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is Giltburg

라흐마니노프 스페셜리스트의 쇼팽 연주 감상기

by Alfius Historographus

보리스 길트버그(Boris Giltburg) Piano RecitalBoris Giltburg


얼마 전 재미있는 피아노 독주회에 다녀왔습니다. 연주자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던 터라 그리 큰 기대가 없었는데 뜻밖에 강렬한 인상을 받아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글로 남겨보려 합니다. 전혀 진지하지도 전문적이지도 않은 내용이니 음슴체로 써 보겠습니다.



The Music


1부 - Chopin

Piano Sonata No.2 in B flat minor. Op.35

Ballade No.4 in F minor, Op.52

Scherzo No.4 in E major, Op.54


2부 - Rachmaninov

Prelude Op.32 No3, 5, 10, 12

Prelude Op. 23 No.5, 7

(연주 순서는 약간 달랐으나 편의상 Opus number로 묶음)

Piano Sonata No.2 in B flat minor, Op.36


앙코르

Kreisler: Liebesleid (Arr. Rachmaninoff for Piano)

Chopin: 12 Études, Op. 25: No. 5 in E Mi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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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한줄평: 여자 마음 다루는 법을 글로 배운 돈키호테의 카사노바 코스프레


첫 느낌: 오 이 피아노가 이렇게 예쁜 소리를?(꽤 여러 번 들어본 피아노임)


1부 총평: 연애의 기술 교과서를 통째로 씹어먹은 듯 하나의 음표도 대충 누르는 법이 없는 터치에서 페달링까지 완벽한 컨트롤을 보여줌. 특히 전혀 거슬림이 없는 섬세한 페달링이 정말 경이로움. 그러나 순간적으로 드러났다 사라지는 본질적 어색함이 감지될 때마다 언제 또 그때가 올지 조마조마하며 긴장감에 빠져듦. 무심코 꼰 다리를 다시 풀지 못한 채 끝까지 버팀.


휴식시간: 아니 이 분 오래 못 사시겠는데? 연주 한 번에 뭐 이렇게 에너지를 많이 쓰지?


2부 총평: 드디어 내 뒷목과 발끝에 잔뜩 들어간 힘이 풀리고 그도 나도 편안해짐. 역시 러시아 음악가들은 감정이 직진이라 좋아. 그래요.. 당신은 당신 스타일의 사랑을 하세요.


앙코르: 힘이 매우 많이 빠진 듯 가벼운 터치로 두 작곡가의 곡을 공평하게 하나씩 더 연주. 얼른 호텔로 돌아가 쉬고 싶은 것 같았으나 열렬한 관객 반응에 만족스러운 표정이라 다행.


표 재구매 의사: 있음. 그의 베토벤을 현장에서 듣고 싶음.


다소 희화화해서 표현했으나 콘서트 피아니스트의 정석이라 할 만한 훌륭한 연주였습니다. 이렇게 개성 강한 연주자들을 무대에서 접하는 것은 참 즐거운 경험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달 들었던 유자 왕의 연주보다도 자극적이었습니다. 오래된 숲 속의 가지들처럼 뿌리도 모른 채 얽히고설킨 잡다한 상념들을 단번에 쳐내고 음악으로 가득 채워 준 청량한 자극이었지요.

(19/10/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