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_ 허상의 무게를 벗어던지고

과장의 껍질을 벗고서 마주한 진실된 나란 존재

by Evanesce

Hyperbole [ haɪ|pɜːrbəli ]

1. 과장, 과장하는 법

2. 부풀림

3. 과대하게 말함


누구나 조금 더 나아 보이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타인의 눈 속에서 끊임없이 조명받고 싶고, 그 조명 아래에서 빛나고 싶어 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자신들을 포장하고, 다듬고, 조금의 과장을 덧입히곤 한다.


처음에는 그것이 단지 예의의 표현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상대에게 나를 더 잘 보이게 하기 위한 작은 노력이라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사소한 과장의 실밥이 내 안쪽 깊은 곳을 묶기 시작한다. 내가 만들어낸 이미지와 실제의 나 사이에 틈이 생기고, 진실과 허구의 경계는 점점 흐려지며, 나는 그 모호한 경계 위에서 중심을 잃게 된다.


사람이 믿는 것은 언제나 말의 표면이 아니라, 말의 기세와 태도라는 것을 나는 늦게서야 깨달았다. 내뱉은 말이 누군가에게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순간, 그 말은 되돌릴 수 없는 무게를 얹는다. 그제야 나는 그 진실의 옷을 입은 거짓을 지키기 위해, 또 다른 거짓을 만들어내야 하고, 그 거짓을 지탱하기 위한 새로운 이야기들을 조심스럽게 쌓아야 한다. 그렇게 쌓인 말들은 이윽고 벽이 되어 절대 허물 수 없게 된다. 과장은 처음엔 나를 돋보이게 하는 장식 같았으나,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자유를 빼앗는 굴레가 되어 버렸다.


조금의 과장은 관계를 더 매끄럽게 하고, 더 부드럽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었던 때가 있다. 그러나 그 부드러움의 표면 아래에는 늘 허무가 깔려 있었다. 상대는 내가 보여준 '꾸며진 나'를 믿고 그에 맞는 기대를 쌓아 올리지만, 나는 그 기대를 감당하지 못한 채 점점 내 본래의 자리를 잃어갔다. 그렇게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걷다 보면, 결국 처음의 진심은 희미해지고, 남게 된 것은 잘 짜인 이야기의 잔해들 뿐이었다.


흔히 말하는 '진심'의 또 다른 이름은 '용기'일 테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주는 일, 꾸밈없이 내보이는 일,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그 솔직함이 관계를 깨뜨릴 수도 있고, 오해를 낳을 수도 있으며, 나를 미성숙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점점 알게 되었다. 그 불완전함을 두려워하지 않아야만 진실된 관계가 시작된다는 것을. 완벽함으로 포장된 나보다, 서툴고 모난 나를 드러낼 때 오히려 마음이 닿는다는 것을.


사람은 결국 자신이 만들어낸 말속에서 살아간다. 그 말들이 진실이라면 마음은 고요히 가라앉지만, 거짓이라면 언제나 동요 속에 자리하게 된다. 작은 과장이 쌓이고 그 위에 또 다른 과장이 얹히면, 그 무게는 점점 견딜 수 없게 된다. 사람들 사이에서 웃고 있지만, 그 웃음의 주인은 내가 아닌 내가 만들어낸 모습이듯, 쌓여 올려진 과장은 내가 나로부터 멀어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제는 잘 보이기 위한 말을 다듬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어눌한 문장을 내어놓고 싶다. 완벽해 보이기 위해 꾸며진 이야기를 덧붙이는 대신, 부족한 진실을 그대로 들려주고 싶다. 그것이 내게 불이익이 되더라도, 그 불이익 속에서 내가 나 자신으로 남을 수 있다면 그게 더 큰 이익일 것이다. 진실의 언어는 화려할 수 없지만 오래도록 남고, 거짓의 언어는 달콤할지언정 금세 쓴맛으로 변한다. 그 쓴맛을 너무 오래 삼키기보다는 조금 담백하게 숨 쉬고 싶다.


나 자신을 포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대를 존중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진짜의 나를 보여주는 것은 상대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상대가 나의 진실을 보고서 나를 받아들이든 떠나든, 그것은 더 이상 내 조작의 결과가 아니라 그의 진심이 된다. 관계란 결국 그런 두 개의 진심이 마주치는 지점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것일 테니까.


앞으로의 말에는 조금 더 숨결을 남겨두자. 그 숨결 속에 진심이 머물 수 있도록, 조금 덜 반짝이더라도, 그 어둠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진실의 온도를 지키자.


그리고 그 온도가 내 마음을,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서서히 녹여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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