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속에서도 흔들리거나, 폭풍 속에서도 지켜내거나
평온의 상태는 단순히 고요한 풍경 속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호수 위 바람 한 점 없는 순간에도 마음은 이유를 알 수 없이 흔들림을 겪는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데, 마치 곧 큰 파동이 밀려오는 듯 가슴이 불안에 잠식되는 순간들이 있다. 청명한 하늘 위로 스쳐 지나가는 먹구름처럼, 평화롭던 일상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미래를 예측하려 하고, 다가올 위기를 미리 대비하려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마음이야말로 불안을 키우고, 결국 현재의 평온까지 앗아가 버리기도 한다.
사람들 역시도 두 부류로 나뉘는 듯하다. 안정된 상황에서도 주위에 알 수 없는 긴장을 불러오는 사람은,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는 일상 속에서도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기를 떠올리게 하는 눈빛과 말투를 지닌다. 마음속 깊은 곳에 아직 오지 않은 불안의 순간들을 품고 있고,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호시탐탐 도사리던 그 위기를 밖으로 흘려보낸다. 그래서인지 그러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이상하게도 평온이 오래 머물지 못한다. 잔잔한 호수 위에 돌멩이를 끊임없이 던지는 것처럼, 고요는 쉽게 깨지고 다시금 내면의 파동은 출렁인다.
반면에 정반대의 기운을 가진 사람이 있다. 설령 주위가 어지럽고 삶이 흔들리는 순간을 맞이하였을지라도, 곁에 있으면 오히려 숨이 고요히 가라앉는 사람이다. 외부의 안정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마음속에서 단단한 중심을 길러낸다. 폭풍 같은 현실 속에서도 그 중심은 잘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함께 있는 사람마저 덩달아 마음을 내려놓는다. 어두운 바다 위의 등대처럼,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곁에 있는 이들까지 비추며 안정시킨다.
타고난 성격의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이러한 차이를 설명하기가 부족하다. 그 차이는 불안과 평온을 어떻게 다루는지에서 비롯되는 것일 테다.
첫 번째 부류의 사람은 불안을 억누르려 애쓰다가도 결국 그 불안에 다시금 휘둘리며, 닥치지 않은 앞으로의 미래를 미리 마음속에 불러들이고, 그것을 붙잡으려 현재의 평온마저 놓쳐버린다. "곧 무너질지 모른다"는 예감은 그 자체로 평온의 자리를 지워버리는 것이다.
반대로 두 번째 부류의 사람은 불안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불안이 자신을 지배하지 않도록 거리를 둔다. 마주한 상황 속에서 새로운 방법을 타개하고, 나의 주관을, 나의 중심을 유지하며 안정감을 찾는 그 태도 속에서 내면의 고요가 더욱 깊어질 수 있게 된다.
평온의 상태는 숲 속 깊은 곳의 연못과 같다. 겉으로는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떨어지고, 작은 물결이 일렁이지만 연못의 바닥은 변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수면의 작은 흔들림에도 요동치며 자신을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연못의 바닥처럼 단단하며, 바람이 지나가도, 빗방울이 떨어져도, 그 깊은 곳의 고요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게 한다. 그리고 그 고요는 곁에 있는 이들에게까지 잔잔히 스며든다.
평온과 안정은 결국 '무엇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다. 오히려 '무엇이 오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이다. 아직 닥치지 않은 불안을 붙잡고 씨름하는 상태는 결코 평온이 될 수 없다. 다가올 위기를 상상하는 순간 이미 마음은 불안에 잠식되고, 현실의 평화는 무너진다. 진정한 평온은 외부의 상황보다는 내 안에 자리 잡은 뿌리에서 비롯된다. 어떠한 소란도 내면의 단단함 앞에는 결국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다.
내일 무슨 일이 닥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우리의 삶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그러나 그 불확실성 속에서도 우리가 평온을 지켜내고 안정을 찾을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삶을 견뎌낼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평온을 품은 이는 자신만 고요한 것이 아니라, 곁에 있는 이들에게도 고요를 전한다. 함께일 때 불안이 아닌 안정을 배우고, 흔들림이 아닌 중심을 확인하게 된다.
세상이 요동칠지라도 내 안의 연못은 언제나 고요히 머물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나 또한 누군가에게, 힘든 시간 속에서도 안정을 건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것이 나 자신을 지키는 길이자, 곁에 있는 이들에게도 가장 깊은 위로가 될 수 있을 테니까.