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가가 쓴 한강의 노벨 문학상 축하글에서 “약자들의 편에서 문학의 존재 의의를 밝혀주기를 바란다 “는 문구를 보았습니다. 소설가가 문학에 그러하듯 역사가는 역사학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요.
역사가로서 <해리 포터>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해리가 스네이프를 다시 보게 되는 순간입니다. 연약한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는 고귀한 사랑을 보여 준 부모님은 해리에게 절대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법사 사회의 모든 이들에게도 해리는 절대사랑이 절대악을 이긴다는 명제의 살아 있는 증명이며 희망이었습니다(이 모티브는 많은 문학 작품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비슷하게 재현되지요).
모두의 관심 속에 마법학교 호그와트에 입학한 해리는 순간순간 아버지의 자취를 따라가며 아버지처럼 성장해 갑니다. 아버지는 소년 해리의 완벽한 롤모델이며 해리의 페트로누스가 아버지와 같은 수사슴이라는 점이 이를 시사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해리는 입학한 그 순간부터 악의 화신처럼 자신을 괴롭혔던 스네이프의 기억 속에서 존경하는 아버지가 학폭 가해자였음을 확인하고 혼란에 빠집니다. 이후 피해자 스네이프가 가해자의 아들에 대한 애증의 감정을 극복하고 목숨까지 버려 자신을 살리는 모습을 보며 그는 현실의 필요로 채색된 과거의 허상에서 벗어납니다. 성장한 해리는 여전히 아버지를 존경하나 절대적인 숭배가 아니라 명암이 있는 한 인간으로서의 아버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한편 자신의 아들에게 스네이프의 이름을 주고 그를 ‘내가 아는 가장 용감한 분‘으로 기억합니다.
이 이야기는 역사가에게는 과거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어떻게 현재와 더 나아가 미래를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좋은 예입니다. 역사는 다양한 관점에서 쓰일수록 좋으나 온전히 주관적 관점으로만 서술한 역사는 개인의 감정을 정당화하는 도구거나 학문의 탈을 쓴 프로파간다에 불과합니다.
2021년 푸틴이 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관계에 대한 에세이는 2024년의 미국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역사 수업’의 자료로 사용되었습니다. 학계의 누구도 그의 에세이를 제대로 된 역사서술로 인정하지 않겠지만 지금 전쟁을 수행 중인 러시아인들에게는 그들의 행위에 대한 절대적 이유를 제공합니다.
이러한 현실을 바라보며 스탈린의 전기를 쓴 역사가 Simon Sebag Montefiore는 러시아인들이 사고의 자유를 얻고 민주주의가 발전하려면 제대로 된 역사적 설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말 같지만 실천에는 때로 큰 희생이 따르는데 현재의 정치적 질서와 충돌하는 과거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역사가들은 심지어 생명의 위협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Montefiore의 작업에 도움을 준 러시아 역사가들 중 다수는 더 이상 러시아에 남아 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편한 진실, 혹은 복잡한 사실에 마주한 사람들이 다 해리처럼, 용감한 러시아 역사가들처럼 극복과 성장의 길로 나아가지는 못합니다. 때로 그 무게는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 너무 버겁습니다. 세계의 온갖 분쟁에 관여하는 영국이라는 나라에 살다 보면 가까운 이웃과 친구들 중에는 러시아인도 우크라이나인도 이스라엘인도 팔레스타인인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그들이 모두 같은 커뮤니티 안에 있어 일상에서 매일 마주치기도 합니다.
물론 전장에서 한 발자국 떨어진 이국 땅에 살고 있는 그들은 푸틴의 러시아 ‘백성’들처럼 왜곡된 지식 안에 갇혀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진실을 마주하고 객관적 시각을 갖는 일은 모두에게 어렵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 마을 공격에 분노한 이스라엘 친구에게 ‘누가 먼저 공격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야. 분노가 계속되면 이 고리는 끊어지지 않아’라고 말하지만 ‘내 친구가 거기서 죽었어’라는 답변이 돌아오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습니다. 원초적인 개인의 비극적 경험 앞에 모든 이론과 논리는 바스러져 한 줌 재가 되어 허망히 쌓입니다. 이때 ‘너의 다른 친구도 무고한 사람을 죽였잖아’라고 반박하는 것은 상황의 개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몇 년 전 클럽하우스 팔레스타인 방에 2차 대전 당시 유대인 수용소 생존자가 들어와 복수는 증오를 대물림할 뿐이며 자신을 증오의 감정에 내주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911 테러 희생자의 어머니가 그 아들을 죽인 이들을 용서하고 테러리스트의 어머니를 포옹했을 때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감명을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어려운 일을 해낸 그들에게 진정으로 경의를 표해야 함이 마땅합니다. 한편 괴로움을 정면으로 맞닥뜨리지 못하고 잠시 비켜 선 이들 또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누가 그들에게 감히 돌을 던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어떤 혼란함 속에서도 진실이 내 옆에, 뒤에, 질끈 감은 눈 바로 앞에 존재함을 알고 잠깐이라도 눈을 떠 바로 보고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인식하려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한 개인이, 사회가 나아가 우리 인류가 삶의 크고 작은 전환점들에서 그러한 노력을 계속해 나가도록 돕는 일이 역사가의 사명이고 학문으로서의 역사학이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