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 _ 추억이라는 이름의 달콤한 덫

추억이라는 올가미, 기억의 함정 속에서

by Evanesce

Reminiscence [ remɪˈnɪsns ]

1. 추억, 회상(하기)

2. (비슷한 다른 것을) 연상시키는 것


추억은 언제나 따뜻한 빛을 두른 채 다가온다. 오래된 창문 너머로 어렴풋이 스며드는 햇살처럼, 우리의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부드럽고 아련하게 번져온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그때는 분명 아팠던 기억조차 시간이 지날수록 따뜻한 빛으로 덧칠된다. 상처는 희미해지고, 그 위에 놓인 장면들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아름답게만 남는다. 하지만 바로 그 미화는, 마치 햇살이 그림자를 동반하듯, 때로는 다시금 나를 옭아매는 덫이 되기도 한다.


추억은 사실 '과거에 있었던 있는 그대로의 기록'이 아니다. 과거에 대한 회상은 늘 지금의 내가 붙잡은 렌즈를 통해 다시 빚어진다. 한때의 고통은 '어려웠지만 결국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준 계기'라는 식으로 변주되기도 하고, 쓰라린 실패조차도 '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 준 과정'이라 포장된다. 물론, 이러한 해석은 우리에게 위로를 가져다 주기는 한다. 다만 그와 동시에, 기억은 본래의 결을 잃고, 다시 나를 같은 길로 이끌게 될 수도 있다.


어느 봄날, 벚꽃이 흩날리는 길을 함께 걸었던 기억을 떠올려 보자. 어떤 날에는 그 장면이 '사랑했던 시간의 아름다운 절정'이다. 바람에 쓸려 흩날리던 꽃잎은 마치 축복처럼 느껴지고, 눈부신 꽃비처럼 가슴에 고이 남아, 이후의 외로운 시간들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 그러나 또 다른 날, 같은 기억은 '곧 다가올 이별의 전조'로 스며든다. 꽃잎이 그렇게 쉽게 휘날리듯, 그 시간도 오래 머물지 못했다는 사실이 마음을 아리게 하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길이라는 상실감을 남기기도 한다. 내가 붙잡은 렌즈가 무엇인지에 따라 그 추억은 영원히 아름다운 장면이 될 수도 있고, 여전히 가슴을 시리게 하는 그림자가 될 수도 있다.


추억은 때로 달콤하다. 그러나 그 달콤함이 지나치면, 추억은 더 이상 위로가 아니라 감옥이 된다. 현실을 잊고, 과거의 따스한 장면 속에 자신을 가두며, 현재의 길을 흐리게 만든다. 과거의 환영에 사로잡힌 채 현재의 눈을 잃고, 미화된 추억에 취해 같은 아픔과 실수를 반복하는 것, 그것이 바로 추억의 함정이다.


중요한 것은 추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추억이 가진 빛과 그림자, 두 얼굴을 동시에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그때 나는 웃었지만, 동시에 아팠다.", "예전에 나는 힘들었지만, 그러면서도 즐거웠다." 이러한 단순한 인식이야말로 추억을 올바르게 받아들이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그 순간 추억은 더 이상 왜곡된 덫이 아닌, 삶의 자산이 된다.


결국 추억은 과거에 속해 있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현재의 과정이다.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추억은 위로이자 선물이 되기도 하고, 상처이자 올가미가 되기도 한다.


추억은 오늘도 우리에게 "나는 너를 위로하기 위해 존재할까, 아니면 너를 붙잡아두기 위해 존재할까"라며 속삭인다.


이러한 추억의 속삭임에 대하여, 지금 우리는 어떤 눈으로 그 추억을 바라보고 있을까.


우리에게 추억은 여전히 선물일까, 아니면 달콤한 감옥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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