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보다 필요한 것은 견디며 버티는 호흡일지도
가끔 마음 안에는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이 오래 머무르곤 한다. 기쁨도 아니고, 슬픔도 아닌데 그렇다고 덤덤한 상태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분명한 흔적이 남는다. 분류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고, 그것을 붙잡아 보려고 손을 뻗지만 매번 허공만 쥐게 된다.
딱히 아픈 일도 없었고, 특별히 좋은 일도 없었는데, 어느 날은 눈을 뜨자마자 이유 없이 가슴이 저며오고, 또 다른 날은 별다른 계기도 없이 마음이 붕 떠서 몸이 따라오질 않는다. 감정이란 늘 명확하게 드러난다고 믿고 있었지만, 막상 안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은 흐릿한 얼룩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그 감정을 하나의 색으로 칠해보려 하지만 금세 번져버린다. 선명한 경계를 지니지 못한 채 스며들어, 어느 부분이 시작이고 끝인지도 구분할 수 없다. 오래된 종이에 스며든 잉크처럼 처음에는 뚜렷했지만 서서히 번져 결국엔 무늬였는지 얼룩이었는지도 모호해 지는 형태.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계속 질문하지만, 감정은 대답 대신 더 많은 물음을 남긴다. 도대체 왜 불안한지, 무엇 때문에 갑자기 공허함을 느끼게 되었는지, 무엇을 갈망하고 있는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알 수 없음이 고통이라는 것을 그때서야 깨닫게 된다.
인간의 마음은 처음부터 그렇게 정돈된 상태였을 리는 없지만, 사람들은 항상 "자기 감정을 잘 알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그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두려워하기에 억지로 이름을 붙이고 선별하여 구획을 나누는 노력을 할 뿐이다. 마음이라는 것은 오히려 창문에 김이 서린 듯한 상태에 가깝기에, 안에서 밖이 보일듯 말듯 흐릿한 채로 머무르고, 손가락으로 문질러 선을 그려보아도 금세 다시 흐려진다. 결국 나는 무엇을 본 것인지조차 혼란스러워진다.
이 모호함이 힘든 이유는, 내가 어떤 존재인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감정 속에서 나는 스스로에게조차 설명되지 않는 타인이 되고 만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를 질문받았을 때, 말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나조차도 모르기 때문에 침묵할 수밖에 없는 그런 순간처럼 견딜 수 없을 만큼의 답답한 때도 있다. 침묵이 무기력해서가 아니라, 어떤 말도 진실을 충분히 담지 못할 것을 알기에 더이상 말을 할 수 없는 선택, 그 과정에서 내가 얼마나 연약한지, 그리고 동시에 얼마나 복잡한지를 눈치챈다.
그래서 굳이 모든 감정을 이해의 영역으로 가져오지 않기로 했다. 끝까지 추적해보아도 밝혀지지 않을 것들을 억지로 파헤치려 한다면, 오히려 내면을 더욱 어둡게 만들 때가 많았기에. 이유를 찾는 데 에너지를 쓰기보다, 그 감정이 지나갈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편이 낫기에.
설명되지 않는 마음을 질문 없이 받아들이는 태도, 그것이 무기력처럼 보일지라도 사실은 가장 단단한 형태의 버팀일지도 모른다. 이해는 나중 문제고, 지금 필요한 건 그저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일이라는 걸 조금씩 배워간다.
어쩌면 감정이 흐릿하게 남는다는 것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뜻일 지도 모른다.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건,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고, 밝혀지지 않았다는 건 그래도 완전히 사라진 형태가 아니라 여전히 살아 있다는 말이 된다. 그 사실에 잠시 기대어, 명확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설명할 수 없어도 존재는 계속된다고 스스로에게 조용히 말해보자. 확신은 아니지만, 그 말이 조금은 가라앉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그 흐릿함을 도려내려 애쓰지 않고, 그대로 둔 채 살아본다. 희미한 감정의 결 속에서 내 마음이 어떤 형태로 움직이는지를 아주 천천히 살피며.
감정은 늘 이해되지 않지만, 이해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증명해주기도 한다. 선명하지 않은 마음으로도 하루를 견딜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살아있음을 느낄 수는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