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 유적
2015년 10월 25일
천년이 두 번 지나도를 메들리로 넣은 성가곡인데 나도 알기 때문에 따라 부르게 되었다. 4 성부가 있는 찬양대의 찬양은 로테르담 이후로 처음 들었다. 음 하나하나가 내 마음에 어쩜 그렇게 울리는지.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가 듀엣으로 나오는 천년이 두 번 지나도는 아름다웠다. 4 성부가 같이 나오는 문들아 머리 들어라를 들었을 때는 감동이 밀려왔다.
'유럽 100일 여행 中 D-71'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악기는 인간의 목소리다.
유럽의 성당에 들어설 때마다 항상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숙연하고 경건해지는 마음,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웅장하게 펼쳐진 예배당, 스테인드글라스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성인들의 조각, 제단에 엎드려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 가슴을 울리는 잔잔한 오르간 소리 그리고 아름다운 천상의 하모니. 어렴풋이 내 귓가에 들리는 네 가닥의 소리는 마치 하나의 선율이었던 것처럼 합쳐져 천국의 소리를 만들어낸다. 천국이 존재한다면 바로 이곳이겠지... 성가대의 찬양 소리는 사람들을 빛으로 인도해준다.
목소리에는 그 사람의 감정과 정서가 담겨있다. 따라서 목소리는 어느 악기보다 완벽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한인교회를 들렀던 나는 성가대의 찬양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오페라로 유명한 이탈리아에는 성악을 배우기 위해 오는 유학생들이 많다. 내가 듣고 있는 찬양은 성악가들이 부르는 아름다운 곡조였다. 성가대의 찬양만으로도 감격스러운데 성악가들의 아름다운 음색으로 찬양을 들으니 나의 마음속에 은혜의 강물이 밀려왔다. 목소리가 모여 하나의 선율이 될 때 주는 감동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들의 목소리에서 나오는 찬양의 빛은 예배당 전체를 밝게 비추었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이사를 하면서 집 앞의 큰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이해하기 힘든 설교 말씀보다 성가대의 찬양에 더 눈길이 갔다. 워낙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 탓에 학교 음악시간에도 작은 소리로 웅얼웅얼거렸지만 나의 마음속에는 항상 노래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예배 첫날 나는 성가대를 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어서 예배당 앞을 서성거렸다. 때마침 머뭇거리는 나의 모습이 성가대 지휘자님의 눈에 띄었고 나를 보자마자 성가대를 같이하자고 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지금까지 나는 성가대석에 앉아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성가대의 찬양에는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라는 4개의 성부가 존재한다. 성가대 지휘자님은 항상 연습을 할 때 각 성부의 음을 익히는 것으로 시작하셨다. 연습은 너무 지루했다. 멜로디의 음을 그대로 부르는 소프라노를 제외한 나머지 성부들은 생전 모르는 음을 따라 억지로 꾸역꾸역 소리를 내야 했다. 가끔씩 #,♭과 같은 임시표가 붙으면 음이 너무 어려워져 소리 내기를 포기한 적도 있었다. 이렇게 처음엔 이게 무슨 음이야라고 투정을 했지만 4개의 성부가 함께 찬양을 할 때면 나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찬양과 상관없다고 느꼈던 음 하나가 네 개의 음으로 합쳐지자 하나의 소리가 되는 것이었다. 내가 내는 소리도 찬양이 되는 구나라고 느끼는 순간 나는 조화의 뜻을 깨닫게 되었다.
바흐의 평균율로부터 출발한 음의 조화를 토대로 교회음악은 급속도로 발전했다. 그리고 합창의 개념이 확장되면서 지금의 4 성부가 나타나게 되었다. 4 성부는 집으로 비유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소프라노는 집의 지붕, 베이스는 집의 기둥, 알토와 테너는 집 안의 장식이 된다. 즉 소프라노와 베이스가 없으면 집이 완성될 수 없고 알토와 테너가 없으면 집이 허전해진다. 4 성부는 서로의 위치에 욕심내지 않고 자신의 높이에서 최선을 다한다. 이렇게 각자의 역할을 다하기 때문에 4 성부는 모여서 하나의 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성가대의 찬양은 혼자만이 아닌 각기 다른 목소리가 모여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는 조화의 음악이다.
2015년 10월 26일
나는 가져온 오디오 가이드로 콜로세움을 관람했다.
콜로세움의 가이드의 대부분은 검투사에 대한 설명이었다. 로마인들은 잔인하게도 검투사의 목숨보다는 그들의 생사가 더 관심거리였다고 한다. 그리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여기에서 목숨을 잃어 갔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콜로세움 앞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선문이 있다. 그의 이야기는 매우 유명한데 전쟁에 승리를 하고 이 문을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가 되었다. 서로 상반되는 두 건물이 공존해 있는 상황이었다.
'유럽 100일 여행 中 D-72'
과거의 영광은 지나가고 흔적만이 남아있다. 오래되고 낡은 폐허와 무너지고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옛 터, 로마는 그 어느 곳보다 오랜 세월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다. 로마의 랜드마크, 콜로세움은 견뎌온 시간만으로도 많은 여행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콜로세움은 인간의 잔인함을 보여주었던 검투사 경기가 열린 곳이다.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로마 시민들의 오락거리가 되어야 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도 그곳으로 끌려가 짐승들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
한편 콜로세움 옆에는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 위치한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꿈에서 십자가를 보고 밀비우스 다리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일화는 널리 전해지고 있다. 이때를 기점으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했고 이후 로마에서는 더 이상의 기독교 박해는 일어나지 않았다. 기독교의 역사에서 콜로세움과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은 상반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신기하게도 두 건물은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11월에 접어들기 전 10월의 끝무렵임에도 불구하고 지중해의 태양은 뜨겁게 내리쬤고 아직도 많은 관광객들이 로마를 찾아오고 있었다. 콜로세움은 로마를 방문하는 유럽 여행자들이 들려야 하는 필수 코스다. 이른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콜로세움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것을 보면 로마가 가지고 있는 유적지들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 수 있다.
콜로세움 안으로 들어가면 로마 제국 시대 당시 경기장이 얼마나 정교하게 지어졌는지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오디오 가이드에서는 마치 옆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생생한 경기장의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오디오 가이드의 설명을 따라 이동을 하다 보면 나도 어느샌가 고대 로마 제국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폐허뿐인 포로 로마노의 건물들도 처음엔 그저 유적지에 불과했지만 오디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건물의 용도가 이해가 가면서 머릿속에서 원래의 형태로 복원되기 시작했다.
로마 제국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인지는 세계사를 공부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대략적으로 가늠할 수 있다. 유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로마를 알아야 할 정도로 로마 제국이 유럽에 미친 파급력은 상상 이상이다. 유럽 전역에 헬레니즘 건축 양식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지금의 유럽이 가톨릭 국가인 것도 모두 로마 제국의 영향이다. 그래서 로마는 알면 알수록 보이는 것들이 많아지는 도시다. 로마에 대한 이해가 많을수록 유적지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고 역사의 한 장면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