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어떻게 공부하면 좋을까요?

과거에 대한 예의

by Alfius Historographus

가끔 서점 앱을 열어 확인해 보면 하루 만에 읽는 세계사 등의 간단한 역사 시리즈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 듯합니다. 영상도 숏츠가 유행이고 긴 호흡의 글들은 어디서나 인기가 없는 실정에서 당연한 현상이겠지요. 돌이켜보면 책을 낼 때 편집자님께 가장 많이 들었던 당부는 쉽게, 간단하게, 짧게였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그렇게 모두가 간단하게 짧게 쉽게를 추구하다 보면 그럼 결국 모든 역사책의 내용이 같아지지 않을까요? 하긴 이 책 한 권이면 00 역사는 끝납니다. 이런 류의 광고 문구가 이미 횡행하고 있기는 하지요.


이제 지난 글에서 던졌던 우리가 역사를 읽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볼 수 있겠습니다. 길게 서술했으나 결국 질문의 답은 타인을 이해하고 나아가 친밀한 관계를 갖기 위해서입니다. 그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 책의 서문에 썼던 내용을 옮겨 보겠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개인의 역사의 집합체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야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MBTI가 매우 인기를 끌고 있지만 그 유형을 안다고 ‘나’라는 사람을 완전히 파악할 수 있을까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어디에 사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친구들과 어울리는지, 좋아하는 연예인은 누구인지 등등 ‘나’의 개성을 만들어내는 수많은 요인들의 상호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 요인들 중 단 하나만으로 나 자신의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단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한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려 해도 그렇게 다양한 측면에서의 이해가 필요한데 어떻게 몇 천년에 걸친 인류의 역사를 한 두 가지 측면으로만 파악할 수 있을까요?


또한 우리의 실질적인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대부분 명확한 인과 관계가 없습니다. 개인이 어떤 결정을 할 때에도 거기에 오직 하나의 이유만이 있는 경우는 드뭅니다. 따라서 지금의 역사학자들은 역사적 사건을 특정한 원인들에 의한 결과라고 보지 않고 사건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때로는 역사가의 설명이 너무 산만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한편 인간 자체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대중은 때로 명쾌하고 앞뒤가 딱딱 맞아 보이는 설명을 바라지만 역사가는 그러한 함정에 빠지면 안 됩니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의 의문으로 돌아가서 3시간 만에 읽는 세계사는 쓸모가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역사책이든 도움이 됩니다. 다만 재미든 통찰이든 교훈이든 정말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어떤 책이든 한 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역사가가 다양한 주제에 대해 다양한 관점으로 쓴 수많은 역사책들이 있습니다. 한 사람을 제대로 알려면 다양한 모습을 보고 많은 대화를 해야 하듯 세계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자 한다면 다양한 책을 읽고 여러 각도에서 생각을 깊이 해야 합니다.


또한 과거의 사람들은 허구의 인물들이 아님을 꼭 명심해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들처럼 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며 삶의 희로애락을 거쳐간 이들이고 누군가의 자녀였으며 지금 살고 있는 누군가의 부모, 혹은 조상일 수도 있습니다. SNS의 피드를 보다 보면 나의 진심을 누군가가 오해해서, 누군가가 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말해서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난다는 내용의 글들이 종종 눈에 띕니다.


역사 속의 인물들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존중할 필요가 없다고 함부로 단정하고 재미를 위해 사실을 왜곡하면 곤란합니다. 조회수를 올리려고 타인에 대해 과장과 허구를 섞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을 비난하면서 역사는 검증이 부족해도 재미있게 쓰면 된다고 생각하다면 앞뒤가 맞지 않지요.


물론 아무리 역사가가 사료 검증 과정을 철저히 거친다 하더라도 실수나 오판은 늘 있습니다. 루벤스의 한복 입은 남자라는 작품의 모델은 오랫동안 한국인으로 알려져 왔지만 모델의 이름이 표기된 문서가 발견되면서 그간의 연구들은 다시 수정되어야 했습니다.


최근에는 폼페이 유적의 최신 유전자 감식 결과로 기존에 한 가족으로 여겨졌던 이들이 실제로는 혈연관계가 아니라고 밝혀졌는데 이는 제한된 증거에 기반한 서사는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현실을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저는 어떤 이들이 추측하듯 드라마틱한 그림을 위해 누군가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연구의 공동저자인 고고학자 데이비드 카리멜리의 말처럼 서사에 종종 연구자들의 세계관이 담기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차피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으니 굳이 사실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위에 있습니다. 어딘가에서 가장 유사 전문가가 많은 분야가 역사학이라는 글을 본 기억이 납니다. 실제로 서점에 나와 있는 많은 역사 관련 서적 중 소위 ‘훈련된 역사가’가 쓴 책은 생각보다 드뭅니다.


물론 반드시 정식으로 교육을 받아야 역사를 쓸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과거에 실제로 존재했던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 기본적인 역사가의 자세, 즉 타인을 대하는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 최대한 많은 자료를 모아 그 안에서 검증을 통해 사실을 밝히려 노력하고, 모든 역사 서술에는 역사가 자신의 인간적 한계가 반영되어 있음을 겸허히 인정해야 합니다.


아무리 기발한 아이디어, 새로운 관점, 유려한 글솜씨로 무장한다 해도 이 토대 위가 아니면 한낱 공해에 지나지 않는 인터넷 게시판의 조회수 낚시글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예의 없는 역사가란 그저 예의 없는 한 인간일 뿐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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