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 혼자
2015년 10월 31일
수상버스와 다르게 낮은 곤돌라에서 바라본 베네치아는 또 달랐다.
좁은 운하를 지나면서 뱃사공은 주변의 건물들을 소개해 주었다. 베네치아의 건물들 중에 문이 물 쪽으로 나있어서 어떻게 들어가냐고 물어보니 보트를 통해 출입한다고 하셨다.
좁은 운하를 지나 넓은 대운하로 나오니 운하에서 보는 베네치아가 보였다. 주변에는 수상버스 수상택시 관광보트 우리와 같은 곤돌라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물을 이용해 이동하는 이곳에서는 이것들이 전부 교통수단이었다.
'유럽 100일 여행 中 D-77'
물이 흐르듯 도시 전체가 떠다니는 베네치아. 이곳에는 자동차, 오토바이와 같은 육상 교통수단을 볼 수 없다. 오로지 물 위를 떠다니는 배만이 있을 뿐이다. 언뜻 보면 불편할 것 같지만 바로 이 점이 베네치아를 매력적으로 만들어준다. 베네치아의 대중교통 수단인 바포레토는 한껏 흥분된 관광객들을 가득 싣고 도시 이곳저곳으로 데려다준다. 대운하를 따라서 물 위에 떠있는 집들과 수면에 반사되는 햇빛을 받으며 물 위를 이동하다 보면 도시는 훨씬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베네치아의 감싸는 물길을 따라 미로같이 얽혀있는 길들, 구불구불 얽혀있는 골목길을 헤매다 보면 누가 약속이나 한 듯 베네치아의 중심부 산마르코 광장에 다다른다. 산 마르코 광장에 자리 잡은 여행자들은 지중해의 햇살을 느끼며 베네치아의 소리를 듣는다. 광장의 중심에 서있는 산 마르코 대성당의 프레스코화는 더욱더 찬란하게 빛나고 저 멀리서 고동치는 뱃 소리와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소리가 섞이어 베네치아의 즐거운 분위기는 한층 더 고조된다.
베네치아를 느끼는데 곤돌라 만한 것이 없다. 많은 관광객들이 그렇듯 나도 곤돌라를 타고 베네치아의 물길을 따라갔다. 줄무늬 옷을 입을 뱃사공이 노를 저을 때마다 곤돌라는 한쪽으로 기울어지지만 다시 한번 노를 저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곤돌라의 균형이 맞아진다. 처음에는 곤돌라가 흔들거려서 걱정되지만 어느샌가 뱃사공에게 배를 맡기고 베네치아의 풍경을 감상하게 된다. 곤돌라에서 바라보는 베네치아는 그 어느 장소보다 낮은 곳에 위치하지만 운하가 가져다주는 풍경을 느낄 수 있는 충분한 높이다.
베네치아의 물길을 따라간다는 것은 베네치아를 알아가는 것이다.
2015년 11월 1일
무라노 섬은 본 섬과 다르게 사람이 없는 한적한 시골 같은 곳이었다.
본 섬에는 음식점들이 운하를 따라 있어서 지저분했는데 여기는 그런 게 없었다. 보트들이 운하를 따라 정박해 있고 길에는 가로등들이 밝히고 있었다. 유리 진열대 안에는 유리공예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무라노의 풍경은 너무 이뻤다 ㅜㅜ 밤하늘에는 별들이 밝게 빛나고 그 밑에는 베네치아의 또 다른 풍경이 내 맘을 흔들었다. 이렇게 이쁠 수가.
길에는 나 밖에 없었고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한 풍경인 것 같았다.
운하도 넓게 정비가 잘 되어있고 운하를 따라 길도 잘 정비되어있었다. 나는 진짜 베네치아를 본 것 같았다.
'유럽 100일 여행 中 D-78'
사람은 가끔씩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만의 시간은 바쁘게 일상을 달리던 나에게 휴식을 부여하고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준다.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자기 자신과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여행을 하며 지친 나를 격려하기도 하고 잘하고 있는 나를 칭찬하기도 한다. 잘못이 있으면 반성하고 새로운 지식이 있으면 배워나간다. 이런 순간들이 하나하나 쌓이다 보면 어느샌가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고 조그만 일 속에서 행복을 발견하게 된다.
여행이 언제나 혼자만의 시간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너무 많은 관광객들은 오히려 여행자인 나를 뺏어가고 관광지를 관광 코스로 전락시킨다. 연중 내내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유럽은 매력적이지만 자신만의 장소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유명한 장소에 가서 많은 것을 보고 오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장소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일도 필요하다.
바닷바람이 세차게 불고 도시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기는 시간, 나는 바포레토에 몸을 싣고 무라노 섬으로 향한다. 관광객들이 모두 떠나가고 가로수의 불빛만이 섬을 밝히는 가운데 배들이 물의 흐름에 맞춰 움직인다. 내가 그곳에 발을 내딛는 순간 가로수의 불빛들은 조명이 되고 섬은 나만을 위한 무대로 변한다. 이 순간만큼은 바쁘게 움직이던 시간이 잠시 숨을 돌리고 나 자신은 주인공이 되어 관객 없는 무대 위에서 마음껏 뛰논다.
아무도 모르는 자신만의 장소를 발견하는 것, 그것보다 멋진 일이 있을까? 늦은 밤 찾아간 무라노 섬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던 베네치아의 고요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