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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로파 May 10. 2023

새 식구를 들였다.

고요하고 분주하게.

새 식구를 들였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사내 이벤트를 자주 한다. 이번에는 몇 가지 미션을 하면 화분 하나씩을 줬다. 여러 가지 허브 중에 유일하게 작은 꽃을 맺고 있던 백리향을 골랐다. 한 손으로 화분 바닥을 움켜잡고서 집에 가는 버스 정류장으로 걷는데 내 모습이 레옹 같겠다고 생각했다. 평일에 민낯으로 머리를 휘날리며 뜬금없이 백리향을 든 여자. 아마 사람들은 그런 여자가 옆을 지나쳤다는 것도 모르겠지. 내가 지나치는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세상은 언제나 내가 기대하는 것보다는 내게 관심이 없었고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관심을 주었다.


집에 돌아와 두 개의 화분 옆에 새로 들여온 백리향을 두었다. 기존의 화분들은 오래 살았다. 가끔 물을 늦게 줘도, 겨울이라 추워서 환기를 잊어도 살아남았다. 잘 살아남는다는 홍콩야자와 다육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백리향은 어떨지 모르겠다. 허브가 다른 식물보다는 키우기 어렵다고 들었지만 햇빛이 오래 드는 우리 집에서는 잘 자랐으면 좋겠는데. 잘 살려봐야지.


식물은 바람과 물과 햇빛을 머금고서, 그대로 머무르는 것 같아도 조금씩 하늘을 향한다.


그래서 위안을 준다. 오늘 거의 모든 선택을 망쳤어도 집에 돌아와 햇빛 방향으로 기운 잎을 보면 왠지 좀 괜찮아진다. 오늘 나의 좋고 나쁨과 상관없이 태양에 한 뼘씩 가까워질 테니까 그렇다. 고요히 분주할 것이다.


오늘의 백리향은 별 같은 꽃이 피었고 내일은 줄기가 활처럼 뻗을 것이다. 내일의 나는 웃으며 싸울 것이다. 혹은 웃기만 할 것이다. 내가 세상에 흔들리는 동안 집을 잘 부탁해, 적요하고 분망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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