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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츠뎀 Jul 11. 2020

조직은 절대 개인을 배려하지 않는다

공무원 인사는 왜 합리적이지 않은가?

마침내 상반기 인사발령이 끝났다. 언제나처럼 극소수의 직원들만 승진을 했고 이번 인사도 참사에 가까웠다. 합리적 인사의 대원칙, 이른바 '신상필벌'의 원칙은 이번에도 대체로 지켜지지 않았다. 공무원 정기인사라면 1년에 두 번 상하반기에 실시되는 정기인사를 말한다. 그러니까 이번 7. 1. 자 인사는 지난 상반기 근무평정을 토대로 이루어진 정기인사를 말한다. 인사의 주요 내용은 승진인사와 전보 발령이다.


우리 기관의 경우, 상반기에 조직의 명운이 걸린 대사 즉, 21대 총선이라는 '선거'가 핵심과업이었으니  이에 대한 성과를 바탕으로 인사가 이루어졌어야 하지 않을까? 엄청난 압박과 긴장 속에서 주어진 업무를 문제없이 처리하고 이행한 직원들에게는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 문제에는 책임을 성과에는 보상을! 선거라는 긴박한 시기에도 자신의 일을 방기 하거나 동료 직원에게 떠넘기거나 제대로 소화해 내지 못했다면

그에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 '신상필벌'의 원칙이 인사의 핵심이자 본질이요 근간이 되어야 한다.  



인사의 대원칙은 '신상필벌'

그러나 현실을 어떠한가? 대부분 공무원 조직의 승진인사는 철저히 연공서열에 따른다. 특히 6급 이하 하위직에서는 오로지 근무연수가 승진의 절대적 기준이다.  공무원 입사 연도만 빠르면 순서대로 승진시켜준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기 자리에서 적극적으로 일처리를 하고 성과를 낼 유인이 없다. 아무리 인사혁신처에서 적극 행정을 강조하고, 적극행정을 실천하는 공무원에게는 연공이나 직급을 따지지 않고 승진시키겠다고 말해도 이는 말뿐이지 실제는 그렇지 않다. 적극행정에 대한 보상으로 연공과 직급 무관하게 성과에 따라 승진시키겠다고 배정된 인원도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오직 오래 다닌 직원이 순서가 되면 먼저 승진할 뿐이다.


내가 근무하는 기관의 경우, 중앙이나 시도를 제외한 일선 구시군 조직에서는 보직에 따라 평정순위가 결정되는 경향을 보인다. 우리 기관의 경우 직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주무관들의 주요 보직은 크게 선거, 지도, 회계, 홍보의 4개 보직이다. 선거가 없는 평상시에는 지자체나 정치인들의 선거법 질의를 처리해야 하는 지도 주무관이나 부서의 기본 출납업무를 담당하는 회계  주무관 쪽이 일이 많다. 선거 때가 되면 당연히 선거 주무관과 회계 주무관, 그리고 홍보 주무관의 업무도 폭증한다.


그런데 부서장이 평가하는 근무평정에서는 대개 선거 주무관이 가장 높은 평정을 받는다. 우리 조직의 명칭이 '선거'관리위원회여서 그런가? 그다음은 지도이고 마지막이 통상 회계나 홍보가 된다. 왜 늘 선거 주무관 보직을 맡은 직원이 근무평정에서 최고점을 받는 거지? 4~5명의 주무관들이 함께 근무하는 구시군 조직에서 한번 최하위 평정을 받으면 전체 시도 차원에서는 승진 순위는 20~30 밖으로 밀려나 버린다. 이런 상황에서는 다들 선거나 지도 주무관 보직을 맡으려고 하고, 회계나 홍보 주무관 보직은 기피한다. 왜냐하면 근무평정에서 좋은 평정을 받는 보직을 맡으려고 하는 게 당연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사람이 계속해서 같은 보직을 3년 연속 맡을 수 없는 '순환보직제'가 도입되었다. 하지만 실제에서 이 순환보직의 원칙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 부서 내에 근속연수가 높은 선배 직원이 있으면 대개 선거 주무관 보직을 준다. 문제는 승진이 적체되면서 한 사람이 같은 보직을 계속해서 맡게 되고 다른 직원들에게는 순환보직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부서 내에서 최 선임 직원이 승진해서 나갈 때까지는 평정을 좋게 주는 보직은 다른 사람들이 새로 맡을 수  없다.


따라서 인사이동이 있으며 위원회에 따라서는 이 보직 문제로 때로는 직원들 간에 심한 갈등이 일어나기도 한다. 다들 평정을 낮게 주는 회계나 홍보 주무관 보직은 맡지 않으려 하고, 같은 보직을 몇 해째 계속해야만 하는 직원들의 불만은 쌓여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사이동으로 보직을 정할 때 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대부분 결여되어 있다. 심지어 당사자가 휴가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부서장과 담당 계장이 자의적으로 보직을 정하는 경우도 숱하게 일어난다. 평소에는 쌍방향 소통과 민주적 의견수렴을 외치지만 정작 그 요소가 절실하게 필요한 인사와 보직 문제에서는 당사자의 의사를 충분히 배려하지 않는 하향식 의사결정이 자의적으로 자행된다.  그런 경험을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업무 의욕은 심각하게 저하되고 조직에 대한 실망과 좌절감은 점점 커져간다. 급기야는 이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 같은 조건이라면 상급위원회 경력이 절대적으로 승진에 유리하다.  중앙이나 시도 같은 상급위원회는 업무도 세분화되어 있어서 한 개인이 담당해야 하는 업무가 그리 복잡하지도 않고 업무량 자체도 크지 않다. 또 중앙이나 시도는 선거 때가 되어도 직접적으로 선거를 치르지 않는다. 선거는 관할 선거구 별로 대통령 선거와 비례 국회의원 선거는 중앙위원회가, 시도지사 선거나 비례 시도의원 선거만 시도 위원회에서 관할한다. 그리고 선거관리 업무의 핵심이라 할 투표 관리, 개표 관리 업무는 모두 일선 구시군위원회의 업무다. 후보자 수가 많은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나 지역구 지방의원 선거, 기초단체장 선거도 모두 일선 구시군 위원회의 몫이다. 그러므로 직접적인 소관부서가 아니면 상급위원회의 경우에는 선거 때에도 각 부서의 고유업무를 담당할 뿐이다.





소는 누가 키우나?

 이런 상황에서 다른 조건이 같다면, 일선 구시군 위원회보다는 상급 위원회가 일도 적고 편한데 승진에는 유리하다. 일선 현장에서 힘겹게 민원인들 상대하면서 선거 치러봐야 승진도 안되고 인정도 못 받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이 모순은 탈-구시군, 구시군 엑소더스로 귀착된다. 요즘엔 신규직원들도 사전에 정보를 공유하고 우리 조직의 이런 모순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어 영악하게 행동한다. 그래서 입사한 지 불과 1~2년도 안된 신규직원들이 열심히 시도나 중앙 등 상급위원회 진출을 위해 전입시험에 몰두한다. 모두들 힘들게 일선에서 선거를 치르기보다는 상급기관에서 세분화된 자기 고유업무만 담당하면서 평정에서도 유리한 가점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 경향이 심해지면 일선에서 선거는 누가 할까? 일선에서 소는 누가 키울까?


2021년도 서울, 부산, 경기는 보궐선거가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인규의 절반이 이 지역에 살고 있기에 사실상 전국 규모의 선거와 다를 바 없다. 게다가 2022년에는 지방선거와 대통령 선거까지 동시에 치러야 한다. 일선 조직의 소규모 인원으로는 지방선거도 치르기 버겁고 힘겨운데 대통령 선거까지 동시에 치러야 하는 부담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업무는 날로 많아지고 선거관리 절차는 날로 복잡해지고 일선 조직에서 신경 날카로워진 직원들과 힘들게 선거관리 업무를 묵묵히 수행해도 그에 합당한 보장과 배려가 인사를 통해 반영되지 않는다면 일선 직원들의 박탈감은 커질 것이다. 담당업무의 편의성에 더해 승진과 인사상 유리함까지 상급 기관에 집중된다면 직원들의 탈 일선화 경향은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그 끝에는 몸과 다리, 몸통은 부실하고 머리만 비대한 가분수적인 기이한 조직이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이유이다.





조직은 개인을 배려하지 않는 조직 나름의 조직원리를 따르기 쉽다.  그러나 세계 유수의 혁신 기업과 조직의 사례를 통해 보더라도 조직 구성원의 니즈와 창의성을 무시하고 혁신과 성장에 성공한 사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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