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ante Ewer in British Museum

by Alfius Historographus

Asante Ewer in British Museum


아래 사진은 영국 박물관의 소장품인 아산테 주전자(Asante Ewer or Asante Jug, Registration number 1896,0727.1)입니다. 사진으로는 크기가 실감 나지 않지만 높이 62.3cm, 무게 18.6k에 달하는 거대한 주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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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자의 외형에 대한 묘사는 영국박물관의 설명을 그대로 가져와 보겠습니다.




구리 합금으로 만들어진 이 주전자의 전면에는 1340년에서 1405년 사이에 사용된 잉글랜드 왕가의 문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위쪽에는 왕관이 놓여 있고 양옆에는 두 마리의 사자가 문장을 받치고 서 있는 모습입니다.


주전자의 목 양쪽에는 각각 세 개씩, 총 여섯 개의 둥근 메달 장식이 있습니다. 각 메달 안에는 날개를 펼친 매가 묘사되어 있는데 주둥이에 가장 가까운 양쪽 메달의 매는 정면을 향하고 그 뒤의 나머지 네 개 메달에 있는 매들은 뒤쪽을 바라봅니다.


몸통 중앙에는 양각 띠가 둘러져 있고 그 안에는 세 줄에 걸쳐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 글자들을 아래에서 위로 읽으면 다음의 두 격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HE THAT WYL NOT SPARE WHEN HE MAY HE SHALL NOT / SPEND WHEN HE WOULD
(가질 수 있을 때 아끼지 않는 자는 원할 때 쓸 수 없으리라)


DEME THE BEST IN EVERY / DOWT TIL THE TROWTHE BE TRYID OWTE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모든 의심 가운데 최선을 택하라)


주전자에는 칠각형 뚜껑이 있는데 이 뚜껑의 각 면에는 왼쪽을 바라보고 있는 사자와 오른쪽으로 누워있는 수사슴이 새겨져 있습니다. 주둥이 부분도 왼쪽을 바라보는 사자와 원 안에서 오른쪽을 바라보는 수사슴으로 장식되었습니다. 손잡이의 끝부분은 소용돌이 모양의 네 잎 클로버 형태로 정교하게 마무리되었네요.




이 사슴은 1377-1399에 잉글랜드의 왕이었던 리처드 2세(Richard II)의 개인 문장이므로 제작 시기도 그 무렵으로 추정됩니다. 왕가의 문장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그냥 귀족의 소유물이 아니라 왕실의 의전용으로 제작되었거나 왕이 하사한 매우 귀한 물품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요.


물론 영국 박물관에 중세 잉글랜드 주전자가 있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죠. 그러나 이 주전자가 발견된 곳이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서아프리카 아산테 제국의 수도 쿠마시(Kumasi, 현재의 가나)의 왕궁이라는 점은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미스터리입니다.


20년 가까이 영국에 살며 영국 박물관을 수없이 드나들었지만 제가 이 주전자의 존재를 알게 된 때는 불과 몇 년 전입니다. 청소년을 위한 세계사 책 작업을 하며 아프리카의 역사를 넣고 싶어 자료를 찾던 중 14세기 서아프리카에서 위대한 말리 제국을 이끈 순디아타와 만사 무사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만사 무사는 이미 우리나라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비교적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는 말리 제국의 통치자였고 당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재의 가치로 환산해 보면 재산이 4,000억 달러에 이르렀다고 하지요.


독실한 이슬람 신자였던 그가 메카로 하지라 불리는 성지순례를 떠났을 때 그와 그의 일행들이 남긴 여러 이야깃거리들: 관대한 선행과 엄청난 기부, 사치스러운 소비 등은 지나는 도시마다 화제가 되었고 후대에 전해지는 전설 이 되었습니다.


일설에 따르면 그의 일행이 카이로와 메카, 메디나를 지나면서 너무 많은 양의 금이 시중에 풀리는 바람에 금값이 폭락하고 갑자기 많은 양의 금이 시중에 풀리자 금값이 폭락하였고 그에 맞춰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사태의 원인이 자신 때문임을 깨달은 만사 무사는 귀국길에 카이로의 고리대금업자로부터 높은 이자로 자신의 금을 다시 구입하여 균형을 맞추었다고 합니다. 물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의 부와 관용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는 일화일 뿐이지요.


순디아타의 서사는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킹의 줄거리와 매우 비슷합니다. 기회가 되면 다음에 다시 자세히 소개하겠습니다. 공식적인 디즈니사의 입장은 라이온 킹의 아이디어가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에서 나왔다는 것이지만 많은 이들은 심바를 보고 위대한 순디아타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만사 무사의 하지에 대한 이야기는 이슬람 세계뿐만 아니라 중세 유럽의 먼 곳까지 퍼져 말리의 명성을 널리 알렸습니다. 말리의 금과 풍요로움은 훗날의 엘도라도처럼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였고 14세기 마요르카에서 제작된 카탈루냐 지도(Catalan Atlas)에서 말리의 통치자는 금덩이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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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는 전 세계 금 공급량의 약 3분의 2가 서아프리카에서 생산되던 때였습니다. 당시 유럽의 군주들의 초상화에서 왕의 머리 주위에 황금빛 후광을 형성했던 금은 말리에서 생산되었으며 동쪽으로 진군하던 십자군이 찾던 이슬람 세계의 황금도 말리에서 나왔습니다.


이 금은 중세 시대 황금기를 맞았던 사하라 횡단 무역로를 통해 아프리카 대륙으로 건너갔습니다. 금, 소금, 노예, 직물, 상아 등 다양한 물품이 낙타의 등에 실려 사막을 건넜고, 이 과정에서 유럽의 진귀한 물품들도 아프리카 통치자에게 외교적 선물이나 교역품으로 전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 그 경로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 이 아산테 주전자도 그 경로를 통해 서아프리카로 건너왔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2024년 가을 영국 박물관과 함께 'Hew Locke: what have we here?' 전시를 기획한 아티스트 휴 로크는 이 주전자를 "유럽의 물건이 아프리카 권력의 상징이 된 거울 같은 사례"로 언급하고 이 주전자가 아산테 왕궁에서 매우 귀중한 위세품으로 여겨졌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이 유물이 세상에 다시 알려진 계기는 비극적인 역사와 맞닿아 있습니다. 19세기, '황금 해안(Gold Coast)'이라 불리던 이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려던 영제국은 아산테 제국과 1824년부터 1900년까지 총 다섯 차례에 걸쳐 전쟁을 벌였습니다.


1896년, 제4차 전쟁 당시 영국군은 수도 쿠마시를 점령하고 아산테헤네왕의 궁전을 무자비하게 약탈했습니다. 이때 수많은 황금 공예품들과 정교하게 짜인 직물들, 왕실의 상징물들과 함께 이 주전자도 영국군 장교의 손에 들어갔고, 곧 영국 박물관에 팔렸습니다. 당시 영국군은 왕궁을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하고 불을 질러 아예 페허로 만드는 만행을 저질렀지요.


이렇게 영국으로 반출된 어떤 유물들은 또 다른 수난을 맞이했는데 1874년 제3차 전쟁 이후, 아산테 왕이 전쟁 배상금으로 지불한 황금 펜던트(awisiado)는 런던의 보석상이 사들여 은쟁반 가운데 박아 완전히 새로운 제품으로 탄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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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로크는 이를 아산테의 미학을 유럽의 디자인 안에 가두고 그 본래의 기능을 완전히 무시한 채 그저 트로피로만 존재하도록 한 행위라고 평가하고 "그것을 가둘 뿐 아니라 죽여버린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합니다. 그렇지요. 실로 무지하고도 무례한 행위라고밖에 할 수 없겠습니다.


다시 개인적인 상념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만사 무사와 중세 서아프리카 교역에 대한 자료를 찾던 중, 2019년에서 2021년에 걸쳐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의 더 블록 미술관과 캐나다 토론토의 아가 칸 박물관, 워싱턴 D.C. 의 스미소니언 국립 아프리카 미술관에서 열린 '황금의 대상, 시대의 파편들: 중세 사하라 아프리카의 예술, 문화, 교역'이라는 제목의 순회 전시회 자료를 발견했습니다.


이 전시회에서는 8세기에서 16세기까지 서아프리카, 중동, 북아프리카, 유럽을 오갔던 유물들이 소개되었는데 그중에는 만사 무사가 여행하면서 가지고 다녔을 것으로 추측되는 물건들도 포함되었고 이 아산테 주전자도 전시에 참가했습니다.


전시 도록에서 이 주전자를 발견한 후 이 주전자가 원래 영국 박물관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다음에 영국 박물관을 다시 방문한 날 가장 먼저 이 주전자를 찾았습니다. 처음 유리장 안에 줄지어 있는 수많은 유물들 중 이 주전자를 발견한 순간 가슴이 뛰고 오랜 친구를 만난 양 마음이 설렜습니다. 아직도 영국 박물관에 갈 때면 꼭 들러서 아직 전시가 되고 있는지 확인합니다.


이 주전자가 앞으로도 영국 박물관에 남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사실 여기 있는 게 맞는지도 잘 모르겠네요. 최근 가나에서는 영국에 약탈당한 문화재 반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2024년 초에는 , 영국 박물관과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이 가나 아산테 왕국 국왕 오툼푸오 오세이 투투 2세와 협약을 체결한 바 있습니다.


이 협약은 1874년 제3차 영국-아산테 전쟁 당시 약탈된 32점의 왕실 황금 유물을 3년 기한의 장기 대여 형식으로 가나에 반환하는 내용입니다. 계약은 연장될 수도 있고 향후 범위가 확장될 수도 있으니 앞으로도 진행형이라고 보아야 하겠지요. 아산테 주전자 역시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야겠지만 그전까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주 만나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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