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에 대하여
일상 속에는 수많은 소리들이 있다. 꼭 귀에 들리는 소리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알림음과 통화, 계획과 일정, 비교와 걱정 같은 것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음속을 두드려 놓는다. 비록 몸은 가만히 있을지라도 생각은 쉴 틈 없이 뛰어다니게 된다. 그래서 진짜 쉬어야 하는 것은 몸이 아닌 마음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뒤늦게에서야 깨닫는다.
사실은 조용함에도 종류가 있다. 외부가 조용해서 고요한 상태가 있는가 하면, 마음이 잠잠해져서 고요해지는 순간이 있다. 소리가 사라졌다고 해서 고요한 것이 아니듯, 침묵이 곧 평온인 것도 아니다. 진실된 고요는 들리지 않음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음에서 온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허전하지 않고,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은 상태 속에서는 오히려 내가 선명해질 수 있다.
우리는 흔히 휴식을 무언가를 소비하거나 채우는 방식으로만 생각한다.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고, 맛집을 찾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들과 같은 것들. 물론 그런 시간도 필요하지만, 마음이 쉬는 고요는 그 반대편에서 찾아온다. 무언가를 쌓아두기보다 내려놓을 수 있는 방식의 쉼. 머릿속을 가득 채운 말들과 설명들, 해야 할 일과 설명해야 할 이유들을 모두 잠시 내려놓는 일. 그러한 것들을 억지로 잊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두고 잠시 흘려보내는 일과 같은 것들 말이다.
조용히 있는 시간이 처음엔 오히려 불편할지도 모른다. 가만히 있으면 무언가 뒤처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나 자신이 멈춰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잠시만 더 머물러 보면 고요는 공허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에도 마음은 조용히 숨을 쉰다는 것을, 그리고 오히려 그때 비로소 내가 나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마음이 쉬는 고요는 멀리 있지 않다. 새벽에 눈을 떴는데 아직 일어나기엔 이른 시간에 불을 켜지 않고 잠시 어둠에 머무르며 머리를 비우는 일, 이어폰을 끼지 않고서 집까지 천천히 한 걸음씩 걸어오는 길, 말 대신 숨소리만 오가는 사람과 같은 공간에 조용히 앉아 서로를 바라보는 일과 같은 사소한 순간들이 마음을 천천히 가라앉힌다.
요란하지 않은 평온은 금방 잊히지만, 가장 오래 남는다. 소음 속에서는 들리지 않던 나의 목소리가 들리고,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감정들이 모양을 드러낸다. 이러한 고요는 현실을 외면하는 시간이 아니라, 다시 살아갈 힘을 만드는 시간이다. 무언가를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이어가기 위한 짧은 숨 고르기이다.
모든 날이 시끄럽더라도 하루 중 단 한 번, 짧은 시간만큼은 마음까지 쉬게 해주는 고요를 스스로에게 허락했으면 한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머물러 있는 그 정적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깊게 살아 있는 순간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