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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맛을 사랑하는 폴란드와 한국의 상관관계

푸드디렉터 안젤라가 바라보는 세상

지리적으로 7,800km 떨어져있지만 우리나라와 묘하게 닮은 나라가 있다. 과거 이웃 강대국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고통을 겪었지만 고유의 전통과 주권을 지켜내고, 창의력과 독창성, 열정으로 역경을 딛고 경제발전을 이룬 결과 OECD 가입국으로 중부 유럽의 중심이 된 국가. 바로 폴란드다. 생김새는 다르지만 건축, 문학, 미술, 디자인 분야에서 독창적인 전통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즐겨 먹는 음식과 음식문화까지 비슷하다. 안젤라의 푸드트립 스물다섯번째 목적지는 폴란드다.


이웃나라 폴란드 사람들이 즐기는 맛은 바로 불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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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는 과거 유럽과 아시아 간의 교역로가 있던 곳에 자리잡고 있다. 머나먼 나라에서 온 상인들은 본국에서 가져온 이국적인 향신료와 폴란드 특산품인 호박버섯을 거래하기 위해 폴란드에 왔고, 머무는 동안 새로운 요리법을 전수해주기도 했다. 특히 폴란드의 요리법은 이웃나라의 영향뿐만 아니라 폴란드에 오랫동안 거주한 소수민족들의 영향도 많이 받았는데, 바로 이러한 요인들때문에 폴란드 요리는 다채롭다. 특히 유대인 음식의 영향을 받아 단맛과 매운 맛을 즐기고, 음식을 훈연해 소위 ‘불맛’ 이 가져오는 맛과 향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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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과 폴란드가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폴란드의 유명 셰프 Karol Okrasa 가 한국을 찾아 폴란드의 맛을 선보였다. 성북동에 있는 폴란드 대사관 저에서 진행된 정찬은 야외 정원에서 시작되었다. 매끈한 연어를 가지고 나온 뒤 그 위에 지푸라기를 한 웅큼 올리고, 갑자기 불을 내기 시작했다. 이 과정은 건초를 이용해서 연어를 훈연하는 방식으로 지푸라기에 담겨있는 불을 만나 허브와 같은 향을 내었고, 그 향이 연어의 속살로 스며들었다. “아마 폴란드는 한국 다음으로 불에 굽는 요리를 즐기는 나라일겁니다.” 주한 폴란드 대사 피오트르 오스타셰프스키는 한국에 거주하면서 성격이나 일하는 방식도 비슷하지만, 특히 음식 문화에서 많은 공통점을 찾았다고 한다. 삼겹살을 비롯해 돼지고기를 이용한 요리, 불에 굽는 고기요리, 마늘, 버섯, 새콤한 맛이 나는 발효 음식 등 알면 알수록 신기하다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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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폴란드에서는 과일도 구워서 먹는다. 역시 건초를 이용해서 굽는데 구우면 구울수록 과일 본연의 맛과 과일 안에 있는 당도가 높아져 달콤해져 간식이나 식사 마지막에 디저트로 먹기도 한다.




돼지고기와 절임채소. 폴란드 사람들의 김치 오이피클과 양배추 사우어크라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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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나라는 모두 산과 바다, 평야가 골고루 분포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어 식탁위의 음식문화 또한 닮은 점이 많다. 고기요리 중에서 특히 돼지고기를 즐기고, 강과 호수에는 물고기가 많아 폴란드에서는 민물고기를 즐겨먹는데, 한국 사람들이 매운탕, 도리뱅뱅이, 잉어찜, 장어구이 등을 즐겨먹는 것 처럼 폴란드에서는 크리스마스 이브 식탁에 잉어 요리가 빠져서는 안된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닮은점은 바로 돼지고기 요리와 절임채소다. 한국이 삼겹살을 비롯해 순대, 족발, 돼지국밥을 즐기는 것처럼 폴란드는 순대와 비슷하게 선지가 들어간 소시지 카샨카 (Kaszanka), 킨죽 (Kindziuk), 카바노스 (Kabanos), 여러가지 고기와 소시지에 양배추와 사우어크라우트 등을 넣어 끓인 비고스 (Bigos) 는 폴란드 사람들의 소울푸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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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고기 요리를 먹을땐 항상 절임 채소들이 나오는데, 한국에는 김치가 있는 것처럼 폴란드에는 오이와 양배추 절임을 즐겨먹는다. 이는 음식을 장기간 보관하기 위한 방법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찾아낸 방식으로 한국에서 겨울에 가족과 동네 이웃들과 모여 김치를 먹듯, 폴란드 농촌 지역에서는 수확 후 겨울을 나기 위한 양배추 절임을 만든다. 폴란드 전통 오이피클은 오이를 오크통에 담아 딜과 체리 잎, 마늘, 홀스래디쉬를 넣어 발효시키고, 여기에 큐민, 머스타드 씨, 타라곤, 세이지 등을 넣어 맛을 낸다. 사우어크라우트로 알려져있는 양배추 피클도 뺴놓을 수 없다. 아주 오래전에는 양배추를 길게 썬 뒤 소금을 뿌린 뒤에 발로 밟아서 으깼다고 한다. 당근이나 사과도 같이 넣어 맛을 낸다고 하는데, 정해진 레시피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집안마다 맛이 다 다르다고 한다. 마치 집집마다 김치맛이 다른 것처럼.


맥주 애호가당이 있다고? 애주가 폴란드 사람들이 즐겨먹는 맥주와 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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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는 애주가가 많은 나라로 알려져있다. 1991년 총선에는 맥주 애호가당이 출현해 무려 16석의 의석을 얻은 적도 있다고 한다. 폴란드는 맥주 양조와 벌꿀술, 담금주 제조 역사가 오래되었는데 요즘은 마이크로 브루어리에서 만드는 개성있는 비살균 맥주가 인기다. 폴란드를 여행한다면 여러 지역 맥주를 즐기는 재미도 놓치지 않길 바란다. 또, 맥주만큼 유서가 깊은 술이 있는데 바로 벌꿀술이다. 폴란드는 오래전부터 항상 꿀이 풍부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숲이 준 벌꿀’ 이라는 선물을 가지고 도수가 높은 리큐르를 만드는 방법을 터득했다. 이는 미드 (Maed) 라고 불리며 벌꿀술 중에서 최상품은 푸우토락 (Poltorak), 부이니악 (Dwojniak), 트루이니악 (Trojniak) 등이 있는데 술에 들어 있는 꿀 함량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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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보드카와 담금주도 빼놓을 수 없는데 폴란드 보드카는 밀과 호밀 등의 곡물과 감자로 만들고, 담금주는 모과, 블랙 커런츠, 체리 등 제철 과일들을 이용해서 지금도 가정에서 담금주를 만든다. 한편, 올해로 한국과 폴란드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양국 식문화를 알리기 위해 농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이 한국과 폴란드의 전통 가정식을 주제로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는데, 주한 폴란드 대사관 문화 & 공공외교 담당 Beata Kang-Bogusz와 폴란드에서 온 Tomasz Cimek 셰프와 Bartosz Kaczmarczyk 는 한국에서 잠시 거주하며 다양한 야생 버섯들과 나물, 제철 식재료를 경험했는데, 마치 아시아의 폴란드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글 | 사진 푸드디렉터 김유경 (안젤라) (foodie.angela@gmail.com)
푸드디렉터 김유경 (필명 안젤라) 은 디지털조선일보 음식기자 출신으로 MBC 찾아라 맛있는 TV, KBS 밥상의 전설, KBS 라디오전국일주와 같은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왔고, 테이스티코리아 유투브채널을 통해 한국의 맛을 전세계에 알리고 있다. 최근에는 안젤라의 푸드트립 채널을 통해 세계 음식과 술, 그리고 여행지를 국내에 알리고 있으며, 네이버 포스트와 네이버 TV (http://tv.naver.com/angelafood) 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요리는 오감을 깨우는 여행이라는 철학으로 오늘도 맛있는 기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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