는 ‘땅’ 의 프랑스어로 와인의 맛은 그 지역의 풍토와 그 땅에서 자란 포도의 맛으로 결정된다라는 의미로 와인의 맛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환경적인 요소를 말한다. 우리 전통주도 마찬가지다. 법적으로 그 지역의 농수산물을 사용해야 지역특산주 면허를 받고, 전통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술을 보면 그 지역을 알 수 있는 셈인데, 이번 안젤라의 푸드트립 스무번째 목적지는 경기도의 풍토를 담은 전통주 양조장, 술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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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샘은 2012년에 설립된 농업회사법인으로 문헌에 근거한 방식으로 우리술을 복원하고, 재현하는데 힘쓰고 있는 전통주 양조장이다. 술을 잘 아는 술선생님들이 모여서 만들었다는 뜻에서 술샘이란 이름을 지었고, 항상 새로운 술을 개발하기 때문에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술이 솟아난다는 열정도 담고 있다. 평일 오전 9시, 용인-서울 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만에 서울에서 용인에 도착했다. 새삼 우리나라는 고속도로나 KTX가 잘 뚫려있어 마음만 먹으면 하루만에 어디든 갈 수 있는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건물 전체가 술샘이였고, 지하 1층은 술샘 양조장, 1층은 술샘 갤러리 까페 ‘미르’ 이자 시음장, 2층은 전통주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는 체험교육장으로 구성이 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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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샘의 대표적인 술은 술취한 원숭이 막걸리, 붉은 원숭이 막걸리, 떠먹는 막걸리 이화주, 약주 감사, 감사블루, 증류식소주 미르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술취한 원숭이 막걸리와 붉은 원숭이 막걸리는 2년 전에 전통주 전문가로부터 추천을 받아 맛을 본적이 있었는데, 무게감이 있고, 토마토 주스 같이 붉은색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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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의 색이 붉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색이 너무나 명료해서 붉은 색소를 넣은거 아닐까 의심을 한 적이 있었는데, 양조장에 직접 와서 보니 인공 색소나 인공 감미료 등을 넣지 않고, 붉은색을 띄는 홍국균 (붉은누룩곰팡이) 을 경기쌀에 접종시켜 쌀을 붉게 만든 뒤, 그 쌀을 이용해 생막걸리를 만들고 있었다. 홍국쌀은 중국 한나라 황실에서 혈액순환을 돕는 한약재 중 하나로 쓰였고, 모나콜린 K라는 성분이 함유되어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 감소뿐만 아니라 성인병 예방을 주는 슈퍼푸드로 알려져있다. 이 막걸이의 도수는 10.8%인데, 인간이 살면서 겪는 108 번뇌가 이 술을 마시면 1/10로 줄어든다는 재미있는 스토리도 담겨있다.


배꽃 필 무렵에 술 빚기를 준비하는 만들기 체험, 이화주 (梨花酒)

1층에서 간단히 시음을 한 뒤 2층에 있는 체험교육장으로 올라갔다. 이 날 준비된 체험 프로그램은 이화주 만들기로, 이화주는 고려시대부터 전해오는 농후한 맛의 떠먹는 막걸리다. 이 곳에 오기 전에 전통주 갤러리에서 맛을 본 적이 있었는데, 마치 요거트같이 묵직한 질감에 맛도 새콤달콤해서 계속해서 떠먹다가 취한 기억이 있어 더 기억에 남는 술이다. 실제로 잔 형태가 아니라 오래전에 양갓집 규수들이 뒤에서 홀짝 홀짝 마셨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술은 동국이상국집, 한림별곡, 산가요록, 주방문 등 수많은 고서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배꽃 필 무렵에 술 빚기를 준비한다’ 하여 이화주 (梨花酒) 라는 이름이 붙혀졌고, 술의 빛이 눈처럼 희고 향이 좋아 백설향 (白雪香)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술샘의 이화주는 용인의 백옥쌀, 전통 쌀누룩, 그리고 깨끗한 물로 정성스럽게 빚어 만드는 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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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주를 만드는 누룩은 이화곡이라고 따로 있는데, 멥쌀과 물로만 만든다. 가루로 빻은 멥쌀에 물을 넣어 반죽한 뒤, 오리알처럼 동그랗게 뭉친다. 그리고 따뜻한 방에서 종이상자나 바구니에 볏짚이나 솔잎을 깔고, 누룩을 켜켜이 놓는데, 30도 ~ 35도에서 약 2주일 정도두면 되는데 하루 2번씩 뒤집어 줘야해 손이 굉장히 많이 가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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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룩이 준비됬으니 이제 술을 빚을 차례다. 또 다시 멥쌀을 불린 후 가루로 빻은 뒤에 끓는 물에 익반죽하여 구멍떡을 만든다. 구멍떡은 말 그대로 가운데 구멍을 낸 반죽을 말하는데, 반죽이 골고루 빠르게 익게하기 위해 구멍을 만든다고 한다. 끓는 물에 익힌 구멍떡을 식히고, 아까 준비한 이화곡 가루와 구멍떡 삶은 물을 넣어 골고루 섞은 뒤 약 15일정도 발효시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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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직접 모든 반죽을 해야하기 때문에 팔이 아플 각오를 조금은 하고 오는게 좋겠다. 체험을마친 뒤 완성된 이화주를 맛볼 수 있는데, 딸기, 망고, 블루베리를 올려서 먹으니 직접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것이 요거트인지 막걸리인지 여전히 헷갈린다. 도수는 약 8%도이기 때문에 두세번 떠먹으면 양 쪽 볼에 서서히 붉은 빛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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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찹쌀 막걸리 만들기, 소주 내리기, 누룩 소금 만들기 등의 다양한 체험이 있는데 5인 이상부터 예약을 할 수 있으니 지인들과 함께 나들이 오는 기분으로 와도 좋겠다.


술샘 전통주 양조장 체험 비용: 25,000원/인 / 평일, 주말 7일 전 예약 / 5인 이상 가능 / 070-4218-5225


불맛이 그득하게 베어있는 푸짐한 석쇠 불고기 백반집, 양지석쇠불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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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체험을 마친 뒤 뱃 속에서 천둥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양조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맛집을 찾기 시작했는데, 큼지막한 노란색 간판에 자신감있게 ‘석쇠 불고기’ 라고 적혀있는 한 식당을 찾았다. 양지석쇠불고기는 양조장에서 차로 3분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는 곳으로 오전 11시 30분부터 사람들로 꽉 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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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는 석쇠 돼지 불고기, 석쇠 고추장 불고기, 석쇠 제육, 석쇠 매운 오징어와 김치찌개로 단순했고, 주방 안에서 건장한 남자 두명이 석쇠에 분주하게 고기를 굽고 있었다. “석쇠 돼지 불고기 2인 주세요” 신선한 쌈채소와 함께 여러가지 반찬이 나왔고, 밥은 부족하면 창가에 있는 밥솥에서 원하는 만큼 더 먹으라고 한다. 가만 있어보자… 인당 7,500원에 즉석에서 구운 석쇠 불고기에, 쌈채소, 반찬, 그리고 무한리필 밥까지? 게다가 직접 맛을 보니 고기의 탄력감은 물론, 적당한 불맛과 달달함이 스며들어 있는 돼지 불고기의 맛은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소담하게 올라가 있는 파채와 윤기가 흐르는 쌀밥과 함께 먹으니 용인으로 이사를 오고 싶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글 | 사진 푸드디렉터 김유경 (안젤라) (foodie.angela@gmail.com)

푸드디렉터 김유경 (필명 안젤라) 은 디지털조선일보 음식기자 출신으로 MBC 찾아라 맛있는 TV, KBS 밥상의 전설, KBS 라디오전국일주와 같은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왔고, 테이스티코리아 유투브채널을 통해 한국의 맛을 전세계에 알리고 있다. 최근에는 안젤라의 푸드트립 채널을 통해 세계 음식과 술, 그리고 여행지를 국내에 알리고 있으며, 네이버 포스트와 네이버 TV (http://tv.naver.com/angelafood) 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요리는 오감을 깨우는 여행이라는 철학으로 오늘도 맛있는 기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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