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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츠뎀 May 24. 2024

요즘 나는 회사 가기가 부끄럽다

이 부끄러움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요즘 나는 회사 가기가 참 부끄럽다. 사실 요즘이 아라 이런 감정이 든 게 꽤 오래전부터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일반 기업이나 회사가 아니라 공무원 조직이다. 즉, 국가기관이다. 그래도 나는 공무원이나 국가기관보다는 그냥 '회사'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자기 여가 시간과 노동을 팔아 보수를 얻는다는 점에서 회사원이나 공무원은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신분적 제약과 종속의 정도는 다르지만.



아무튼, 요즘 나는 '회사' 가기가 몹시 부끄럽다.  

이 부끄러움의 근원은 연일 방송과 지면을 통해 터져 나오는 우리 '회사'의 비리와 부패 때문이 아니다.

우리 회사의  고위 간부들 다수가 채용비리와 인사비리로 검찰에 고발됐기 때문도 아니다.  

지난 10여 년간 고위 간부들의 자제분들을 특혜채용하기 위해 공정한 채용절차를 무시하고, 서류를 조작했기  때문도  아니다. 비리를 감추기 위해 우리 회사 인사담당자들이 간부들의 지시에 의해 관련 서류를 폐기하고, 변조했기 때문도 아니다. 우리 회사가 그동안 겉으로는 헌법상의 독립기관이라고 으스대며 뒤로는 '아빠 찬스'와 방만한 운영으로 '적폐기관'으로 전락해서도 아니다.



내가 요즘 회사 다니기가 너무나 부끄러운  이유은 바로 이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분들이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아서다.

그렇다. 아무리 많은 비리와 잘못을 저질렀어도, 아무리 많은 적폐와 꼼수, 편법과 불법을 저질렀어도 그분들은 대체로 부끄러움을 모르고 안녕하다. 고위 간부님들은 자신들의  비리가 드러나기 전에 무사히 퇴직하셔서  고액 연금 따박따박 받으시면서 잘 지내신다. 그들이 편법으로 채용하고 꽂아 준 이른바 '세자들'은 우리 회사에 너무 만족하며 열심히 생활한다. 너무 편안하고 즐거워 부끄러울  틈이 없다.

그동안 회사의 고위 간부들 눈치 보며, 그들이 시키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따랐던  인사담당자들이나 그들의 비리를 알고도 묵인해 주 감사부서 담당자들도 이  사태가 얼른 가라앉길 고대하며 엎드려 있을 뿐이다. 그동안 못했던 동호회 활동이나 체육활동을 하면서 이 마뜩잖은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부끄럽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분들을 회사  간부로 모시고 아직도 더 몇 년을 근무해야 하나 생각하니 막막하다.

자신들이 우리 회사의 신뢰도와 이미지에 먹칠을 했는지도 모른 채,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고 마냥

행복한 '세자분'들과 동료로  지내야 한다는 게 너무 부끄럽다. 이분들의 뻔뻔함과 의기양양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되기도 한다. 오다가다 만나면 이분들의 당당한 모습 앞에서  나는 또 얼마나 부끄러워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렇다.  

나는 아무리 큰 비리가 터져도 도무지 아무런 반성과 책임도 없는 이 회사에 다닌다는 게 너무 부끄럽다.

만성적 부조리와 관행적인 불법행위에도 아무런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는 태연함과 온화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지난 10여 년간 자행된 수많은 탈법과  부조리에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이 무도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한나 아렌트


나는 우리 회사의 고위 간부들과  그들의 비리를 눈감아 준 우리 회사의 감사 부서, 인사부서의 태연함은 반성적 사유의 결핍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일찍이 독일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으로 포착한 선한 사람들의 생각 없음에 대해 생각해 볼 때이다. 그는 유대인 집단학실이라는 나치의 명령을 묵묵히, 성실하게 수행한 하급 관리, 하급 장교들의 성실함과 반성 없는 사유 가장 해악이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아렌트는 우리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온화한 성품의 이웃사촌이 어떻게 인종청소라는 반인류적 범죄를 적극적으로 수행한 '괴물'이 되었는지, 그 범죄로 기소되어 법정에 나온 이후에도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자신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항변할 수 있었는지에 답을 그들은 '반성 없는 사유'에서 찾았다.





나는 그간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위해 서슴없이 비리를 저지르고 그 비리를 은폐하고, 그 비리에 동조한 우리 회사의 고위 간부들과 인사, 감사 담당자들의 무책임의 이유를 자신들의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낄 줄 모르는 무감각에서 찾는다. 자신들의  잘못애 부끄러움을 못 느끼니 책임질 생각도 못한다, 그러므로 변할 생각도  없다. 그래서 나는 나와 같은 '회사'를 다니는 그분들의 무감각이 너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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