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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세희 May 12. 2020

불편한 현실의 경계선, <인간수업>

드라마 인간수업 리뷰


 찾아보면 생각보다 이런 경우가 많다. 로맨스물이나 코미디 장르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매니악한 장르에 열광하던 사람이 나이를 먹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현실과 동떨어진 해피엔딩을 자꾸 찾게 되더라 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세상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경험하다보면 피로감이 축적된다. 우리는 창작물을 통해 그런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어하는 욕망을 그려낸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나레이션으로 막을 내리는 세상 속에 자신을 이입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런 우리의 욕망 속에 감춰진 그 실체를 온 세상에 적나라하게 밝히고 싶어하는 당돌한 작품도 있다. <인간수업>은 해피엔딩을 꿈꾸기에는 너무나 지독한 현실 속에서 자기파멸로 향하는 청소년의 온상을 담아내고 있다.

   

 세계적인 OTT 서비스의 대표주자 넷플릭스는 이전부터 <농염주의보>, <킹덤> 등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공하는 현지화 전략을 펼쳐 다른 스트리밍 서비스와 차별성을 두었다. <인간수업> 또한 현지화 전략에 따른 오리지널 콘텐츠 중 하나이다. 하이틴이면서 범죄 장르라는 점에서 <루머의 루머의 루머>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다만, <루머의 루머의 루머> 청소년 사이 일어나는 집단 린치와 불링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극도의 현실성을 부각시켰다면 <인간수업>은 그와는 조금 결이 다르다. 청소년의 성매매를 주제로 하고 있지만 극 중 주인공들은 현실에 쫓겨 도망가기만 할 뿐, 자신들이 벌인 일에 대한 죄의식을 가진다거나 후회하는 모습 등의 연출은 찾아보기 어렵다.


  

 청소년의 성매매를 주제로 하고 있는 만큼, 이런 주제를 다루는 부분에 대한 비판의 시선도 많다. 최근 들어 'N번방 사건'이 전국적으로 이슈화가 되면서 시기 상 적절하지 않은 작품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특히 주인공인 오지수의 캐릭터성이 문제가 되고 있다. 국내 최상위권 대학 진학을 준비 중인 우수하고 조용한 모범생 이미지를 가졌으면서 동시에 성매매 알선 사업을 하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범죄자 미화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시즌 1을 모두 감상한 나의 입장은 이 드라마가 범죄를 특수한 소재 정도로 여기고 가볍게 접근하고 있지는 않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에 대한 비판의 의견은 필요하며 현시점에서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는 부분인 만큼 해당 범죄를 다루는 것이 단순히 작품 내 장르성을 가늠하는 척도로 이용되는 것을 경계해야한다는 의견에는 공감하는 바이다. 하지만 <인간수업>의 작품성이 인정받을 수 있는 이유는, 극 중 흐름이 권선징악의 형태나 교화와 개선의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시청자는 주인공인 오지수가 범죄자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오지수에 대해 크게 반감을 가지지는 않을 것이다. 같은 반 친구가 성매매에 얽혀있음에도 오지수와 마찬가지로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그저 사업의 수완 정도로 여기는 배규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을 범죄를 저지르고 있고 성매매를 하는 반 친구를 방관하는 모습까지 보이지만 결국 그 선택은 두 사람이 강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에서 우리가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수 있는 이유는 자발성이다. 아무도 그들에게 성매매를 강요하지 않았고 그저 온전히 자신들의 선택이었다는 점이 이를 그저 지켜보는 제 3자인 우리도, 그리고 그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주인공들도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이유이다.


 작 중 등장하는 소품인 소라게는 작품의 서사를 담아내고 있으며 주인공 오지수를 표현한 메타포이다. 예상치 못한 변수로 자신의 비밀스러운 사업이 외부에 유출될 위험에 놓이고, 가지고 있던 돈도 모두 잃어버리고 마는 오지수에게는 더이상 숨어들어갈 소라가 없다. 그가 짊어지고 있는건 더이상 소라가 아니라 감당하지 못할 일을 저지른 것에 대한 대가이다. 이런 소라게와 관련된 연출에 모습을 비추는 인물은 지수의 아버지, 배규리, 서민희다. 아버지는 지수가 이런 삶을 살게 된 원초적인 문제점이며 배규리는 지수의 사업이 유출될 위험에 놓이게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서민희는 오지수의 이중적인 모습, '친구가 없는 모범생'과 '성매매 포주' 두 모습 모두와 상호작용이 있는 유일한 인물이자 오지수와 대비되는 캐릭터이다. 비슷한 환경에 놓여있는 두 사람 모두 음지에서 돈을 벌고자 한다. 학교에서의 찌질한 모범생과 일진 여학생 사이의 권력관계가 음지에서는 성매매 포주와 성매매 여성으로 정반대로 나타난다는 점이 참으로도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오지수와 배규리의 관계는 꽤나 흥미롭다. 두 사람은 사업 파트너로서 함께 하면서 점점 서로에게 이끌리는듯하지만 두 사람의 감정선에 대한 연출은 주요 요소로 다뤄지지 않고 여지를 남기는 정도에서 그친다. 로맨스적 요소가 가미됐더라면 작품의 주제가 흐려지고 그저 소재나 배경 정도로 여겨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나는 이 점이 꽤 마음에 들었다. 배규리로 인해 오지수 내면의 본성이 밖으로 터져나오는 장면 또한 인상 깊었다. 결말부에서 두 사람 모두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서민희의 발언에 곧바로 무력을 행사하면서 비속어를 내뱉는 오지수의 모습에서는 반성하는 기미가 전혀 없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해당 작품 전체에 걸쳐있는 주제는 현실이다. 범죄자 역할을 설득력있게 전달하는 이유 또한 그 때문이다. 작품 내의 등장인물은 자신들이 저지르는 범죄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있음에도 그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인간수업>은 청소년이라는 특성과 범죄를 잘 결부시켰다. 지수도, 규리도, 민희도 모두 멈출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선생님과 경찰 등 아이들과 맞닿아있는 등장인물들은 실질적으로 아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명확한 권선징악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아이들의 위태로운 모습은 극대화된다. 궁지에 몰린 지수와 규리는 마침내 도피를 선택한다. 두 사람의 도피는 성공적이었을까? 드라마는 소라게를 비추는 것으로 불분명한 대답을 내던지고 끝이 난다.


 결국 아이들은 우리가 종종 사회면에서 접할 수 있는 비극적인 참상 중 하나처럼 자기파멸의 길로 결말을 맞이한다. 선과 악의 개념이 구분되지 않고 일관적이면서도 무책임한 등장인물의 모습은 이 결말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한다. 돌이킬 수 없는 길에 들어선 건 오로지 아이들 자신의 선택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이런 잔혹한 현실이 주어질 권리가 없음을 잘 알고 있음에도, 우리는 그 선택을 근거 삼아 결말을 수긍한다. 그렇기에 이 드라마는 현실을 외면하려는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인간수업>은 현실에서 도망치려는 우리에게 놓인 신호등과 같다. 신호등을 무시하고 횡단보도를 가로질러 도망갈 지, 신호등에 멈춰서서 여태껏과는 다른 선택을 할 지는 우리 스스로의 몫이다. 지수, 규리와 달리 우리에게는 아직 멈출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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