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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광웅 Jul 06. 2016

100일 내가 본 유럽-로마(Ⅲ)

나눔, 소동

2015년 10월 29일


폼페이 광장과 베수비오 화산


나눔-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


로마의 휴일이 끝나니 버스도 로마에 도착했다. 가이드님께서 마무리를 하시고 버스에서 내리게 되었다.

가이드님은 이탈리아 운전기사 아저씨께 팁을 조금이라도 드리는 게 예의라고 하셨다.

다 팁을 준비해서 주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이럴 때 보면 나쁜 놈인 것 같다. 나는 돈을 계획성 있게 필요한 곳에만 쓰는 좋은 면이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돈에 너무 인색했다. 1유로만 주면 됐었는데 감사한 마음보다 아깝다는 생각에... 더 아껴야 된다는 생각에 떳떳하지 못했다.  

 '유럽 100일 여행 中 D-75'                                          


나는 가난한 배낭여행자였지만 나의 마음은 더 가난했다.


에든버러에서 있었던 일이다.


프린지 페스티벌로 한창이던 에든버러의 로열 마일에는 수많은 길거리 공연이 벌어졌다. 길을 따라 공연이 벌어지는 광경은 너무 신기했고 어느샌가 나도 구경하는 사람들 틈에 껴서 공연을 관람했다. 그렇게 공연이 끝나고 박수가 터져나올 때 몇몇 사람들이 앞으로 나와 길거리 공연가에게 적은 금액이지만 동전을 꺼내어 던져주는 것이었다. 나는 단순히 지나가다가 공연을 보게 된 것뿐이었고 공연가들은 무대가 아닌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는 거였기 때문에 그 광경을 이해할 수 없었다.


브뤼셀에서 있었던 일이다.


오랜만에 여유를 가지고 그랑플라스 광장 계단에 앉아서 쉬고 있던 중이었다. 갑자기 내 앞으로 아이를 업고 있던 집시가 깡통을 들고 오더니 구걸을 하기 시작했다. 집시는 프랑스어로 이야기했기 때문에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는 그 눈빛에는 '도와주세요'라는 의미를 읽을 수 있었다. 뒤에 있는 아이를 바라보자 내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나는 이런데 돈을 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자리를 이동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낯선 사람에게 돈을 주다가 위험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다독거리며 나 자신을 정당화시켰다.


뮌헨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국인 동행과 맥주 텐트에서 식사를 하고 난 후 값을 치르기 위해 가격을 계산하던 중이었다. 우리는 둘 다 배낭여행자였기 때문에 정확히 돈을 반절로 나누기로 했다. 돈을 나누던 중에 동행분이 추가로 동전을 더 꺼냈다. 나는 왜 동전을 더 꺼내냐고 물어봤더니 그분은 팁을 드리기 위해서라고 대답하셨다. 나는 이미 가격표에 나온 대로 지불만 하면 되는데 뭣하러 팁을 주냐고 나무랐다. 그분은 우리들이 웨이터를 실례를 범했으니 사과도 하고 감사도 표할 겸 팁을 줘야 한다고 했다. 나는 정말 못마땅했다.


그 후에도 나는 변하지 않았다.


나는 가난한 배낭여행자이고 돈을 철저하게 아껴야 된다. 나는 악착같이 돈을 아꼈다. 돈을 절약하기 위해 관광지에 가기 전에 마트에 들러서 점심에 먹을 음식을 구입했고 관광지를 돌아다닐 때는 다리가 저려도 교통비가 아까워서 걸어 다녔다. 나에게 있어 돈은 철저하게 관리해야 할 것이었고 꼭 필요한 것 외의 소비는 용납할 수 없었다.


포지타노 마을


로마에서의 다섯째 날, 남부 투어를 참여하러 테르미니 역으로 이동했다. 약속 장소로 도착하니 나와 같이 여행을 온 한국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그런데 그 많은 한국 사람 중에 딱 한 사람, 버스 운전기사님만이 이탈리아 사람이었다. 나는 항상 하던 것처럼 'Ciao'라고 인사를 했다. 운전기사님도 한국사람이 인사를 하는 게 신기했던지 웃으면서 인사를 해주셨다. 그 후 폼페이 유적지에 갈 때도 아말피 해변을 따라 이동하면서 버스를 타고 내릴 때도 나는 'Grazie'라고 인사를 했고 버스 운전기사도 이런 나를 좋아하셨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로마에 도착할 무렵 가이드님은 투어를 마무리하면서 기사 아저씨께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자고 하셨다. 그러면서 모두에게 적은 금액이지만 1유로라도 팁을 달라고 부탁하셨다. 하지만 나는 가만히 있었다. 나는 투어를 하기 위해 미리 돈을 지불했는데 돈을 추가로 준다는 게 아까웠다. 모두가 기사님께 팁을 주며 버스에 내렸다. 그리고 내 차례가 왔다. 나는 팁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자연스럽게 버스에서 내리려고 하던 순간 내 입에서 'Grazie'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갑자기 부끄러워서 머리를 들 수 없었다.


내 앞에 보였던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


순간 나의 행동이 잘못됐음을 느꼈다. 나는 나누는데 돈을 쓰지 못했다... 아니, 돈을 쓰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리자 내 앞에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이 보였다. 나는 성당을 바라볼 수 없었다. 그 자리에는 물질에 얽매여 나누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있었다.



2015년 10월 30일


진실의 입 앞에서


소동- 트라스테베레 지구

                                                              

짹짹 거리는 새소리가 테베레 강 유역을 덮었다. 새들이 앉은 나무에는 새들이 너무 많아서 나뭇잎과 가지들이 떨어졌다.

노을이 지고 날이 어두워져도 새들은 테베레 강 유역에서 움직일 낌새가 없었다. 난생처음 보는 풍경에 당황스럽기도 했다.

일단 새들을 뒤로하고 트라스테베레 지구로 갔다.

'유럽 100일 여행 中 D-76'                                             


티베리나 섬 근처 테베레 강변에서 큰 소동이 일어났다. 노을이 뉘엿뉘엿 지고 모든 것이 붉게 타들어가던 순간 사방에서 새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에서 새들이 벌 떼처럼 쏘아 다니고 있었다. 때 마침 테베레 강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나도 그 괴이한 현상을 보기 위해 일어났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관광객들을 두말할 필요도 없고 현지인들도 나와서 하늘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새들을 주시했다. 새들은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몇십 마리는 될 법한 수들이 떼를 지어 나무를 옮겨 다니며 이동했다.


짹 짹 째째짹


도저히 조용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 무리들이 새가 이동해도 어디서 왔는지 또 다른 무리의 새들이 와서 티베리나 섬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새들이 한번 왔다 간 나무들에는 잎과 가지들이 우수수 떨어졌고 피해를 보는 사람들도 생겼다. 길을 가던 차들도 멈춰 서서 새들을 구경했다. 저 새들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 걸까? 이렇게 새들을 정신을 놓다 보니 어느덧 강변을 따라 가로수에는 불빛이 들어오고 풍경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어수선한 상황을 피해 바로 근처 트라스테베레 지구로 이동했다.


티베리나 섬에서 바라본 테베레 강
새들을 보기 위해 멈춰 선 차들


트라스테베레 지구는 테베레 강변과 불과 얼마 안 되는 거리에 위치하지만 다른 장소였다. 야단법석을 떨던 테베레 강 유역과 다르게 이곳의 분위기는 평화로웠다. 트라스테베레 유역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저녁 늦게 나와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산타 마리아 인 트라스테베레 성당 앞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광장 계단에 앉아 있는 사람들, 주홍 빛으로 은은하게 비추는 건물들, 분주하지만 기쁨이 넘치는 사람들의 소리. 이 곳은 항상 붐비는 관광지가 아니라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이 곳에서 진짜 로마를 느낄 수 있었다. 항상 관광객들로 가득 찬 낯선 로마였지만 트라스테베레는 현지인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친근한 로마였다. 부산스럽게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도 트라스테베레의 정겨운 분위기를 훼방 놓지 못했다.

 

산타 마리아 인 트라스테베레 성당
산타 체칠리아 인 트라스테베레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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