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글에서 역사학의 존재 목적을 거창하게 썼으나 이는 사실 역사학자들이 할 고민입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혹은 역사서를 읽는 독자들에게는 ‘나는 왜 역사를 읽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겠지요. 이 질문의 답은 제 책의 서문에서 이미 했던 것이니 그 내용을 발췌해서 가져와 보겠습니다. 인터넷 서점의 책 소개에는 “지피지기면 백승백전이다”라는 문구가 인용되어 있으나 실제로 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은 거의 반대의 뜻이라 한 번쯤은 해명을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왜 역사를 공부할까요? 더 구체적으로는 왜 다른 나라의 다른 시대의 역사를 공부해야 할까요? 한국 사람이면서 서양 중세사를 연구하는 역사가로서 수없이 들었던 질문입니다.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조상들의 삶은 나 자신의 삶과 맞닿아 있고 나라는 한 인간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나 몇 백 년, 혹은 몇 천 년 전에 몇 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살던 이들의 삶까지 굳이 깊이 알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 중략…
우리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좁은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100여 년 전만 해도 몇 달이 걸려 가야 했을 거리를 채 하루가 되지 않는 시간에 쉽게 갈 수 있고 세계 각국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세계의 이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은 저 지역의 상황에 영향을 줍니다. 한 예로 최근에 일어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의 난방비가 상승하였고 한국과 유럽을 오가는 여객기의 비행시간은 이전보다 2시간 늘어났습니다. 이렇게 서로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는 세계인들과 우리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까요?
갑자기 좁아진 세계에서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 중 하나는 다른 나라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이제 세계 어느 나라에 살든 서로 다른 문화권과의 접촉은 필수불가결하며 다른 나라 사람들의 과거를 아는 것은 그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우리와 다른 종교, 다른 가치관, 다른 삶의 배경을 지닌 이들의 서로 다른 삶의 방식과 태도를 낯설고 이질적인 것으로만 바라보게 되면 이해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충돌과 반목이 심해지고 서로를 경계하게 되기 쉽습니다.
이는 갈등과 여러 형태의 전쟁으로 이어지고 이러한 갈등들은 당사자들 뿐 아니라 그들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므로 평화로운 공존은 지금 지구촌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과제입니다.”
(『생각이 많은 10대를 위한 뜻깊은 세계사』 서문 중)
생략된 부분은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춘 것이니 좀 다른 말로 설명을 하겠습니다. 흔히 통용되는 말 중에 “서사를 준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아마도 “범죄자에게 서사를 주면 안 된다”라는 말을 들어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흉악한 범죄자라 하더라도 한 인간으로서 그의 과거를 알게 되면 동정심을 갖게 되고 자칫 그가 저지른 죄에 대해 무뎌질 수 있으니 경계하라는 뜻입니다.
과거를 안다는 것은 친밀하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과거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 자신이며 다음은 가족, 친구 등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가장 관대합니다. 다음은 친밀히 여기는 관계들 순입니다.
즉 과거를 알면 친밀하게 느끼게 되고 친밀하게 느끼는 대상에게 사람은 관대해집니다. 아래 사진은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 전선에서 대치중이던 독일군 병사 Werner Keil이 19세의 영국 군인이었던 Eric Rowden과 교환한 군복 단추입니다.
그날 Rowden은 일기장에 ‘밖에 나갔다가 영어를 조금 할 수 있는 독일인을 발견했다. 우리는 서로의 단추와 담배 몇 개를 교환하고 웃고 농담을 주고받았으며 그 순간 함께 전쟁을 잊었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예. 아마도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동화보다 더 동화 같은 소위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일어난 그날이었습니다. 이 기적은 비록 전쟁 중이었으나 양 진영의 병사들이 자주 접촉하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친밀하게 여기게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타인과 타국과 타 문명과 관계를 맺고 친밀해지는 경험은 모든 인류의 과제인 ‘평화로운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매우 핵심적인 방법입니다.
책은 청소년들이 대상이므로 이 정도에서 마무리했으나 오늘은 좀 더 나가 보겠습니다. 그럼 인류는 역사 속에서 친밀한 관계의 타인에게 늘 관대했을까요? 우리는 이 답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홀로코스트의 유대인들은 게토에 고립되어 모여 살던 중세 유대인들과는 달랐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서로 섞이고 섞여 심지어 본인이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조차 갖고 있지 않았던 이들의 유대인 혈통을 밝혀내어 고발한 사람들은 바로 그들의 이웃들이었습니다.
동명의 SF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는 중국의 문화 대혁명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얼떨결에 대중 앞에 끌려 나온 한 과학자를 고발하고 죄를 고백하라고 윽박지르다 구타하여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이들은 바로 그의 제자들입니다. 광기에 사로잡힌 증오 앞에 관대함이 끼어들 여유 따위는 없습니다. 이 외에도 실체 없는 이념, 본질을 망각한 종교, 그리고 모든 것에 우선하는 탐욕이 이웃을 짓밟아 집어삼킨 예는 역사에서 무수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럼 역사를 알고 과거의 이들과 이웃이 되어 내적 친밀함을 쌓아가는 과정은 과연 불필요한가요? 어차피 인류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텐데요. 물론 역사에서 후회를 가져오는 사건들은 계속 반복됩니다. 그러나 친밀감이 형성된 대상에게 저지른 잘못은 훨씬 더 깊은 후회와 반성을 낳습니다.
일부러 아유슈비츠까지 찾아가지 않더라도 워싱턴에도 런던에도 홀로코스트 기념관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최선을 다해 찾아낸 가능한 한 많은 개인들의 삶의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참혹하고 자극적인 사진이나 영상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간 그들의 삶이 얼마나 찬란했는지 그들이 얼마나 빛나는 우리의 이웃들이었는지를 알려주는 데에 훨씬 많은 공간이 할당되어 있습니다. 수많은 안네들이 그곳에서 되살아나 자신의 이야기를 해 줍니다.(물론 유대인들의 홀로코스트가 더 많이 기념되는 이유는 그뿐만은 아닙니다.)
한편 같은 시기에 같은 이유로 죽어간 유럽의 집시 즉 로마니들의 이야기는 찾기가 참 어렵습니다. 나치가 학살한 로마니들의 수는 자료가 미비하여 정확히 알기 어려우나 역사가들은 적어도 당시 유럽에 살고 있던 전체 로마니의 1/4 정도인 22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합니다. 그러나 종전 후 독일 연방 공화국은 1943년 이전에 로마니들을 상대로 시행된 모든 정책들은 범죄자들에 대한 합법적인 정책이었으며 인종적 편견에 의해 것이 아니라고 판결했습니다.
1979년 후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서독 연방 의회가 로마니에 대한 나치의 박해가 인종적인 동기에 기인한 것이라고 인정하였습니다. 나치 정권에서 피해를 입은 로마니들은 이제 국가에 보상 신청을 할 수 있게 되었으나 그 자격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사망한 다음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공존해 왔으나 힘도 없고 함께 섞여 살지도 않았던 로마니들은 유럽인들의 이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이웃이 되지 못하고 인류의 역사에서 조용히 사라져 버린 이들은 그 외에도 허다히 많습니다. 15세기 카나리아 제도 정복에서 시작된 유럽의 해외 정착민 식민지 대량학살은 가는 곳마다 되풀이되어 수많은 민족을 말살시켰고 대부분은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물론 추모와 반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나 완벽한 타자였던 이들에 대한 기억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다분히 의도적인 타자화의 작업들이 세계 곳곳의 갈등 상황에서 여전히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질문에 답을 해 보겠습니다. 역사를 읽고 과거의 이들을 친밀히 느끼며 관대함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작업은 어려우나 꼭 필요합니다. 당장 눈앞에 얻어지는 것들이 많지 않고 같은 실수가 계속 되풀이되는 과정에서도 후회가 크고 반성이 깊을수록 우리의 발걸음은 신중해질 것입니다. 이는 역사를 읽고 공부하는 이들이 얻게 되는 매우 가치 있는 유익 중 하나입니다.
(이 글은 바로 앞의 글(역사를 어떻게 공부하면 좋을까요)과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앞의 글을 내리고 다시 올릴까 하다가 이미 읽으신 분들이 계셔서 설명으로 대신합니다.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