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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광웅 Jul 04. 2016

100일 내가 본 유럽-로마(Ⅱ)

미켈란젤로, 카라바조

2015년 10월 27일


천사의 다리 야경


미켈란젤로- 성 베드로 대성당


성 베드로 대성당도 밀라노 피렌체 두오모와 똑같이 안쪽에 거대한 기둥이 바치고 있는 유럽 내륙 쪽과 다른 형태의 성당이었다. 밀라노 두오모의 기둥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성 베드로 성당의 기둥은 어마어마했다. 갈색과 흰색의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이 건물은 영롱한 빛을 띠는 그런 성당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 성당에는 그렇게 흔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림 작품이 하나도 없었다. 다 조각들이었다. 이렇게 큰 성당을 조각들로만 다 채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조각들 중에 대작은 오른쪽에 자리하고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였다. 방탄유리에 갇혀서 가까이 볼 수는 없었지만 그 감동은 대단했다.

 '유럽 100일 여행 中 D-73'


대영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그리고 마침내 바티칸 박물관


드디어 3대 박물관 중 마지막 박물관에 도착했다. 이탈리아에 와서는 르네상스의 3대 거장이라고 불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도 모두 만났다. 밀라노 산타 마리아 델라 그라치에 성당의 「최후의 만찬」을 시작으로 나는 르네상스 시대의 명작들을 계속 접하게 됐다. 그리고 바티칸 박물관에 이르러서 르네상스의 정점을 맛보게 되었다.


바티칸 박물관은 개별 가이드 상품이 많기 때문에 나도 그중 하나를 신청했다. 박물관 내부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투어 인원들은 수신기를 이용해 가이드님의 설명을 들어야만 했다. 바티칸 박물관은 유럽의 여느 박물관 같이 많은 사람들로 인해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우리 투어 그룹은 그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오며 중요한 작품 위주로 관람했다. 워낙 이동이 많았던 터라 바티칸 박물관 관람을 마쳤을 때는 모두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박물관 내 솔방울 정원
팔각 정원
라파엘로의 방


바티칸 박물관 관람을 마쳤다고 해서 투어가 끝난 것이 아니다. 바티칸 시국 안에는 박물관뿐만 아니라 시스티나 성당과 성 베드로 대성당도 존재한다. 시스티나 성당에는 성당 천장을 가득 채운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그려져 있다. 미켈란젤로의 그림은 정말 대단했다. 천장화 중심의 아담의 창조 부분뿐만 아니라 내가 보고 있는 모든 그림 속에서 성경 말씀이 살아 움직였다. 미켈란젤로에 대한 감탄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시스티나 성당을 나와 성 베드로 성당에 들어가는 중에 나는 한 곳에 몰려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자 내 눈앞에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이 나타났다.


멀리 보이는 성 베드로 광장
「피에타」- 미켈란젤로


피에타 상을 직접 눈 앞에서 보는 감동은 이루 다 형언할 수 없다. 미켈란젤로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지만 동시에 조각가이다.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의 다비드 상과 함께 성 베드로 대성당의 피에타는 미켈란젤로의 대표 조각상이다. 미켈란젤로는 피에타를 통해 성자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성모 마리아의 아들 인간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했다. 성모 마리아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다. 동시에 그 속에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깊은 슬픔이 담겨있었다.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 그리스도를 품에 안은 성모 마리아의 모습 속에는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시선이 존재한다.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 그 누구도 인간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표현할 수 없었지만 미켈란젤로는 피에타 상을 통해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어머니의 고귀한 사랑으로 승화시켰다.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었고 앞으로도 그 모습을 흉내 낼 수 없었기에 피에타 상은 더욱더 거룩하게 느껴진다.


천사의 성
천사의 성에서 바라본 로마의 야경



2015년 10월 28일


공사 중이라 올라가지 못하는 스페인 계단


카라바조- 보르게세 미술관


이런 조각상들 중에서 유일하게 그림이 있는 전시실이 있었는데 카라바조의 방이었다. 오늘은 의도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카라바조를 많이 만나게 되었다.

미켈란젤로라는 본명을 못쓰고 카라바조라는 이름을 써야 했던 비운의 화가, 뛰어난 선배들에 의해 빛을 못 본 그런 사람이었지만 그의 화풍을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무언가가 있다.

카라바조의 다윗과 골리앗은 너무 사실적이어서 섬뜩할 정도였다. 다윗을 표현한 작품들은 많지만 이를 표현하는 방식은 제작자의 특색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유럽 100일 여행 中 D-74'


또 한 명의 미켈란젤로, 하지만 카라바조라고 불리는 비운의 인물. 차마 위대한 천재의 이름을 사용할 수 없어 자신의 출신 마을을 이름처럼 사용해야 했던 화가 카라바조. 카라바조라는 인물을 알게 된 것은 바티칸 박물관에서의 스쳐가듯 지나가던 순간이었다. 가이드님은 카라바조의 「매장」을 잠시 언급하시며 그의 본명이 미켈란젤로라고 설명해주셨다. 그때 당시 나는 그가 미켈란젤로와 이름이 같은 인물이라고만 생각을 했지 그를 직접 대면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나는 유럽여행을 계획할 때 관광지의 수를 기준으로 각 도시에 머무를 일수를 정했다. 규모가 작은 도시는 상관이 없지만 로마와 같은 대도시일 경우에는 들러야 할 장소가 많아지기 때문에 관광지의 위치도 중요해진다. 그래서 나는 날짜별로 일정을 짤 때 각 도시의 구역을 나누고 각 구역을 하루의 일정으로 분배했다. 이렇게 일정을 짜면 짧은 동선 내에서 최대한 많은 장소를 들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해서 나온 일정이 나보나 광장 주변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에서 시작해서 보르게세 공원 주변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나보나 광장
캄포 데 피오리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은 화려했지만 유명한 작품은 없었다. 나는 미술관 안내 책자만 가지고 설명을 따라가며 관람을 시작했다. 생전 모르는 작품들이라 아무 생각 없이 관람을 하다 마지막 방에 들어선 순간 나는 카라바조의 그림을 만나게 되었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빛 한점 없는 배경 속에서 막달라 마리아만이 홀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림은 인상 깊었지만 나는 이 작품이 주는 의미를 찾지 못했었다. 그렇게 미술관 관람이 끝나고 나는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막리아 막달레나」-카라바조 (우측)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포폴로 광장에 도착하자 비가 쏟아졌다. 보르게세 공원을 돌아다녔지만 비가 오는 가운데 내 몸은 지치고 우울해져 갔다. 결국 나는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에 들어오자마자 의자에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잠든 줄도 모른 채 있다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을 때 내 눈 앞에 세 점의 제단화가 보였다. 가운데 제단화가 화려한 색채로 밝게 빛났지만 옆에 있는 그림들은 그렇지 못했다. 왼편의 「베드로의 십자가형」의 배경은 어두웠다. 하지만 베드로의 표정은 놀라울 정도로 살아 움직였다. 나는 점차 카라바조의 그림을 이해할 수 있었다.


보르게세 공원에서 바라본 포폴로 광장
「베드로의 십자가형」(좌측), 「성 바울의 회심」-카라바조(우측)


카라바조와의 마지막 만남은 보르게세 미술관이었다. 보르게세 미술관은 예약제로 운영이 되기 때문에 나는 내가 예약한 시간에 맞춰 미술관을 방문했다. 사람들은 베르니니의 조각상들을 보기 위해 보르게세 미술관을 찾는다. 나도 처음엔 베르니니의 작품들을 보기 위해 미술관 관람을 시작했지만 「다윗과 골리앗」을 보는 순간 내가 이곳에 온 이유가 베르니니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더욱더 밝게 빛나는 다윗의 모습과 죽었지만 아직도 생기가 도는 골리앗의 머리는 소름 끼칠 정도로 사실적이었다. 세 번의 만남이 있고 나서야 나는 카라바조를 알게 됐다. 카라바조는 어둠을 이용해 인물에 생명을 부여할 줄 알았다. 나에게 보르게세 미술관의 주인공은 카라바조였다.

 

보르게세 미술관
「다윗과 골리앗」-카라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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