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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츠뎀 Nov 16. 2023

2022년 6월 1일의 이별

왜 이별은 그날 시작되었나



2022년 6월 1일 새벽 4시 반. 밤새 잠을 설치던 나는 호텔을 나서며 끝내 이별을 예감했다.

사실 잠을 자기 위해 어제 이 호텔을 찾은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단지 서너 시간의 휴식과 시원한 샤워를 위해 이곳을 찾은 것인지도 모른다.  

호텔에서 10분 거리 사무실까지 이어지는 좁고 어두운 골목을 걸으며 나는 많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문득 이 순간, 분명히  다가온 이별의 순간을 기록하여 기억하고 싶었다.



내 삶에서 이토록 선명하게 다가온 이별을 나 스스로 예감하고, 수긍한 적이 있었던가?

이 결별과 단절의 시간을 이토록 분명하게 인지하고 목격한 순간이 일찍이 있었던가?

핸드폰을 꺼내 하늘로 이어지는 골목을 찍었다.

전깃줄로 뒤엉킨 하늘을 배경으로 앞으로 다가올 어떤 전조처럼 아침놀(서광)이 어렴풋이 번지고 있었다.

얼굴에 부딪는 초여름 새벽바람은 아직은 차가웠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미 다가온 이 이별 앞에서 내 마음은 가볍고 홀가분했다.  


그렇게 나는 이미 다가온 이별을 받아들였다.

그것은 어쩌면 내가 이미 진작부터 바라던 바였는지도 모른다.

사무실 보안시스템 세콤을 해제하고 전원스위치를 올려 

그때까지도 사무실 구석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어둠을 쫓아냈다.


2022년 6월 1일 새벽




2022년 6월 1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지던 날, 

그날은 내가 이 이별을 분명하게 자각한 날이지만,

그러나 이 이별은 이미 몇 달 전에 예고되었다.

내가 처음 이 관계가 한계에 도달했음을 온몸으로 느낀 때가 바로 그로부터 세 달 전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나는 내가 선택했던 이 일터에서 의미를 찾기가 더 이상 어려울 것임을

서서히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점은 2022년 3월 5일 우리나라 스무 번째 대통령 선거를 위한 사전투표가 있던 날,

나는 이제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함을 직감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바로 그 문제의 사전투표 대란이 있던 날,

사전투표소에서 걸려오는 투표관리관들의 아우성과 절규, 욕설과 비난,

고성과 분노, 울부짖음과 긴박한 항의들을 전화기 너머로 들으며,

나는 결국 우려하던 사태가 끝내 터졌음을 직감했다.




코로나 감염병이 절정이던 시점에 급박하게 결정된 사상 초유의 코로나 확진자 투표 실시,

제대로 준비할 시간과 여건도 갖추지 않은 채 졸속으로 시행된 코로나 확진자 투표!

투표소의 오염을 우려해 확진자들은 별도로 설치된 투표소 밖 임시 기표소에서 투표하도록

결정한 정규 투표시간 이후 코로나 확진자 투표

예측한 인원보다 훨씬 많은 확진자들이,

정해진 시간보다 더 일찍  전국 각지의 사전투표소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이들을 통제할 안내요원과 투표사무원은 턱없이 부족했고, 투표소 상황은 열악했다.

지침은 불분명했고, 현실과 괴리되어 있었고, 시의적절하지 못했다.

코로나 확진자 투표 절차는 모호했고, 복잡했고, 부적절했다.

애초에 정확한 예측과 현장의 의견을 반영한 대책이 부재했었다.


투표소 내부가 아닌 외부에 설치된 임시기표소에서 투표한 뒤,

투표사무원에게 기표한 투표지를 전달하여 투표함에 투입하게 하는 투표 방식은 

대리투표, 간접투표의 의혹을 불러왔다.

기표한 투표지를 투표함에 유권자가 직접 넣지 않고 전달하는 방식은

비밀투표의 원칙이 침해될 우려가 높았고, 공개투표로 귀결될 위험이 있었다.

이후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결국, 허술한 준비와 이해할 수 없는 투표절차에 많은 시민들은 분노했고

구름처럼 몰려든 코로나 확진자들을 소수의 투표사무원은 통제할 수 없었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기표한 투표지가 급기야 소쿠리에 담겨 운반되었다.

이른바 '소쿠리 투표'의 탄생이었다.

50여 년간 쌓아온 선관위의 신뢰는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추운 날씨에 투표소 밖에서 오랜 시간 기다리던 선량한 시민들의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냈고 그 분노는 현장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투표사무원들을 겨냥했다.

분노한 일부 유권자들은, 코로나 감염병 확진자인 유권자들은 투표사무원과 투표도우미들에게

욕설과 고함을 퍼붓고, 얼굴에 침을 뱉기도 했다.

적지 않은 유권자들이 투표를 포기하고 그냥 되돌아가기도 했다.

방호복도 입지 못한 채 그대로 확진자들과 접촉해야 했던 투표사무원들과 이들을 돕던 주민센터 공무원들 대다수가 이후 코로나에 감염되었다. 

그리고 그 여파로 다시 그들의 가족들이 감염되고...


투표소와 선관위 간 비상연락망으로, 사무실 전화와 개인 휴대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사전투표 담당자인 내게 사전투표소의 절박한 상황이 긴박하게 전해졌다.

그러나 거의 울부짖으며, 악을 쓰듯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투표관리관, 투표사무원, 주민센터 직원들의 분노에 찬 호소에

나는 아무런 대응을 할 수 없었다.

확진자들도 투표소 내에서 투표할 수 있도록 신속히 지침을 변경해 줄 것을

상급기관에 비상연락망을 통해 반복적으로 요청하는 것 외에는.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났다.

마침내 이른바 '골든 타임'이 지나 너무 늦게 지침이 변경되었다.

코로나 확진자도 일반 유권자와 마찬가지로 투표소 내부에서 투표하도록 허용하는 것으로!

전대미문의 코로나 확진자 투표는 그렇게 끝났고 많은 이들에게 깊은 상처와 후유증을 남겼다.


이후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선관위의 사전투표 부실관리와 부정선거 의혹, '소쿠리 투표' 참사를 자극적으로, 

선정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수십 년 간, 어렵게 아 온 선관위의 신뢰도가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렸다.

결국 선관위 위원장과 사무총장이 사퇴했고 선거 정책을 담당하던 일부 간부들도 책임을 져야 했다.

 


사전투표가 끝난 다음 날,

나는 구청 직원의 항의 전화를 받다가 결국 감정적으로 '완전히 붕괴'되었다.

죄송하고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다 끝내 울음이 터져 나와 버렸다.

그리고 그 오열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마음속에 오래 쌓인 응어리 마냥 그 오열은 한동안 지속됐다.

수화기 너머의 구청 직원도 더 이상 항의와 비난을 할 수 없었고

결국, 우린 통화를 이어가지 못했다.



Photo by Laurenz Kleinheider on Unsplash



왜 그날의 오열은 쉽게 멈추지 않았던가? 

무엇에 내 목에 차올랐던가?

상처 입은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끊임없이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모멸감 때문이었을까?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 때문이었을까?

목구멍을 막고 있는 듯한 코로나 감염 증세 때문이었을까?

선관위 직원을 대신해 투표소에서 직접 확진자 사이를 방호복도 없이 뛰어다니던

주민센터 직원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사전투표 이전부터 진작 몸에 쌓인 피곤과 졸음 때문이었을까?

평소 통화할 때 상냥하던 주민센터 직원마저도 완전히 다른 사람들처럼 악에 바친 목소리로 

욕을 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던 걸까?


그날의 오열에 대한 정확한 이유를 이제 나는 안다.

우선 그것은 한 동안 잊고 있던 분노였다. 

한때 내 열정과 보람의 근거지였던 소중한 일터의 의미가 한순간에 무너지던 그날,

나는 이 일터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위해 머뭇거려야 했고,

분노해야 했던 것이다.



"분노는 현재에 대한 총체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분노의 전제는 현재 속에서 중단하며 잠시 멈춰 선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분노는 짜증과 구별된다. 

분노는 어떤 상황을 중단시키고 새로운 상황이 시작되도록 만들 수 있는 능력이다."

- 한병철, <피로사회> 



이후 '소쿠리 투표'라는 멸칭으로 규정된 사전투표 사태는 단순히 코로나 확진자 예측의 실패에서 기인한 

우발적인 돌발사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현장과 괴리된 지침, 일선 행정 담당자들의 의견과 요청을 무시하는 관행, 

안일한 대책과 느린 판단, 변화된 환경과 대외적 요구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경직된 의사결정 구조등에서 기인한 필연적인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요약해서 사전투표 사태는 내가 그동안 몸 담았던 조직 선관위 역시 그 일부를 이루는

조직의 구조적 모순, 소위 '관료제의 모순'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그날 나는 뜨거운 오열 속에서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그 어떤 '단절'을 체험했다.

그리고 분명 그것은 또 하나의 이별을 예고하고 있었다.

이제 나는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물론 그 '이별'은 단지 그날 촉발된 것이지

이 '이별'의 근거들은 이미 오래전에 서서히 스며들고 있었을 것이다.

단지 그날의 분노와 무기력함만이 이 이별의 이유는 아닐 것이다.



사상 유례없는, 전대미문의 코로나 확진자 사전투표 사태와

그에 대해 어설프게 책임을 묻는 방식과 구태의연하게 책임지는 방식,

엉뚱한 대책을 마련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 누구보다 많은 애정과 열정을 가슴에 품고 일했던 이곳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했던 이 조직의 몰락과 붕괴가 여기가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되었음을 예감하며...


아무리 애정하고 진심이었으나, 변화의 가능성은 닫힌 관계 속에서,

아무리 편안하고 안정적이지만, 본래의 '나'를 찾기는 너무나 요원한 공간 속에서,

내가 가진 순수한 의지의 힘으로 내릴 수 있는 결단은 하나이기에.

이 '이별'을 받아들이고, 준비하고 긍정하는 것이기에,  


이제 나는,

그 모든 '만남'보다 더 소중한 이 '이별'의 시작에 대해.

이 이별을 낳은 '모순들'에 대해 소란스럽지 않게 이야기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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