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역사를 만드는가? 피해자와 생존자

형제복지원 생존자 한종선씨의 이야기

by Alfius Historographus

역사학은 변화를 다룹니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은 역사의 주제가 아닙니다. 학문뿐 아니라 개인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모두 일기장에 쓰는 사람은 없겠지요. 이를 더 확대해 보면 인간의 본성 자체는 역사학의 주제가 아닙니다.


자연적 본능에 따라 하는 행동들은 대부분 비슷한 결과에 이르고 변화를 가져오는 일이 드뭅니다. 흔히 하는 말로 역사의 주역들을 거칠게 분류하자면 짐승만도 못한 놈들과 사람이 짐승과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준 분들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인간의 등급은 이렇게 나누는 겁니다. 굳이 나누고 싶다면요.


몇 달 전 영국의 한 대학에서 형제복지원 생존자 한종선 씨의 이야기를 듣고 그가 그린 그림들을 전시하는 작은 행사가 열렸습니다. 1984년 아홉 살의 나이로 형제복지원에 들어가 1987년 복지원이 폐쇄될 때까지 3년간 수용생활을 했던 한종선 씨는 2012년 국회 앞 1인 시위를 시작으로 형제복지원의 실상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고 2014년 형제복지원피해생존자(실종자·유가족) 모임을 결성하여 진상규명과 정당한 손해배상을 위해 노력 중입니다. 그동안 그는 형제복지원의 모습을 담은 그림과 모형 제작을 계속했고 그중의 일부를 사진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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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건축물이나 사건의 모형을 만드는 이유는 기념하거나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그럼 왜 기억하고 왜 돌아보아야 할까요? 인터뷰에서 한종선 씨는 이러한 끔찍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주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피해자의 주체성이란 일어났던 일에 대해 가능한 한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폭력의 피해자들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폭력의 기억은 마치 리모컨을 켜는 것과 같이 무작위로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그 기억은 끔찍한 괴로움을 동반하므로 많은 경우 피해자들은 술과 약물에 의존하여 일어났던 일들을 잊으려고 합니다.


한종선 씨는 형제복지원 안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혼란스럽고 괴로운 기억 속에서 질서를 찾고 사실을 정확히 재구성하기 위해 많은 훈련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이는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 중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한종선 씨는 그의 모형 작업을 예술이라고 표현한 질문에 정정을 요구했습니다(물론 예술의 정의가 서로 다를 수는 있었겠습니다). 그에게 그 작업은 자신과 다른 피해 당사자들이 기억의 조각들을 서로 맞추어가며 공간과 사건들을 재현하고 그 가운데서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며 연대하기 위해, 그리고 이런 일이 다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생존자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 피해자와 생존자라는 개념이 사실상 세미나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피해자와 생존자를 한 세미나 참석자는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The victim is someone who suffered survivor is the person who won. 그는 국가 폭력의 피해자이자 형제복지원의 생존자입니다. 이 차이는 한종선 씨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요?


그는 다소 당황한 듯 자신이 승리자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가 정의한 생존자는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사람입니다. 한종선 씨는 형제복지원 안에서 정당한 대가 없이 노동하고 자신의 생존을 위해 동료 수감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현상을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고 했습니다.


인간적인 삶이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다른 사람과 공감하는 것을 포함하는데 폭력과 착취가 일상이던 형제원에서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한종선 씨는 이를 야생의 짐승과 비교하며 정상적이 된다는 것은 그러한 본성을 없애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이 치유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생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생존자의 삶의 태도는 어떤 것일까요? 놀랍게도 아니 사실 놀랍지 않게도 형제원 내에서 수감자들을 잔인하게 괴롭힌 이들은 대부분 동료 수감자들이었습니다. 조직관리의 가성비를 위해 수감자들 중에서 관리자를 선발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다른 수감자들을 통제하고 폭력을 행사했으며 사실상 직접적인 가해자였습니다. 따라서 많은 피해자들은 그들 역시 피해자로 분류되어 같은 취급을 받는 것에 거부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한종선 씨는 형제복지원에서 생활할 당시 그도 관리자가 되기를 꿈꿨다고 고백합니다. 어리고 힘이 없어 될 수 없었을 뿐 가능하다면 그도 그 자리에 서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 상황이 더 오래 지속되었다면 진짜 관리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는 자신을 착취하고 폭력을 행사했던 관리자들을 같은 피해자라고 부릅니다. 때로는 원망스럽기도 하나 그들 역시 국가 폭력의 희생자라는 사실을 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피해자와 관리자는 모두 폭력과 착취의 희생자였고 뒤틀린 가치관을 공유했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함께 빠져나오는 것, 인간다운 삶의 의미를 다시 찾고 정상적인 사회의 구성원으로 함께 나아가는 것이 그가 생각한 진정한 생존자의 의미입니다.


당시 형제복지원에 수용되었던 인원은 정확한 기록이 없으나 수천 명으로 추정됩니다. 2024년 1월까지 진실화애위가 확인한 공식적인 피해자 수는 490명입니다. 그중 몇 명이나 생존자가 될 수 있을까요? 한종선 씨는 모형 제작 작업에 더 많은 피해자들이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그들이 만든 모형이 다른 사회 구성원들에게 공개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알기 원합니다.


피해자가 피해자로 남고 방관자가 방관자로 남을 때 역사는 의미 없이 반복되고 우리에게 오늘보다 나은 내일은 없습니다. 형제복지원은 멀고 먼 과거의 사건이 아닙니다. 아직 산 자가 산 자를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뜻입니다. 너무 늦지 않게 이 일이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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