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문화 기관은 과거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by Alfius Historographus

공공의 문화 기관은 과거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Rex Whistler, 〈The Expedition in Pursuit of Rare Meats〉 in Tate Britain


지난 글에서는 과거에 창작되었거나 과거를 다루는 텍스트가 현대의 가치관과 충돌할 때, 개인이 취할 수 있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혹 지난 글을 보시지 못한 분을 위해 링크를 첨부합니다.


https://brunch.co.kr/@europeanhistory/59




오늘은 개인이 아닌 공공 기관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합니다.


모든 예술 작품은 특정한 시대적 맥락과 관점 속에서 탄생하지만, 어떤 작품들은 시대를 초월해 살아남아 새로운 가치관과 마주하게 됩니다. 지난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어떤 이미지는 제작 당시에는 별다른 문제로 인식되지 않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도 하지요.


물론 이에 대한 판단은 개인의 몫이며,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가 '공공'의 영역으로 넘어오면 상황은 훨씬 복잡해집니다.


1927년, 21세의 젊은 화가 렉스 휘슬러는 당시 테이트 갤러리(현 테이트 브리튼)의 식당 벽면을 장식하기 위해 〈희귀한 고기를 찾아 떠나는 원정(The Expedition in Pursuit of Rare Meats)〉이라는 제목의 대형 벽화를 제작했습니다.


이 공간은 오랫동안 “유럽에서 가장 재미있는 방”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미술관의 명소로 사랑받았습니다. 그러나 작품 곳곳에 담긴 제국주의 시대의 인종차별적 묘사가 재조명되면서 벽화는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휘슬러는 당시 상류층 살롱 문화에 어울리는 화려하고 이국적이며 유머러스한 광경을 구상했습니다. 식당이라는 공간의 목적에 걸맞게, 기이하고 색다른 음식을 찾아 세계를 여행하는 원정대의 모험이 벽화의 주요 서사입니다.


whis.jpeg


화면은 상상 속의 풍경과 과장된 인물들로 가득 차 있으며, '희귀한 고기'를 찾아 세계를 탐험한다는 설정 자체는 무척 흥미로운 상상력의 산물입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이 모험담을 시각화하는 방식에 있었습니다.


그림 속 원정대는 겁에 질린 흑인 소년을 마치 포획한 사냥감처럼 묶어 끌고 갑니다. 나무 위에는 원정대가 아닌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하는데, 벽화 완성 후 휘슬러와 그의 후원자였던 소설가 이디스 올리비에가 작성한 팸플릿을 통해 이 인물이 소년의 어머니임이 밝혀졌습니다.


TELEMMGLPICT000000286294077_trans_NvBQzQNjv4BqT_NgP97hmQeg1nYBfQfCkuGnVBMSy4IVQjJ4_UKHEV4.jpeg


TATE-MURAL-05-gtfj-articleLarge.jpeg



이 작품에서 흑인 아동이 노예처럼 묶인 채 끌려가는 모습, 흑인 여성이 영장류처럼 기이하게 묘사된 장면, 그리고 동양인이 희화화되어 등장하는 장면들은 화면 전체의 구성 속에서 매우 자연스럽게 어우러집니다. 사실상 제국주의적 상상력을 배경으로 삼아 유럽인 탐험가가 이국적 세계를 횡단하며 자원과 타자를 ‘수집’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img-7148_orig.jpeg


이러한 불편한 지점은 몇몇 관람객과 직원들에게 지속적으로 지적받아 왔지만 결정적인 전환점은 2020년 미국에서 조지 플로이드라는 흑인 청년의 사망 사건을 계기로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부터입니다.


브리스톨에서 노예무역상 에드워드 콜스턴의 동상이 철거된 것도 바로 이 시기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서구의 문화 기관들은 소장품에 내재된 인종차별적 이미지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기 시작했고, 테이트 브리튼 역시 이 벽화를 더 이상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미술관 윤리위원회는 해당 벽화가 인종차별적 유산을 일상적 공간 속에서 무비판적으로 소비하게 만든다는 점을 중대한 문제로 지적했고 레스토랑은 영구 폐쇄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전시 조정을 넘어 공공기관이 과거의 유산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정책적 결단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결정은 일각에서는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보수적 문화비평 매체인 'History Reclaimed' 등은 이를 현대 사회의 폭력적인 '취소 문화(cancel culture)' 사례로 규정하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크게 네 가지 축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첫째, 사실상의 검열이며 관객의 자율적 판단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점.

둘째, 관객을 스스로 사고할 능력이 없는 존재로 간주하는 '유아화(infantilisation)'라는 점.

셋째, 휘슬러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인물이라는 점을 들어, 역사적 영웅을 한 면으로만 평가하여 일방적으로 단죄하는 부당한 처사라는 점.

넷째, 열린 사회는 불쾌한 표현까지도 감수함으로써 유지된다는 고전적 자유주의 원칙을 훼손한다는 점.


이러한 비판은 표현의 자유와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전통적 가치에 근거하고 있으며, 공공기관의 과도한 이념적 개입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성을 경고한다는 점에서 분명 경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테이트 브리튼은 이 작품을 단순히 검열하고 철거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덮지 않았습니다. 미술관은 작품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대신 어둡게 처리된 공간 안에 두고 관련된 영상과 해설을 배치하는 '적극적 재맥락화(active re-contextualisation)' 전략을 택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1980년대 영국 흑인 예술 운동을 이끈 'BLK Art Group'의 공동 창립자이자 예술가인 키스 파이퍼가 있었습니다.


파이퍼가 제작한 영상물〈Viva Voce〉속에서 휘슬러는 가상의 흑인 여성 교수에게 지속적인 질문을 받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이 설정은 작가를 단죄하기 위한 일방적인 재판이 아니라, 역사적 이미지를 어떻게 비판적으로 읽어낼 것인가 하는 과정 자체를 무대 위에 올리려는 연극적 장치입니다. 학위 심사를 위한 구술시험을 경험해 보신 분들은 좀 더 직관적인 상상이 가능할 것입니다.


파이퍼는 인터뷰에서 "작품 그 자체보다 그것을 둘러싼 대화가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라고 강조합니다. 그의 목표는 휘슬러를 역사에서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역사의 맥락 속으로 다시 위치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즉, 작품을 보존하되 그 의미를 고정하지 않고 치열한 비판적 질문의 장으로 전환한 것입니다.


이 질문의 장은 관객에게 단 하나의 해석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이 영상의 각본을 쓴 작가 재클린 맬컴은 휘슬러 개인을 단순한 인종차별주의자로 규정하는 데 신중한 태도를 보입니다. 그는 당시 영국 사회가 구조적으로 인종차별적이 일상화되어 있다고 간주하고 휘슬러가 오히려 그림을 통해 당대 상류층의 위선을 풍자하려 했을 가능성까지 제기합니다.


반면, 파이퍼는 작가의 내심과 무관하게 작품 자체가 분명히 인종차별적 이미지를 생산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같은 해에 제작된 스탠리 스펜서나 제이콥 엡스틴 등의 다른 예술가들은 흑인들을 초월적 서사의 주체로, 위엄과 품격을 갖춘 인물로 형상화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 시대에는 다 그랬다”는 설명만으로는 면죄부가 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파이퍼 역시 휘슬러가 생애 후기에 혼혈 아동을 따뜻하게 그린 초상화를 남겼다는 점을 언급하며 개인의 변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작품은 인종차별적일지라도, 작가라는 한 인간을 완전히 고정된 존재로 규정하기는 어렵다"는 그의 말은 이 논의의 입체성을 잘 보여줍니다.


결국 테이트의 선택은 작품을 완전히 파괴하지도, 아무런 설명 없이 묵인하지도 않는 제3의 길이었습니다. 문제의 벽화를 역사적 유물로 남겨두되, 그것을 둘러싼 비판적 대화를 미술관이라는 제도의 내부로 적극 끌어들인 것입니다.


이 접근이 모든 갈등을 잠재우는 완벽한 해답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오늘날 미술관은 더 이상 가치중립적인 저장 공간으로만 머물 수 없다는 점입니다. 어떤 이미지를 보존하고 어떻게 보여 줄 것인지 결정하는 일은 필연적으로 고도의 윤리적 가치 판단을 수반하며, 그 판단은 사회적 논쟁 속에서 앞으로도 끊임없이 재검토될 것입니다.


그러면 공공기관의 가치 판단은 어떤 기준에 의거해야 할까요? 물론 정답은 없겠으나 과거의 수많은 예술품 중 유독 이 벽화가 오늘날 이토록 거센 논란과 특별한 불편함을 야기한 이유에서 실마리를 찾아보려 합니다.


사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유물이나 중세 종교 미술을 보더라도 노예제나 억압적인 계급 위계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작품들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심각하게 불쾌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습니다. 물론 전혀 아니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요.


결정적인 차이는 과거의 그 폭력적 체계가 '현대 사회의 제도적 기반으로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고대의 노예제나 신분제는 법적, 제도적으로 이미 종식되었으므로 관람자는 압도적인 시간적 간극 덕분에 고대 미술 속 차별 요소를 일상과 단절된 '과거의 세계관'으로 분리하여 인식할 수 있습니다.


반면, 대서양 노예무역과 식민주의에 뿌리를 둔 인종 간의 위계는 사정이 다릅니다. 영국의 식민지 체제는 불과 1960년대까지 공식적으로 존속했으며,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증명하듯 흑인에 대한 차별 문제는 단절된 과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는 '현재 진행형'의 폭력입니다.


따라서 근현대의 작품 속에서 특정 인종을 동물화 하거나 희화화하는 이미지는 결코 무해한 역사적 묘사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매일같이 차별을 겪는 이들에게 실재하는 사회적 상처를 덧내는 살아있는 표상으로 기능합니다.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과거의 농담이나 관습이었던 사실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현재의 생생한 아픔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저는 미술관이나 박물관과 같은 공공 문화 공간이 단순히 과거의 유물을 보존·전시하는 장소에 머무르기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역할을 확장해 가기를 기대합니다. 불편하거나 논쟁적인 과거를 숨기는 대신 그것이 오늘날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차분히 설명하고 토론의 장을 열어 두는 태도는 공공기관의 신뢰를 높이는 자산입니다. 공공의 공간이 이러한 대화를 가능하게 할 때, 비로소 다양성이 교차하는 현대 사회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자산인 ‘공감의 역량’을 길러내는 토양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 공감의 토대 위에서, 우리 사회의 구성원 누구라도 그곳이 안전하고 존중받는 곳이라는 인식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공공의 문화기관이 과거의 무거운 유산을 단지 보존할 뿐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성찰의 자원으로 삼아, 끊임없이 사유하고 모색하는 열린 공간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사극과 문학, 역사는 어떻게 연결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